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다운 블랙홀' 된 中…'金패딩' 우려에 떠는 韓
2013년 참치값이 급등했다. 식당 주인들 사이에서는 “중국인들이 참치를 먹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15억 인구의 중국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구스 다운(거위털) 가격 급등에도 중국의 수요가 작용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구스 다운을 입기 시작하면서 국내 패션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달부터 올가을·겨울(24FW)에 판매할 패딩 생산을 시작한 패션업체들은 패딩 원료인 다운을 구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구스 다운 가격은 올 들어 ㎏당 110달러대를 넘나들며 전례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국내 패션업체들은 다운의 80% 이상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미리 계약한 구스 다운 물량도 공급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패션업계에선 ‘제2의 요소수 사태’란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구스 입기 시작한 中

중국산 천연 다운 충전재 가격은 올 들어 큰 폭으로 뛰었다. 22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구스 다운 충전재(솜털 80%·깃털 20%, 그레이 기준)는 ㎏당 11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다운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당 60~70달러대였다. 하지만 2월 초 100달러, 설 연휴 이후 110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후 110달러대에서 고공 행진하고 있다. 다운 가격이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덕 다운(오리털)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설 연휴 이후 ㎏당 50달러대 중반에 이른 뒤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구스다운 블랙홀' 된 中…'金패딩' 우려에 떠는 韓
다운 가격이 급등한 원인은 여러 가지다. 먼저 중국인들이 구스 다운을 입기 시작하면서 중국 내수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지난겨울 중국의 기온이 평년보다 낮았던 것도 구스 다운 제품의 수요를 끌어올린 원인으로 꼽힌다. 베이징에선 지난달 중순까지도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에 머무는 등 한파가 이어졌다.

중국 소셜미디어인 틱톡 등을 통해 ‘왕훙’ 등 인플루언서들이 구스 다운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1~12월 중국 내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채널을 중심으로 구스 다운 제품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며 블랙홀이 됐다. 중국 내 아웃도어 패션 시장의 성장도 구스 다운 가격 급등의 원인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탄력을 받기 시작한 중국 아웃도어 패션 시장은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수차례 국제 대회를 거치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가장 근본적이고 주된 원인은 공급 부족이다. 중국에선 최근 값비싼 거위와 오리 고기 소비가 줄고, 닭과 돼지 고기 소비는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거위털과 오리털 공급이 감소했다. 거위털과 오리털은 거위와 오리를 키워 고기를 팔고 남은 부산물이다. 국내 다운 공급업체인 다음앤큐큐의 양지연 차장은 “식생활 변화뿐 아니라 농민의 인건비와 사료값 상승, 환경 규제 강화 등의 여파로 거위와 오리를 키우는 중국 농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공 행진 장기화하나

패션업체들은 통상 3~6월 중국산 다운을 매입한 뒤 봉제공장으로 넘겨 제품을 생산한다. 어렵게 고가에 물량을 확보한 업체들은 패딩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올겨울 패딩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아웃도어 패션업계 관계자는 “미리 충전재를 대량 확보한 고가 브랜드보다 중저가 브랜드를 취급하는 중소업체의 타격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구스 다운 가격의 고공 행진은 지속될 전망이다. 단기적으로 2025년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이 예정돼 있어 중국 내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장기적으로도 공급 감소 요인이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전 세계 다운의 70~80%를 공급한다.

다운 가격 급등은 패션업체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다. 패션업체의 수익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의류가 패딩이다. 다른 의류 제품군에 비해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다운 파동이 반복될 것이란 전망에 국내 업체들은 신소재 개발에 나섰다. 다음앤큐큐, 신주원, 태평양 등 다운 공급 업체는 물론 영원아웃도어 등 브랜드 업체도 천연 다운을 대체할 인공 충전재 등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영원아웃도어 관계자는 “노스페이스는 ‘티볼’ ‘온볼’ 등 인공 충전재를 잇달아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며 “해당 제품들은 보온성, 경량성 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다운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높고 세탁 등 관리가 쉬워 인기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