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스 할스, 웃고 있는 기사, 1624년, 월리스 컬렉션
프란스 할스, 웃고 있는 기사, 1624년, 월리스 컬렉션
시계처럼 정확하고 규칙적인 일과를 보낸 일화로도 유명한 비판철학의 창시자 임마누엘 칸트는 웃음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엄격한 철학자의 전형이다. 그런 칸트가 뜻밖에도 웃음 예찬론자였다. 그는 웃음과 건강의 관련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웃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웃으면서 드는 생각이 아니라 웃음에 의한 내적인 운동이다. 그것은 나무를 톱으로 자르거나 말을 타는 것보다 더 좋은 운동이다. (……) 웃음은 약보다 몸에 좋다.”

일찍이 칸트가 웃음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줬지만 스트레스와 질병, 폭력과 범죄, 경제적 부담으로 삶이 고단해진 현대인들은 웃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일상에서 웃음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웃음을 되돌려주는 명화가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초상화 대가 프란스 할스(1580~1666년)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웃고 있는 기사’다. 영국 런던에 있는 월리스 컬렉션의 대표 소장품인 이 그림은 ‘모나리자 이후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 ‘모든 바로크 초상화 중 가장 화려한 인물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초상화 속 모델의 매력적인 미소와 장난기 넘치는 눈빛은 이 작품이 불후의 명성을 얻는 데 크게 기여했다. 18세기 이전 제작된 초상화에서 웃거나 미소를 짓는 사람을 표현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다른 많은 화가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은 진지하거나 엄숙한 표정을 짓고 움직임이 정지된 자세를 취했다. 반면 할스의 초상화에 등장한 인물들은 유쾌하게 웃거나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할스만의 고유한 특징이며 그런 이유에서 그는 ‘웃음의 화가’로 불리게 된다.
17세기 황금시대 네덜란드 상선들을 묘사한 그림. 
헨드릭 코넬리스 브롬, 1622년
17세기 황금시대 네덜란드 상선들을 묘사한 그림. 헨드릭 코넬리스 브롬, 1622년
할스가 웃음을 자극하는 유쾌한 초상화를 그리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할스는 삶을 기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긍정적 인생관을 가졌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한 자유로움과 여유가 주인공의 생기 넘치는 표정과 자신만만한 자세에 반영됐다. 다음으로 할스는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였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였고 시민들은 무역이나 상업으로 막대한 부(富)를 쌓았다. 경제적 번영으로 예술과 과학기술이 찬란하게 꽃피웠던 황금시대 네덜란드인의 물질적, 정신적 풍요로움이 할스의 예술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럼 작품을 감상하면서 웃음의 효과를 보다 확실하게 느껴보도록 하자. 초상화의 주인공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옷차림의 젊은 남자다. 그는 몸을 뒤로 젖히고 비스듬히 선 자세로 왼손은 엉덩이에 얹고 얼굴은 왼쪽으로 살짝 돌려 관객을 내려다본다. 남자의 화려한 패션과 편안한 자세, 생기 넘치는 얼굴 표정, 독특한 콧수염은 그가 무척 부자이며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할스는 그림 오른쪽 위에 적힌 라틴어와 숫자로 모델의 나이는 26세이며 초상화는 1624년에 그려졌다고 알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남자의 신원은 밝히지 않았다. 모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실제로는 웃지 않고 미소만 지을 뿐인데도 왜 ‘웃고 있는 기사’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원래 이 그림은 제목이 없이 ‘남자의 초상화’로 불리다가 1872~1875년 영국 국립 베스널 그린 박물관에서 개최된 전시회에서 공개된 이후 인쇄물로 대량 복제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와 자신감, 삶의 활기가 느껴지는 초상화의 쾌활한 분위기에 매료된 영국 대중과 비평가, 언론에 의해 ‘웃고 있는 기사’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남자의 사치스러운 검은 실크 의상과 화려한 자수 장식에 새겨진 다양한 상징적 의미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소매를 관찰하면 불타는 횃불, 화살표, 꿀벌, 연인의 매듭 문양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사랑의 즐거움과 고통을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 신을 상징하는 모자와 뱀 두 마리가 감겨 있는 날개 달린 지팡이 문양도 눈길을 끄는데, 이것은 재산과 남자다운 미덕을 상징한다.

이 남자의 야릇한 미소, 엄숙주의 17세기를 발칵 뒤집다
미술전문가들의 해석에 따르면 다양한 상징물은 초상화가 그려진 목적을 말해준다. 즉, 돈 많은 남자의 약혼 또는 결혼을 기념하는 초상화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밝은 색채와 빠르고 자유분방한 붓놀림, 대담하고도 정교한 기법이 혼재된 할스 특유의 화풍이 절정에 달한 이 초상화는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반 고흐 등 대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또 영국 소설가 바로네스 오르치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스칼렛 핌퍼넬’ 소설 시리즈가 탄생하는 데도 기여했다.

이명옥 < 사비나 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