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회가 이른바 '구글 갑질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글로벌 빅테크 기업 독주에 세계적으로 첫 규제를 가한 가운데 일본에서는 애플이 현지 공정거래위원회(JFTC) 조치를 받아들여 결제 방식을 유연하게 하는 조치를 내놨다. 자사 정책에 대해 외부와 타협하지 않는 그간 애플의 행보를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한국과 일본을 필두로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각국의 국가 차원 견제가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 리더 앱 외부 결제 링크 허용하기로

4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JFTC와 도출한 합의에 따라 넷플릭스를 비롯한 콘텐츠 구독 서비스, 이른바 '리더 앱'에 외부 결제 링크를 허용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이용자가 알아서 해당 서비스 웹사이트에 방문해 계정 관리나 결제를 해야 했지만 이를 앱 내에서 직접 연결해 주는 링크를 제공하도록 것이다.

애플이 리더 앱이라 명명한 어플리케이션(앱)들은 사용자에게 디지털 잡지, 신문, 책, 오디오, 음악, 비디오 등의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으로 넷플릭스, 음원을 서비스하는 스포티파이가 대표적이다. 애플은 디지털 구독 서비스 판매에 자사 인앱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도록 했지만 해당 서비스들은 웹 결제 방식을 고수해왔다.

그동안 애플은 자사 지침을 들어 앱 내에 외부 결제 링크 삽입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JFTC 조치 이후 정책을 수정했다. 의외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앱스토어 정책을 총괄하는 필 쉴러 애플 펠로우는 "우리는 JFTC의 의견을 존중한다. 이를 통해 리더 앱 개발자들의 서비스를 이용자들이 보다 쉽게 설정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이용자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신뢰를 유지하는 것 또한 놓치지 않게 됐다"고 의미 부여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27일 애플이 미국 개발자들과 합의한 내용에서 진일보했다. 당시 합의는 '인앱 결제를 유지하되 개발자들이 앱 외부 결제 방식에 대해 이메일 등을 통해서만 사용자들에게 공유할 수 있음'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향후 리더 앱에서는 앱 내에 직접 외부결제에 접속할 수 있는 링크 탑재가 허용돼 사용자들이 외부결제 수단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정책 변경으로 넷플릭스가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인앱 결제에 따른 30%의 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 서비스 가입과 결제를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서만 진행해왔다. 이번 조치로 넷플릭스는 자사 웹사이트로 연결되는 결제 링크를 앱에서도 바로 안내할 수 있게 됐다.

'구글 갑질 방지법' 통과에 다른 국가도 영향받을 듯

국내에서는 인앱 결제를 막는 구글 갑질 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 법안은 △앱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 수단을 앱 개발사에 강제 △앱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 △모바일 콘텐츠를 부당하게 삭제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인앱 결제 방침에 따라 앱 개발사는 이용자의 인앱 결제 금액 15~30%를 구글에 수수료로 줘야 한다. 앱 개발사 입장에선 수수료 부담이 큰 결제 방식이란 반응이 나온 이유다. 이 방식을 강제할 경우 수수료 부담이 높아지고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모바일 콘텐츠 산업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구글은 직접적 대응을 자제하면서 후속 대응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차원에서 시행하는 인앱 결제 강제 정책이 한국 법 때문에 변경이 불가피해졌고 미국 등 다른 국가들도 영향을 받아 비슷한 법을 도입하는 도미노 규제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구글은 "법률을 준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수주 내로 관련 내용을 공유할 예정"이라며 "인앱 결제 수수료는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계속 무료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개발자가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소비자에게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사용된다"고 항변했다. 플레이스토어에서 유료 서비스를 파는 1% 미만의 앱에 인앱 결제 수수료를 거둬야 99% 이상의 무료 앱 운영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게 구글 측 주장이다.

빅테크 규제는 국제적 추세

빅테크 규제는 국제적 추세로 굳어지는 양상. 미국 의회와 행정부는 최근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 법안과 행정명령을 연이어 발표했다. 지난 6월11일 민주당과 공화당 하원 법사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더 강력한 온라인 경제: 기회, 혁신, 선택을 위한 반독점 어젠다'라는 이름으로 총 5개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들 기업의 지배력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시장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신종 서비스로 소비자의 편익을 높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을 저하하고 중간 공급자를 착취하는 등의 불공정을 일으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반독점 규제당국 요직에 빅테크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앉혔다. 그는 지난 6월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에 리나 칸 컬럼비아대 교수를 임명하면서 빅테크 기업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칸 위원장은 2017년 예일대 로스쿨 졸업 논문으로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논문을 써 화제가 된 인물이다.


논문에서 그는 사업자가 단기 이윤보다 이용자 기반 확대, 즉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디지털 플랫폼 시장의 특성이라고 봤다. 이에 가격이 낮아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니 규제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디지털 시장에는 부적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공공성이 강한 기간 통신 사업자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플랫폼 영역에도 강력한 반독점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하원도 지난 6월 말 '플랫폼 독점 종식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구글과 애플의 인앱 결제 강제를 막을 뿐 아니라 유튜브, 페이스타임 등 자사 앱을 스마트폰에 기본 탑재하는 것도 금지할 수 있다.

이같은 기조가 갈수록 거세지자 빅테크 기업들은 초긴장 상태다. 최악의 경우 이미 인수한 기업 재매각이나 기업 분할까지 거론되고 있어서다. 과거 록펠러가 이끌던 스탠더드오일이 30여 개 회사로 분할되고, 시장점유율이 90%를 넘은 미 통신사 AT&T가 7개로 쪼개진 전례가 있다. 중국 역시 알리바바에 이어 텐센트, 징동, 디디추싱 등 중국 굴지의 플랫폼 기업들이 정부 방침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