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이 택배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의 사용자라는 취지의 판정을 내렸다. 원청은 하청업체 근로자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중노위 판정을 스스로 뒤집은 것은 물론 대법원 판결도 부정한 것이다. 원청 사용자에게 하청 근로자에 대한 단체협상 의무를 인정한 것으로 산업현장 전반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중노위는 2일 ‘CJ대한통운-택배노조 사건’에 대한 판정 회의를 열고 기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사용자가 아니어서 교섭 의무가 없다’는 초심을 취소하고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정을 내렸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3월 소속 대리점이 아닌 원청(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의 사용자는 계약 당사자인 대리점이지 본사가 아니다’며 요청을 거부했다. 택배업은 본사가 각 대리점(집배점)과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고, 집배점은 택배기사들과 다시 위·수탁 계약을 맺는 구조다. 원칙적으로 택배사와 택배기사 간에는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서울지노위에 구제 신청을 했다. 서울지노위는 지난해 11월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의 사용자가 아니다’며 사건을 각하 처리했다. 이후 택배노조는 서울지노위 결정에 불복, 올해 1월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고 중노위는 서울지노위 결정을 뒤집고 택배노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경영계는 발칵 뒤집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중노위의 이번 결정은 대법원의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성 판단 기준 법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며 “중노위는 3년 전 동일한 취지의 사건에서 CJ대한통운은 집배점 택배기사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스스로 내린 결정마저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대법원은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조합원과 개별적 근로계약 관계가 당연히 전제돼야 한다고 판결해 왔다. 단체교섭 당사자가 되려면 명시적이거나 최소한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번 중노위 판정으로 비슷한 구제 신청 또는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택배기사뿐만 아니라 특수고용직 대부분의 직종이 원·하청 관계로 엮여 있는 만큼 다른 업종에서도 이번 판정을 근거로 원청에 대한 교섭 요청이 이어질 수 있다. 일반 제조업 대기업 사업장도 하도급을 상당 부분 활용하고 있어 후폭풍이 예상된다.

경총 관계자는 “이번 중노위 결정으로 노사 간 법정 다툼이 잇따르면서 문제 해결의 장기화와 고비용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향후 사법부가 행정소송 등 후속 절차에서 단체교섭의 본질에 입각한 명확한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은 “중노위 판정은 대법원 판례는 물론 기존 중노위, 지노위 판정과도 배치되는 내용으로 다툼의 여지가 많다”며 “중노위 결정에 유감을 표시하며 결정문이 도착하면 검토 후 법원에 판단을 요청하겠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