(시계방향) 그룹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블랙핑크, NCT 127 /사진=각 소속사 제공
(시계방향) 그룹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블랙핑크, NCT 127 /사진=각 소속사 제공
중국 정부가 규제의 폭을 연예인과 이들을 지지하는 팬덤으로 넓히면서 K팝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당장 현지 팬들은 온라인 및 소비 활동에 일부 제약이 걸렸다. 다만 국내 업계는 중국 내부에서의 규제가 실질적으로 K팝 산업에 어느 수준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중국에서 돈을 모아 그룹 방탄소년단 지민의 사진이 붙은 항공기를 띄운 팬클럽이 60일간 웨이보 활동을 금지 당했고, 아이유를 비롯해 태연, 엑소,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NCT 등 K팝 팬덤 계정 20여 개가 줄줄이 30일 이용 중지 조치를 받았다. 트와이스 쯔위·에이핑크 정은지의 웨이보 팬클럽 계정은 이름에서 모임을 뜻하는 'bar'를 떼라는 지시를 받고 그대로 수정했다.

비이성적인 스타 추종 행위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며 시작된 중국 정부의 각종 규제가 K팝에 열성적인 지지를 보내는 현지 팬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인터넷안전정보화위원회 판공실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연예인의 인기 차트 발표가 금지되고, 투표·모금 등을 이유로 팬들의 소비를 유도하는 행위도 불가하다. 모금을 진행하는 팬클럽에게는 해산 등의 조치가 취해지며,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연예인을 응원하기 위해 돈 쓰는 것을 엄금한다.

중국 시장은 오랜 시간 K팝 소비의 '큰 손'으로 여겨져 왔다. 중국 팬덤은 응원하는 스타를 위해 거액의 모금을 진행하거나 앨범·음원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등 쉽게 지갑을 열었다. 이에 일부 중국 매체들은 한국 연예 기획사들이 중국 팬들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이번 사태를 두고 위기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 상황을 바라보는 국내 업계의 시각에는 '우려'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 리스크'가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 영향력이 막대할 거라는 생각은 기우라는 관측도 있다. 한한령 이후 중국에서의 공연, 방송 및 광고 출연이 제한되면서 현지 활동에 대한 기대치가 현저히 낮아졌고, 이에 따라 소비 시장으로서의 우선순위가 일본, 미국 등에 많이 뒤처졌기 때문이다. K팝은 최근 몇 년간 광범위하게 글로벌화를 이끌어내며 꾸준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팬들을 대상으로 한 SNS 활동 제한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팬덤 규모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 사실상 당장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소비 위축이 앨범 판매량 감소로 연결되느냐다.

이미 중국의 최대 음악플랫폼 QQ뮤직은 한 명의 이용자가 음원을 중복으로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매일 같이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음원에 이어 피지컬 음반(CD)에 대해서도 '1인 1장 구매'라는 추가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태국 출신인 블랙핑크 리사의 웨이보 팬클럽 계정은 지난달 31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당국의) 팬클럽 규제가 강화되면서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부딪혔다. 많은 양의 앨범을 주문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공지한 바 있다. 리사는 중국의 오디션프로그램 '청춘유니2', '청춘유니3'에 댄스 멘토로 출연, 중국 내 팬덤이 두터운 '핫 스타'로 꼽힌다.

음반 판매는 한한령 이후 K팝 업계가 중국에서 수익을 내는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에 소비 위축이 바로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1~11월) K팝 음반류 수출은 전년도보다 94.9%나 증가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그 가운데 중국은 음반 수출액이 세 번째로 높은 나라였다.

다만 눈 여겨볼 점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대폭 낮아졌다는 점이다. 매년 일본에 이어 2위를 유지해오던 중국은 지난해 미국에 밀려 3위로 떨어졌다. 일본, 미국, 대만, 홍콩이 각각 93.4%, 117.2%, 59.9%, 58.5%로 큰 폭의 증가율을 보인 반면 중국은 단 26.9%에 그쳤다.

이와 관련해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의 각종 규제 조치가 K팝 피지컬 앨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일단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단기적으로 연간 100~200만장 가량 영향은 줄 수 있겠지만, 올해 전 세계적으로 K팝 앨범이 5000만 장 이상 팔릴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중국발 데미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리스크가 전무한 건 아니기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데뷔해 활동하고 있는 중국 출신 아이돌 멤버들에 대한 추가 규제가 나온다면 팀 활동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중국인을 포함한 팀을 구상 중인 경우도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인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는 Mnet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플래닛999'가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중 양국은 지난해 11월 외교장관 회담에서 올해부터 내년까지 '한·중 문화교류의 해'를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약속이 무색하게 팬덤 관리라는 명목하에 K팝 견제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진출 재개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마저 축소시키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로 업계 전반에 불안감을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에 주한중국대사관은 "최근 중국 정부는 연예계 및 팬덤의 혼란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청랑(중국의 인터넷 정화운동)' 특별 행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연예인을 포함한 일부 연예인 팬클럽 계정이 폐쇄됐다"며 "중국 정부의 관련 행동은 공공질서와 양속에 어긋나거나 법률과 법칙을 위반하는 언행만을 겨냥하는 것이지 다른 나라와의 정상적인 교류에 지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한한령 이후 당장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 온 엔터업계에 더 이상 희망고문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중국의 규제가 K팝을 직접 겨냥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정부 차원에서의 단호하고 시의적절한 대응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