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인 파리’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프랑스 파리에 파견 나온 미국 마케팅 회사 직원인 에밀리(주인공)의 생일날 점심, 파리 토박이인 직장 선배가 특별한 곳으로 초대하겠다며 ‘페르 라셰즈’로 데려간다. 페르 라셰즈는 프레데리크 쇼팽, 오스카 와일드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묻힌 공동묘지다. 그리고 말한다. “생에 대해 생각하려면 죽음, 망각을 고찰해야 한다.” 한국에서 공동묘지는 우리 동네엔 절대 들어서면 안 될 대표적인 ‘님비’ 시설로 취급받지만 페르 라셰즈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파리의 명소다. 찬란했던 벨 에포크 시절 꿈을 찾아 파리로 몰려든 예술가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파리 공동묘지의 메시지‘빛의 도시’ 파리가 오랫동안 세계 여행자들이 가고 싶은 도시 1위로 꼽히는 이유는 크기 때문이 아니다. 파리의 매력은 공동묘지마저 관광명소로 바꿔놓는 고유의 문화 예술 콘텐츠에 있다. 최근 서울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핫한 도시’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례없는 속도로 성장한 역동적인 도시이기도 하지만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등 문화 콘텐츠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도시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인이 문화 예술 콘텐츠만은 아니다.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엔진으로 자리 잡은 실리콘밸리는 다른 차원의 경쟁력을 갖췄다. 혁신 콘텐츠다. 세계적인 도시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혁신이 일어나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도시의 3대 조건으로 ‘3T’를 들었다. 기술(Technology)·관용(Tolerance)·인재(Talent)가 그것이다.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관용을 갖춘 도
농어촌 특별전형은 도시 지역에 비해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고교생의 입시를 돕기 위한 제도로 1995년부터 전면 시행됐다. 일반전형보다 커트라인이 낮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입시를 위해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이사하거나 위장전입하는 꼼수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2012년엔 농어촌 특례 자격이 없는 도시 거주자의 자녀가 위장전입을 통해 대학에 대거 합격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이들은 실제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공항 활주로, 창고, 고추밭 등으로 주소지를 허위 이전하는 황당한 수법을 썼다. 정작 농어촌 특례 혜택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은 이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30년간 급격한 도시화와 신도시 개발로 ‘무늬만 농촌 학교’도 늘었다. 서울 근교에 있고, 농사를 거의 짓지 않는 아파트촌이지만 특례를 적용받는다. 학부모 사이에선 최근 기업 해외 근무가 급격하게 늘어나 문턱이 높아진 재외국민 특례보다 농어촌 특례가 낫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돈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읍·면 지역에 있는 대단지 아파트에 수요가 몰리기도 한다. 김포 고촌읍도 그중 하나다. 인구 유입이 늘면서 2020년 개교한 인근 고촌고는 농어촌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는 학교다. 신생 고교임에도 지난해 전입 희망자가 신입생을 초과했다. 국민의힘이 지난 16일 ‘김포·서울 통합특별법’을 발의했다. 눈에 띄는 것은 2025년 시행을 목표로 하되 농어촌 특례 규정은 2030년까지 유예한 점이다. 갑작스러운 서울 편입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김포가 서울로 편입된 이후 서울 소재 고교에 농어촌 특례를 적용하는 것은 제도 도입 취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1시간 전 러시아는 대규모 멀웨어 공격으로 우크라이나의 통신망을 무력화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군의 지휘 체계가 마비됐다. 다급한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트위터(현 ‘X’)를 통해 일론 머스크에게 “스타링크(인공위성 통신망)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머스크는 10시간 만에 “지금 스타링크 서비스가 우크라이나에 개통됐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의 한 군인은 “스타링크가 없었다면 전쟁에서 패했을 것”이라고 했다. 머스크가 이번엔 이스라엘의 지상 작전 확대로 통신이 끊긴 가자지구에 구호단체들의 연결을 지원하기 위해 스타링크를 제공한다는 소식이다. 스타링크는 저궤도에 위성들을 쏘아 올려 인터넷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기존 도심지역에서 이용하는 유무선 인터넷 광케이블을 지구의 모든 땅에 개설하는 것은 무리다. 기존 위성은 고도가 높아 데이터 전송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저궤도 소형 위성이다. 저궤도 위성은 약 550㎞ 상공을 군집 비행하며 기지국과 이용자를 중계한다. 수신기만 있으면 대양을 횡단하는 선박, 비행기 등 전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스페이스X는 2020년 스타링크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로부터 1만2000여 개의 위성 발사를 허가받았고, 최종적으로 4만 개 이상을 쏘겠다는 계획이다. 스타링크는 미·중 패권 전쟁의 변수이기도 하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대만과 세계를 연결하는 14개 해저 케이블을 끊는 것으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과 대만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대만에 스타링크를 도입하
미국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난 3월부터 8월 초까지 미국 20여 개 도시를 도는 전국 투어를 했다. 티켓 수입만 10억달러(약 1조3500억원)에 이르렀다. 그가 공연하는 도시마다 팬들이 몰려 들어 교통, 숙박, 식음료 판매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경기 부양 효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스위프트와 경제를 합성한 ‘스위프트노믹스(Swiftonomics)’란 신조어가 생겼다. 7월엔 보수적인 미국 중앙은행(Fed)이 경제동향 보고서인 ‘베이지북’에서 스위프트노믹스를 언급해 화제가 됐다. 스위프트와 비욘세의 투어 공연과 영화 ‘바벤하이머(바비+오펜하이머)’ 열풍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월가의 분석도 나왔다. 스위프트의 공연 수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합치면 그의 팬덤이 일으키는 경제 효과가 웬만한 중소·중견기업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다. 스위프트는 198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난 싱어송 라이터다. 2006년 데뷔한 그는 2010년, 2016년, 2021년 총 세 차례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비틀스, 밥 딜런, 마이클 잭슨도 한 번 이상 받지 못한 상이다. 총 12개 앨범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세계적으로 2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팔았다. K팝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7월 블랙핑크의 베트남 하노이 공연 당시 해외 관광객이 급증하고, 항공권 가격이 치솟고, 공연장 주변 숙박시설의 방이 동났다고 한다.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의 인기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다. 방송·영상·영화·문화·여행 등 서비스산업과 식음료·화장품·자동차·가전 등 소비재산업에 미치는 파급력도 크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970년 4월 11일 아폴로 13호는 산소탱크가 폭발하는 뜻밖의 사고를 당했다. 지구로부터 33만㎞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기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적잖게 당황했다. 직접 가볼 수도 없었다. 대신 NASA엔 15개의 시뮬레이터가 있었다. 고장 난 탐사선 환경과 동일 조건을 만들어 수차례 실험을 반복한 끝에 마침내 해법을 찾아냈다. 4월 17일 세 명의 달 탐사 우주인은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50여 년 전 NASA의 이런 시도와 닮은 현대의 기술이 ‘디지털 트윈’이다. 디지털 트윈이란 실제 사물, 건물, 도시 등을 디지털에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거울 세계’라고도 부른다. 2000년대 미국 가전업체 제너럴일렉트릭(GE)이 제조업에 처음 도입해 항공기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뮬레이션(모의실험)하는 데 활용한 것을 계기로 제조업은 물론 건설, 헬스케어,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했다. 최근엔 세계 각국이 디지털 트윈 시티에 관심이 높다. 2018년 싱가포르가 디지털 트윈 시티 구축을 완료, 도시계획 등의 가상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네이버가 서울시 605㎢, 60만 동 전역을 모두 3차원(3D)으로 복원해 ‘에스맵’을 구축했다. 디지털 트윈 시티를 만들면 모의로 빌딩 배치, 공원 조성 등을 해봄으로써 열섬 현상과 미세먼지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적용해 최적화한 도로 및 상·하수도 설계도 가능하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화재, 홍수 등 재난 시 피해도 줄일 수 있다. 2017년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디지털 트윈을 10대 유망 기술로 선정했다. 네이버는 이보다 앞선 2016년 디지털 트윈 투자를 시작했다. 그리고 8년 만에 사우디아라비아 5개 도시의 디지털 트윈 사
오랜 기간 세계는 저금리와 낮은 물가에 익숙해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무제한에 가까운 양적 완화를 펼쳤고, 나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일 만하면 위기가 터졌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팬데믹 등이다. 저금리는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치를 끌어올렸다.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 소비자들도 지갑을 열었다. 국채 이자 부담이 줄어든 주요국 정부도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아낌없이 재정을 퍼부었다. 저금리 시대는 지난해 급작스레 막을 내렸다. 막대한 유동성의 후폭풍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자 물가가 폭등했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 행렬이 이어졌다. 미국 중앙은행은 불과 1년여 만에 제로금리를 연 5%대로 끌어올렸다. 같은 기간 한국도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3.5%로 인상했다. 연 3.5%나 5%는 절대적 수치로 높다고 할 수 없지만, 10년 이상 저금리에 취해 있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금리가 단기간에 300%, 400%씩 튀어 오르자 경제가 여전히 활황인 미국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내외 주식시장이 된서리를 맞았다. 팬데믹 때 처음으로 3300선을 뚫고 올라선 코스피지수는 24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역사적으로, 이론적으로 금리와 주가는 대체로 역행한다. 금리가 계속 오르는 시기에는 주가가 오르기 어렵다. 제로금리 시대에 투자의 세계에 입문한 2030 젊은이들은 갑작스러운 주식·채권·부동산 가격 하락이 무척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위험자산 투자에 금리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이번 기회에 너무나 단순하지만, 오랫동안 잊혀왔던 투자원리를 배우는 셈이다. 일본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로금리 시대가 다시 찾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을 만나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K영화, K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녹색 병’의 정체가 뭐냐고. 녹색 병 앞에만 앉으면 주인공들이 사랑을 고백하고, 속마음을 술술 얘기하고, 울고 웃는다는 것이다. 녹색 병은 한국인의 국민주, K소주다. 소주는 그렇게 한류 콘텐츠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각인됐다. 그 소주가 이제 국민주를 넘어 세계인의 술이 될 조짐이다. 연간 수출량이 1억 상자(한 상자 30병)를 훌쩍 넘는다. 최근 베트남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자몽에이슬’ ‘청포도에이슬’ 등 과일소주를 병째 들고 마시는 게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병당 가격은 약 7000원으로 한국(5000원)보다 높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선 요즘 ‘전루퉁(眞露桶)’이 화제다. ‘전루’는 진로의 중국 발음이다. 전루퉁은 ‘딸기에이슬’ 등 전루와 음료, 과일을 섞어 펀치 스타일로 만든 주류 레시피.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한다. 이 덕분에 중국 내 과일소주 판매량은 2018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103% 늘었다. 수출 선봉장은 하이트진로다. 세계 80여 개국에 소주를 수출하고 있다. 2021년 1억달러를 넘어선 수출액은 지난해 1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수출이 크게 늘자 베트남에 해외 첫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롯데칠성도 ‘처음처럼 순하리’를 중심으로 소주 수출을 늘려 37개 국가에 진출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출액은 약 57% 증가했다.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일화다. 2016년 이란 대통령이 프랑스 국빈 방문을 앞두고 오찬에서 와인을 빼줄 것을 요청했다. 이슬람의 금주 율법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와인은 전통문화라며 거절했고, 오찬은 결국
지난 3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행자 지미 키멀은 객석의 배우들에게 “모두 너무 멋지다. 오젬픽이 나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할리우드 배우들은 물론 일론 머스크 등이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지자 비만 치료제 오젬픽과 위고비는 미국에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세계 다이어트 산업은 물론 식품 산업의 지형도마저 바꿔놓을 기세다. 오젬픽과 위고비 개발 업체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다. 비만약이 히트를 치자 이 기업의 가치는 덴마크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3954억달러)도 훌쩍 넘어섰다. 시가총액 4600억달러를 돌파하며 프랑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3739억달러)를 따돌리고 유럽 시총 1위에 올랐다. 인구 585만 명으로 서울보다 작은 나라에 삼성전자보다 큰 기업이 갑자기 탄생한 것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노보노디스크가 덴마크 경제를 재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보노디스크가 보여준 기업의 힘노보노디스크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과 혁신의 힘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보여준다. 이는 갈수록 격차가 커지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구 사회의 양대 축으로 일컬어지는 미국과 유럽은 이제 경제력으로만 비교하면 맞수라고 보기 힘들어졌다. 2012년 미국 GDP가 유럽연합(EU)을 추월한 이후 차이가 벌어져 지난해 27개 회원국 GDP 합계는 미국의 60%에 그쳤다. 이는 기업 경쟁력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글로벌 시총 톱10에 유럽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중국과 러시아 경제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러시아가 중국에 비해 영토가 훨씬 넓고 자원도 많지만 경제력 측면에서는 중국을 넘볼 수 없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편지를 주고받을 때 치환암호를 즐겨 사용했다. 알파벳을 순서대로 일정 자리씩 옮겨 암호화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알파벳을 세 자리씩 옮겨 암호화한다면 A는 D로, B는 E로 바꾸면 된다. 이 방식으로 ‘COME TO ROME’을 암호화하면 ‘FRPH WR URPH’가 된다. ‘카이사르 암호’는 역사상 기록으로 남겨진 가장 오래된 암호다. 암호학의 역사엔 두 차례 전환점이 있다. 첫 번째 전환점은 1, 2차 세계대전이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암호 설계와 해독에 참여하면서 암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두 번째 전환점은 컴퓨터 시대의 도래다. 컴퓨터로 인해 전문가들의 전유물이던 암호가 대중화했다. 1961년 미국 MIT가 학내 컴퓨터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비밀번호로 접속하는 ‘로그인’을 도입한 것이 시초였다. 현대사회 개인들은 메일, 포털, 소셜미디어, 쇼핑몰 등에 접속할 때마다 비밀번호를 요구받는다. 수많은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데 비밀번호의 요건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8~9자리 이상의 비밀번호에 특수문자, 대문자, 숫자까지 넣으라고 요구한다. 많은 사람이 해킹 위험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비밀번호는 ‘123456’이다. 2016년 트위터 계정이 털렸을 때 4000만 개 계정 중 12만 개 계정이 이 암호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구글을 비롯해 애플, 삼성전자 등이 잇따라 비밀번호 대신 패스키라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패스키는 얼굴, 지문, 홍채 등 생체 인식과 화면잠금 개인식별번호(PIN) 등 장치에 저장된 암호화 키에 접속해 로그인하는 방식이다. 생체 정보는 세계 80억 인
2021년 6월 미국 최연소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 탄생했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장 격이다. 당시 나이 32세, 1989년생 리나 칸이다. 파격적인 발탁을 가능케 한 것은 그가 29세 때 쓴 예일대 로스쿨 박사과정 졸업 논문이다. 제목은 ‘아마존 반독점의 역설’. 이 논문으로 칸은 ‘아마존 킬러’ ‘빅테크 저격수’란 별명을 얻었다. 미국은 반독점법이 강력하기로 유명하다. 어떤 기업이든 독점으로 판명되면 공중분해를 피할 수 없다. 1911년 ‘석유왕’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이 34개 기업으로 분할됐고, 같은 해 아메리칸토바코도 16개 회사로 쪼개졌다. 1984년 통신기업 AT&T는 8개 기업으로 흩어졌다. 칸은 논문을 통해 미국의 전통적인 반독점 규제 논리가 아마존 같은 신흥 플랫폼 기업엔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기존 반독점법은 기업이 시장을 독점해도 소비자 편익만 있으면 독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아마존의 방어 논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칸은 소비자와 생산자 양자만 포함해 독점 유무를 판단한 기존 반독점법에 플랫폼에 종속된 소생산자와 근로자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이 소비자에게 더 싼 가격을 제공하기 위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게 칸의 논리다. 뉴욕타임스는 처음 이 논문이 나왔을 때 “수십 년간 굳어진 반독점법을 뒤흔든(reframed)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취임 후 2년여가 지난 지금 칸의 성과는 초라하다. 빅테크 규제 법안은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지난해 말 폐기됐다. 칸이 칼을 겨눈 빅테크는 전 세계에서 돈을 벌어들이며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이들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칸의 주장이 지지를 얻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칸 위원장은 “패배에 대
K팝을 필두로 드라마, 영화 등의 한류 열풍에 힘입어 식품, 화장품 등 다른 영역에서도 K라벨이 붙으면 일단 믿고 사는 시대다. 하지만 K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부작용도 만만찮다. 해외에서 위조·모방한 짝퉁 K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대표적이다. 중국 알리바바에서 팔리는 가짜 불닭볶음면은 닭 그림의 위치만 바꿔놓고 ‘불닭볶음면’이란 글자를 명확하게 표시해놨다. 단감 등 중국산 과일이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산으로 둔갑해 팔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국 소주 참이슬을 베낀 ‘참일슬’을 비롯해 ‘너꾸리’ ‘포커칩’ 등 중국산 과자도 한국산이라고 속여 판다니 기가 찰 지경이다. 올해 1~7월 중국 알리바바와 동남아시아 쇼피, 인도네시아의 토코페디아 등에서 유통되는 한국 브랜드 짝퉁 상품의 피해 추정액은 6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자국 문화를 세계에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몇 안 된다. 미국, 일본, 유럽의 몇몇 나라 등 선진국뿐이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홍콩 누아르, 일본의 J팝,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음식과 패션, 브리티시 인베이전 등이 대표적이다. K브랜드의 부상은 그런 점에서 놀라운 성과다. ‘한강의 기적’이란 스토리에 더해 한국인 특유의 독창성, 혁신성, 근면성 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K라벨은 우리 조상들이 싸워 쟁취한 품질보증서다.”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최근 유럽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K팝의 아티스트 상품화 등 K브랜드를 비꼬는 듯한 기자의 질문에 “한국은 침략당하고, 둘로 나누어진 나라다.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
토머스 에디슨에게는 두 명의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다. 한 명은 그 유명한 니콜라 테슬라이고, 또 다른 이는 조지 웨스팅하우스다. 웨스팅하우스는 1886년 에디슨의 직류 전기에 대항해 교류 전기 시스템을 판매하는 웨스팅하우스를 창업했다. 웨스팅하우스는 가전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제너럴일렉트릭(GE)과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다. 1950년대엔 세계 최초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며 원전 사업에 뛰어들었다. 1970년대 미국 스리마일섬에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터지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가전, 원전 등 주력사업이 줄줄이 매각된 가운데 웨스팅하우스라는 본사 사명은 원전 자회사로 넘어갔다. 이 자회사는 1999년 영국 BNFL에 팔렸다가 2006년 일본 도시바에 매각됐다. 웨스팅하우스는 삼성전자 반도체에 밀려 고전하던 도시바에 새로운 희망이었다. 하지만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허사로 돌아갔다. 50개 원자로가 폐쇄되면서 도시바는 약 7조원에 이르는 웨스팅하우스의 손실을 떠안고 사실상 파산 상태가 됐다. 웨스팅하우스는 결국 2018년 캐나다 사모펀드인 브룩필드비즈니스파트너스를 거쳐 지난해 캐나다 우라늄 업체인 카메코에 팔리는 것으로 정리됐다. 한국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 건설은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전수로 시작됐다. 한국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인 1950년대 일찌감치 원자력 도입을 결정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과학고문이던 워커 리 시슬러 박사가 자원 빈국인 한국에 적합한 ‘머리에서 캐는 에너지’라며 설득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반세기 만의 원전 5대 강국 도달이다. 웨스팅하우스와 한국의 최근 갈등은 폴란드 원전 수주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시작
2021년 8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테슬라 인공지능(AI) 데이 행사에서 자율주행 AI 학습에 최적화한 슈퍼컴퓨터 ‘도조’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2년 후인 지난 7월 도조 생산을 시작했다. 모건스탠리는 도조가 테슬라의 기업가치를 5000억달러(약 664조원) 추가로 끌어올릴 것으로 최근 평가했다. 테슬라는 이미 최고 성능의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자율주행 데이터가 쌓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 기존 컴퓨터로는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 직접 설계한 칩(D1)을 적용해 성능을 대폭 높인 슈퍼컴퓨터를 개발했다. 테슬라는 도조가 내년 10월쯤 100엑사플롭스(EF: 1초에 100경 번 연산)의 연산 능력을 달성해 세계 최강 슈퍼컴퓨터가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슈퍼컴퓨터는 많은 연산 제어용 칩을 병렬로 연결해 계산 속도를 높인다. 이렇게 많은 칩을 연결하다 보면 데이터 전송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함으로써 연산 속도를 올리는 것이 슈퍼컴퓨터의 경쟁력을 가른다. 하지만 슈퍼컴퓨터와는 차원이 다른, 무려 1억 배 빠른 초강력 컴퓨터가 있다. 현존하는 최고 과학기술의 집약체이자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 양자컴퓨터다. AI나 딥러닝 알고리즘 발전 등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또 다른 혁명을 가져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의 컴퓨터는 0과 1로 이뤄진 정보 단위인 ‘비트’가 기본이 돼 작동한다. 반면 양자컴퓨터의 정보 단위인 큐비트는 양자 중첩을 이용해 00, 01, 10, 11 같은 정보를 동시에 표현한다. 중첩 상태의 병렬 계산을 하는 양자컴퓨터의 정보 처리 속도는 순차 계산을 하는 기존 컴퓨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난해 3월 초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미 패배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전쟁이 발발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승패를 점친 것이다. 그는 “러시아는 공습 전보다 더 약하고 가난하게 남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정복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침략은 돈이 됐다. 제국주의 시대는 물론 그 이전에도 그랬다.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해 돈을 벌었다. 스페인이 아즈텍과 잉카를 침략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대략 150년 전 이 명제는 무너져내렸다. 경제학자들이 ‘최초의 글로벌 경제’라고 부르는 철도, 증기선 등이 탄생한 1870년대쯤이다. 엇갈린 미·중 경제의 시사점국제 금융 및 분업 체계가 촘촘히 짜여져 있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구축된 이후 침략에 나서는 국가들은 이 시스템에서의 탈락을 각오해야 한다. 현대 경제 구조에선 땅보다는 비즈니스 시스템의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설사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경제적 손실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평판 문제까지 더해지면 손실은 더 커진다. 1년 반 동안 이어진 지난한 전쟁 속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엑소더스, 투자와 소비 급감, 루블화의 폭락 등을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진 러시아의 경제는 이를 잘 보여준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크루그먼의 예측은 정확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관점으로 중국 경제를 보자. 중국은 대만을 위협하고 있지만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글로벌 규범을 내던지고 시진핑 독재 체제를 구축하며 고립을 자초한 결과 경제 위기에 빠졌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최대 수혜국으로 ‘세계의 공장’
2016년 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애덤 뉴먼 위워크 최고경영자(CEO)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똑똑한 사람과 미친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미친 사람이 이기죠”란 뉴먼의 답에 손 회장은 “제가 보기엔 아직 덜 미친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더 미치도록 사업을 확장하라는 얘기였다. 40분 안팎의 이 대화로 뉴먼은 44억달러(약 5조8000억원)의 투자를 받아냈다. 이후 위워크의 기업가치는 470억달러(약 62조2000억원)까지 치솟았다. 위워크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8년 창업했다. 당시 부동산 가격이 낮았던 데다 금융위기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창업을 위해 값싼 사무실을 찾는 수요가 많아 남다른 각광을 받았다. 뉴먼은 달변가였다. 위워크의 비전을 잘 포장했다. “지금까지는 ‘I’(아이폰)의 시대였지만 앞으로 10년은 ‘We’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투자자들을 설득했다. 신생기업 위워크를 애플과 동일선상에 올려놓는 영리한 마케팅이었다. 위워크는 창업 9년 만에 세계 120여 개 도시에서 800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하며 공유경제의 간판기업으로 떠올랐다. 승승장구하던 위워크는 2019년 위기를 맞았다. 방만한 경영과 독단적인 기업 지배구조, 모럴해저드가 도마에 올라 기업공개에 실패했다. 뉴먼은 자가용 비행기 안에서 대마초를 피워댔다.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위워크에 임대해 돈을 벌기도 했다. 손 회장은 “어리석은 투자였다”고 공개 사과했다. 위워크는 이후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과의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하며 재기를 노렸으나 코로나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곧 파산보호를 신청할 것이란 소식이다. 유니콘 기업 위워크는 실패의 아이콘
‘갤럭시 언팩’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신제품 공개 행사다.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갤럭시S를 처음 선보이며 시작해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베를린,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전 세계 주요 도시로 이어졌다. 이 언팩 행사가 지난 26일 처음으로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은 삼성전자의 성장이 시작된 심장부이며 서울은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고 글로벌 트렌드와 혁신을 이끄는 도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삼성전자는 언팩 초청장과 광고에 영어가 아니라 한글로 ‘언팩’이라고 쓰기도 했다. 우리 고유의 한글도 갤럭시 신제품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 것이다. ‘짐을 꺼내다, 풀다’란 의미의 영어인 언팩(unpack)이란 행사명을 쓰는 기업은 삼성전자뿐이다. 언팩은 갤럭시 브랜드 출범 당시 이영희 마케팅 임원(현 글로벌마케팅실장)이 만든 것이다. 경쟁사 애플은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신제품을 공개한다. 삼성전자가 서울에서 언팩 행사를 연 것은 K팝, K드라마 등 한류를 타고 서울이 세계인들에게 ‘힙한 도시’로 각인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 들어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루이비통, 구찌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서울에서 신제품 공개 행사를 열었다. 루이비통은 지난 4월 한강 잠수교에서, 구찌는 5월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도쿄에서 열린 서울관광 프로모션 행사에서 “서울은 이미 국제적으로 아주 힙하고, 핫한 도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번 언팩 행사엔 40여 개국 700여 명의 외신기자를 비롯해 협력사 관계자, 해외 유명 인플루언서 등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언팩 동영상 생중계는 약 80개국에서 시청
캐나다에선 올 들어 남한 면적에 해당하는 10만㎢ 이상의 산림이 불에 탔다. 그리스에선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어서자 파르테논 신전 운영을 중단했다. 유럽을 비롯해 미국 일부 지역은 50도에 육박하는 살인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지난달이 1850년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고 발표했다. 올 들어 기후 재난으로 인한 미국의 피해액은 120억달러(약 15조원)다. 이미 작년 한 해(180억달러)의 3분의 2 수준에 도달했다. 전례없는 기후 변화 탓에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미증유의 재해가 속출하자 학계에선 인류세 도입 논의가 활발해졌다.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는 인류를 뜻하는 ‘anthropo-’에 지질시대의 한 단위인 세(世)를 뜻하는 ‘-cene’을 결합해 만든 용어다. 인류세 논의가 시작된 계기는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지구환경 관련 국제회의다. 이 회의에서 네덜란드 출신 기후과학자이자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J 크뤼천은 “우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류가 온실가스, 핵 등 방사성 물질로 지구를 크게 변화시킨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지질시대 명칭을 홀로세(약 1만 년 전 시작된 신생대 4기의 마지막 연대)에서 인류세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였다. 국제지질학연맹은 2010년께 산하에 ‘인류세 워킹그룹(AWG)’을 꾸리고 인류세 연구에 착수했다. 최근 AWG는 인류세를 대표할 지층인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를 선정해 발표했다. 인류세 도입 여부는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인류세 도입에 반대하는 학자도 많다. 인간에 의한 지구 파괴를 강조하는 정치적 목적이 강하다는 게 그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것, 갖기 힘든 것을 갈망하게 마련이다. 현대 사회는 이런 심리를 마케팅에 활용한다. 희소 마케팅이다. 소비자들은 곧 품절이라고 하면 불안감을 느낀다. 앞으로 이 제품을 구매할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더 많은 사람이 제품을 사고, 제품의 인기는 치솟는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갖기 어려운 제품을 손에 넣었을 때 이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승리감을 만끽하는 것을 ‘득템 트렌드’라고 한다. 득템 심리를 겨냥한 마케팅 기법도 다양하다. 한정된 물량만 판매해 구매하고 싶게 만드는 ‘헝거 마케팅’, 당첨자에게만 제품을 판매하는 ‘래플 마케팅’, 특정 시간대에 신상품이나 한정판 제품을 선착순으로 판매하는 ‘드롭 마케팅’ 등. 한정판 굿즈를 갖기 위해 새벽부터 오픈런을 하거나 마시지도 않을 음료를 수백 잔씩 구매하는 현상 등은 모두 이런 마케팅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농심의 신제품 ‘먹태깡’이 출시 초반 인기가 치솟아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편의점과 마트에서는 이미 구하기 어렵고, 자사몰에서도 구매 수량을 1회당 4봉지로 제한했지만 매일 2분 만에 동이 난단다. 중고 사이트에선 먹태깡을 정상가(1700원)의 두 배 이상 가격에 판매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먹태깡을 맥주와 함께 먹는 사진을 올릴 정도로 화제다. 먹태깡 득템 방법, 편의점 재고 조회 방법, 맛있게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소스 레시피, 에어프라이어 조리법 등이 넘쳐난다. 2014년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 지난해 SPC삼립의 포켓몬빵 열풍과 비교되기도 한다. 먹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가 내놓은 새로운 소셜미디어 스레드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출시한 지 닷새 만에 가입자 1억 명을 돌파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앱’이 됐다. 20억 명이 넘는 가입자를 거느린 세계 1위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도 초기 1억 명 이용자를 모으는 데 2년 반이 소요됐다. 유튜브는 2년10개월, 챗GPT는 두 달이 걸렸다. ‘스레드 신드롬’이라고 할 만하다. 스레드가 빛의 속도로 가입자를 끌어모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인스타그램 연동 효과, FOMO(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 현상 등을 꼽는다. 하지만 초기 흥행의 일등공신은 단연 트위터와 일론 머스크다. 지난해 트위터를 인수한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수익성 확보를 내세워 인력을 75% 감축하는 바람에 서비스 먹통 사태까지 일으켰다. 이렇게 양산된 트위터 난민이 ‘트위터 대항마’를 자처한 스레드로 대거 몰려들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와 머스크의 결투 설전도 개업 홍보에 날개를 달아줬다. 지난달 말 한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스레드가 트위터의 라이벌이 될까”라는 질문에 머스크가 “무서워 죽겠네”라고 비꼰 것이 설전의 발단이었다. “저커버그가 주짓수를 한다는데 조심하라”는 이어진 트윗에 그는 “결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고, 저커버그는 “위치를 찍으라”고 응수했다. 이 희한한 대결이 성사되면 10억달러의 흥행 수입이 기대된다는 관측마저 나왔다. 챗GPT는 혁신이었다. 하지만 스레드에선 아직까지 이렇다 할 혁신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초기 흥행에 성공한 배경은 역설적이게도 소셜미디어 피로감이다. 초기 소셜미디어는 현실 사회의 인간관계를 디지털 세계로 확
1983년 6월 30일 KBS는 6·25전쟁 33주년, 휴전협정 30주년을 기념해 특별 프로그램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시작했다. 전후 30년간 생이별해 생사를 모르고 살아가던 가족들이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들고 KBS 공개홀로 몰려들었다. 이산가족을 찾는 10만952건의 신청이 접수됐고, 1만189건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생방송은 총 138일간 이어졌다. 최고 시청률은 78%. 세계 방송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2015년 이 프로그램은 전쟁과 분단의 참상을 고발해 인류 평화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KBS가 공영방송이었기에 가능했던 프로그램이다. ‘용의 눈물’처럼 제작비가 많이 들고 호흡이 긴 대하사극, 시청률이 떨어지는 국악 프로그램 등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은 정부와 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방송이다. 민영방송과 달리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로 운영하는 대신 고도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런 점에서 KBS는 공영방송의 본래 의미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부 헤게모니가 달라졌고 그에 따라 방송의 편파성 시비가 이어졌다. 특히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KBS는 ‘노영(勞營)방송’ MBC 못지않게 친정부 행태를 보였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방송을 장악한 좌파의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앵커 클로징 멘트 임의 삭제, 돈봉투 송영길 출연, 좌파에 일방적으로 치우친 패널 구성, 일장기 경례 허위 보도에 이르기까지. 이쯤 되면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실이 국민 제안 공개 토론에 부쳤던 KBS 수신료 분리 징수에 참여자의 96.5%가 찬성했다. 이런 국민 여론은 KBS
1960년대 초 의약품 역사상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있었다. 입덧에 효능이 뛰어난 이 약을 먹은 산모들 아기의 팔다리가 짧거나 없이 태어난 사건이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 사건을 계기로 1962년 식품·의약품·화장품에 대한 초강력 규제를 도입했다. 10여 년 뒤인 1970년대 초 샘 펠츠먼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는 이 규제가 신약 개발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 규제 도입 전후 FDA가 승인한 약품 수가 60%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펠츠먼은 “10%의 잠재적 부작용을 막기 위해 60%의 잠재적 혁신이 제거된 산탄총 규제”라고 비판했다. 1970년대 펠츠먼 교수를 비롯해 아르먼 앨치언, 해럴드 뎀세츠, 벤저민 클라인, 로버트 클라워 등 자유시장을 연구한 학자들을 일컬어 ‘UCLA학파’라고 한다. 최근 출간된 은 20세기 경제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몇몇은 이를 익살스럽게 ‘로스앤젤레스 소재 시카고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경제학 연구 성과와 영향력 측면에서 시카고학파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UCLA학파는 광고 규제를 둘러싼 논쟁에도 중요한 공헌을 했다. 광고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느냐, 소비 열망만 불러일으키냐는 논쟁이었다. 클라인 교수는 이와 관련해 “광고하면서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은 상표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자 믿을 만한 제품을 제공하는 데 힘쓰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UCLA학파는 맹렬한 자유시장 옹호자이지만 자유시장이 완전하게 작동하고 항상 교과서적인 효율을 달성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단 자유시장 거래의 불완전 요소들이 정부의 개
최근 코로나 봉쇄령이 풀리자마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 등 미국 기업 CEO들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해 시장 공략에 나섰다. 미국 보수 진영에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자 국가 안보를 해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왔다. 과거 미국 CEO들의 중국 방문은 문제될 게 없었지만 미·중 패권 전쟁이 날로 격화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CEO들의 방중 자체만으로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시대가 됐다.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차질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등은 세계 경제·안보 패러다임을 바꿔놨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 후 30년간 지속됐던 세계화, 자유무역 시대는 막을 내렸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4월 말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를 소개하며 “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 구조는 명확한 기둥을 가진 파르테논 신전이었지만 지금은 비틀어진 비정형 곡선으로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정치적·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경영 리스크도 커졌다. 이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기업 내에 기술, 재무, 인사 등 부문 최고책임자 외에 정치·외교 분야 최고책임자인 이른바 최고정치책임자(CPO·chief political officer)를 둬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관(對官) 부서를 두고 국내 정치 리스크를 관리해온 국내 대기업들이 이를 해외로 확장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DC 사무소를 개설한 LG그룹은 15년간 백악관에서 근무한 조 헤이긴 전 백악관 부(副)비서실장을
“유럽인들 사이에서 한국인은 시칠리안으로 불린다. 그만큼 감수성이 뛰어나다.” 지난해 여름 국내 개봉한 다큐멘터리 ‘K클래식 제너레이션’에서 한 독일 피아니스트가 한 말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티에리 로로 감독은 세계 3대 콩쿠르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현장 중계를 20년 넘게 맡아온 인물이다. 그는 2010년대 이후 각종 해외 클래식 콩쿠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K클래식에 대한 호기심에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했다. 그가 분석한 K클래식 비상의 원인은 설득력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내 한국예술영재교육원 등 체계적인 영재 조기 육성 시스템, 금호·현대·LG 등 기업들의 활발한 메세나 활동, 자녀 교육을 위해 헌신적인 부모들의 교육열이 시너지를 낸 결과란 분석이다. 무엇보다 시칠리안 같은 한국인의 DNA가 K클래식 돌풍의 원천이란 분석이 흥미롭다. 시칠리아 사람은 유럽인 가운데서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감수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예술에서 감수성은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비슷한 기량을 갖춘 연주자의 최종 우열을 가리는 경쟁력이기도 하다. 2017년 밴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연주자는 늘 신선한 감정 상태를 유지해야 좋은 연주가 나온다”고 했다. 성악가 김태한(바리톤)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아시아권 남성 처음으로 우승했다. 세계 성악 역사를 새로 쓰며 K클래식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번 콩쿠르에는 역대 최다인 412명이 지원했다. 12명이 오른 결선 무대에 한국인이 3명이나 포함됐다. 심사위원을 맡은 소프라노 조수미는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부적응자들, 반역자들, 말썽꾼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인류를 진전시켰다. 사람들은 그들을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천재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할 만큼 미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997년 애플의 광고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에 나오는 문구다. “미치광이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1985년 애플을 떠난 지 12년 만에 복귀한 시점에 발표됐다. 당시 애플은 파산 위기에 몰려 있었다. 구원투수로 돌아온 잡스는 애플 직원들을 상대로 새로운 광고 캠페인을 소개하면서 애플의 핵심 가치에 대해 강연했다. “애플 제품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7년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장담한 대로 세상을 바꿔 모바일 시대를 열었다. 잡스의 철학은 아직도 애플의 기업 철학으로 남아 있다. 2021년 잡스 10주기 행사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전 직원에게 말했다. “잡스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의 관점으로 보도록 했다. 잡스가 남긴 선물 중 하나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세계 1등 기업이 됐다. 시가총액은 3조달러를 넘보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인공지능(AI)산업의 아이폰 모먼트가 시작됐다”고 했다. 아이폰이 새로운 시대를 연 것처럼 생성 AI의 시대가 이제 막 개막했다는 의미다. AI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엔비디아 주가는 AI 붐을 타고 올해 들어서만 160% 이상 뛰었다. 25일(현지시간) 기준 세계 시가총액 5위로 반도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시총 1조달러 클럽 진입을 눈앞에 뒀다. 시장
1926년 6월 7일 노년의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산책에 나섰다가 트램에 치였다. 사람들은 행색이 초라한 그를 노숙자로 오해하고 방치했다. 병원에 실려 갔지만 다음날에야 그가 가우디임이 확인됐다. 사흘 뒤 그는 전 재산을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에 기부할 것과 장례 행렬을 만들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떠났다. 두 번째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장례식 날 그의 관을 따르는 행렬이 바르셀로나 시가지를 가득 메웠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별칭은 ‘가우디 성당’이다. 1882년 착공한 뒤 1년 만에 첫 수석건축가가 사임해 감독이던 가우디가 수석건축가를 맡았다. 당시 31세였던 가우디는 독신으로 살면서 죽는 날까지 43년간 성당 건설에만 몰두했다. 해가 질 무렵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들어서면 황홀경 그 자체다. 노을빛이 얼기설기 높이 뻗은 나뭇가지를 닮은 기둥 사이로 성당 내부 곳곳을 비춘다. 마치 거대한 숲에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하늘과 별을 담은 천장, 태양 빛의 이동에 따라 색과 빛이 달라지도록 한 스테인드글라스 모두 가우디의 설계다.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는 그의 건축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유네스코는 가우디 건축물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며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41년째 공사 중이다. 가우디 100주기인 2026년 완공이 목표다. 외신에 따르면 완공 시점이 또 미뤄질 수 있다고 한다. 입구용 대형 계단 건설을 위해 1000여 가구의 퇴거가 필요해 스페인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에
“말안장을 짊어지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다. 물고 있는 담배는 윈스턴도 카멜도 아니고, 물론 말보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말보로맨의 고독’에 나오는 문구다. 하루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였던 담배 말보로는 ‘고독한 남성’ ‘절대적인 마초’의 상징으로 많이 인용된다. 말보로 탄생의 역사에는 반전이 있다. 말보로는 원래 영국에서 탄생한 여성 전용 담배였다. 제조사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의 창업자인 필립 모리스가 1847년 런던에 담배가게를 열고 ‘여성의 기호품’이란 슬로건을 앞세워 팔기 시작했다. 1922년 미국에 진출하면서는 ‘5월처럼 부드러운(Mild as May)’이란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판매는 신통찮았다. 1954년 필립모리스는 마케팅 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주 소비자층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꾸고, 소방관 경찰 군인 카우보이 등을 광고에 등장시켜 남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서부영화의 유명한 배우들을 ‘말보로맨’으로 기용했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로 급부상했다. 말보로는 밋밋한 담뱃갑에 뚜껑을 달아 위를 젖힌 뒤 담배를 빼는 플립 톱 박스도 처음으로 적용했다. 강렬한 특유의 레드 디자인과 플립 톱 박스는 20세기 산업 디자인 역사에, 말보로맨은 마케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말보로는 1972년부터 지난해까지 50년간 세계 판매량 1위를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브랜드 가치는 40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필립모리스가 말보로의 종말을 예고했다. 야체크 올자크 필립모리스 회장이 “말보로를 박물관 유물로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건강에 해로운 담배 시장이 정체하자 고심 끝에 내놓은 전략이다. 필립모리스는 대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4월 중국 국빈 방문에서 “왜 달러가 세계를 지배하나”란 깜짝 발언을 했다. 미국과 서방이 요청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도 거부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기후변화에서는 미국과 동맹이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2월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때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파기한 미국과의 아마존 보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중 패권전쟁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브라질과 같이 초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실용·중립 노선을 지키는 큰 나라 25개를 묶어 ‘T25(transactional 25)’라고 이름 붙였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튀르키예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이다. T25는 글로벌 미들파워라고 할 만하다. 인구 대국 인도부터 소국 카타르까지 다양한 T25는 세계 인구의 45%,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한다. 유럽연합(EU)보다 비중이 크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들은 초강대국에 의존하기보다 등거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전략이다. T25의 등장은 다극화하는 국제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T25에 속하지 않지만 미국의 우방국인 프랑스도 최근 T25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중국 방문 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프랑스는 미국의 속국이 아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어 네덜란드 방문에서도 “유럽은 다른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길을 걸어야 한다”고
인류가 탄생한 이후 지속한 가장 오래된 노동 방식은 육체노동이다. 육체노동자를 뜻하는 블루칼라(blue collar)라는 표현은 1924년 미국 지역신문 구인 광고에 처음 등장했다. 직업을 옷깃(collar)의 색깔로 분류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청바지에 청색 셔츠를 입었다. 파란색 옷은 햇빛에 쉽게 바래지 않고, 얼룩이 묻어도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산업 고도화 시기를 거치며 블루칼라와 대조되는 직업군으로 화이트칼라가 등장했다. 관리, 기술, 사무 등에 종사하는 이들은 노동 장소(사무실), 경영상 지위(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지위), 직무 내용(정신노동) 등이 블루칼라와 달랐다. 옷이 더럽혀질 일이 없어 흰색 셔츠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화이트칼라라고 불렀다. 과거 경기 침체가 오면 블루칼라가 먼저 타격을 입었다. 기업들이 가장 먼저 꺼내 드는 카드가 생산 감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 실업 문제가 더 크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경영 환경이 나빠지자 금융·정보기술(IT) 분야에서 거센 해고 바람이 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사라진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다시 복원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인공지능(AI)이 회계사,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인사 전문가, 변호사 등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얘기다. 신문 보도가 아니더라도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란 전문가들의 관측은 숱하게 나왔다. 하지만 인간은 생래적으로 낯선 변화를 두려워한다. 저무는 화이트칼라 시대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직업과 일자리는
“안목은 남들이 지나친 것을 남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이다. 드러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응시하는 내공이다. 일상의 단순함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것을 찾는 능력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이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면 작품이 좋아도 외면한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와 달리 명품이면 값을 따지지 않았다. “특급이 있어야 컬렉션의 위상이 올라간다”는 게 지론이었다. 2020년 4월 유족이 대규모 미술품을 기증하면서 드러난 ‘이건희 컬렉션’은 방대한 규모와 높은 수준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겸재 정선과 이중섭, 김환기 등 한국 작가 외에도 파블로 피카소,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로댕, 마크 로스코,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데이미언 허스트 등의 수백억원이 넘는 명품이 즐비했다. 미국 석유왕 ‘록펠러 컬렉션’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로 세계 5대 미술관을 열 수 있을 정도란 말이 나왔다. 1997년 이 전 회장은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할 미술관 터를 물색했다. 경복궁 동편의 송현동 부지가 눈에 들었다.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땅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으나 곧 외환위기가 터졌다. 환율이 뛰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부지를 지켜냈으나 개발 허가가 나지 않았다. 결국 송현동 미술관 꿈은 접어야 했다. 이후 한남동 자택 주변의 땅을 조심스럽게 조금씩 사들였다. 알박기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사 모은 부지에 2004년 리움미술관을 열었다. 리움미술관은 컬렉션뿐 아니라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개관 때부터 화제였다. 한 명도 모시기 어려운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 3명(마리오 보타, 렘 쿨하스,
“하느님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모건스탠리에 의뢰할 것이다.” 1970년대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광고 카피 문구다. 모건스탠리는 1935년 JP모건에서 떨어져 나왔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과 모건스탠리를 통칭해 ‘모건 하우스’라고 부른다. 이 광고 카피는 월가에서 모건 하우스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보여준다. 1913년 미국 중앙은행(Fed)이 창설되기 전까지 JP모건은 사실상 Fed였다. 1907년 10월 미국 3위 신탁회사였던 니커보커신탁이 파산했다. 뱅크런이 벌어졌고,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이때 JP모건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위기에 몰린 은행에 돈을 빌려주고, 대형 은행들의 협의를 이끌어냈다. 1985년 미국 정부의 채무 불이행 위기 때도 해결사는 JP모건이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저서 에서 “JP모건은 미국을 두 번의 파산 위기에서 구했다”고 썼다. 하지만 1912년 JP모건 설립자인 존 피어폰트(JP) 모건은 미국 하원위원회에 불려 나갔다. 자신과 동업자들의 금융조합이 112개 기업의 341개 이사직을 차지했다는 혐의로 취조받았다. 어떤 이들은 그를 ‘금융가의 모세’라고 극찬했지만, ‘자본주의 탐욕의 화신’이라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었다. 설립자 JP 모건은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과 오버랩된다. JP모건은 지난 1일 파산 위기에 몰린 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인수했다. 실리콘밸리은행, 시그니처은행에 이어 올 들어 세 번째 은행 붕괴다. 다이먼 회장은 “은행 위기가 끝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에도 위기에 빠진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잇따라 인수, 금융시장의 큰불을 껐다. ‘월가의 모세’를 자처하며 던진 승부수 덕분에 JP모건은 단숨에 미국 1위 은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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