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명품 오픈런'…"일단 지르고 본다"
30대 직장 여성은 모아둔 현금으로 샤넬백을 사기 위해 지난 4일 새벽부터 ‘샤넬 오픈런’(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쇼핑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에 뛰어들었다. 60대 여성은 연말 결혼하는 아들과 며느리의 롤렉스 예물 시계를 마련하기 위해 네 번째 새벽 줄서기에 나섰다. 줄서기 대행 아르바이트에 나선 부부는 전날 오후 8시부터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기다린 끝에 1번 번호표를 받았다. 하루 줄서기 평균 일당은 10만원,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사면 성공보수를 포함해 30만원을 받는다. 그들은 “무엇을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살 수 있느냐”의 싸움이라고 했다. “어떤 물건을 살 수 있을지는 팔자에 달렸다”고 해서 ‘팔자런’이란 우스개 신조어까지 나돈다.

코로나19 이후 백화점 명품관 앞에 새벽부터 줄이 생겼다. 처음엔 ‘진풍경’이었다. 하지만 1년째 이어지면 일상이 된다.

대한민국의 유례 없는 명품 열기에 4~5월 국내 백화점 3사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9~56% 급증했다. 지난해 증가율(16~28%)의 두 배에 달한다.

경쟁이 치열하고 과시욕과 물질 선호 현상이 강한 한국에서 명품 소비는 꾸준히 늘어왔다. 여기에 젊은 층까지 가세하면서 이상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비중이 최근 크게 늘었다. 차곡차곡 돈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가는 젊은 층이 명품의 새로운 소비층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의 명품 열기를 명품 브랜드들은 가격 인상과 물량 제한을 통해 희소성을 끌어올리는 기회로 활용한다. ‘가격을 올리면 올릴수록 더 잘 팔리는’ 이상 과열 현상은 이례적인 속도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명품 열풍은 물질과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패션분야 한 전문가는 “신분이 고정화된 서구와 달리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전설리/배정철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