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울 헤닝센, 조지 넬슨, 알바 알토…. 건축, 가구, 디자인 등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분명한 족적을 남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는 조명을 설계했다는 점이다. 찬란한 빛의 예술로 대변되는 조명에는 시대의 미학이 온전히 녹아 있다.
빛의 형태까지 빚어낸 예술품…시대를 앞서간 조명 브랜드들

○건축가가 빚어낸 빛의 예술

1874년 설립된 루이스폴센(Louis Poulsen)은 빛 자체의 형태를 디자인하는 덴마크의 조명회사다. 1924년 덴마크를 대표하는 건축가 포울 헤닝센과 손 잡으면서 세계에 알려졌다. 헤닝센이 약 1년의 시간을 들여 1958년 디자인한 ‘PH 아티초크’는 화려함으로 눈길을 끈다. 솔방울처럼 생긴 국화과 식물 아티초크를 원형으로 설계한 72개의 잎사귀 사이로 빛이 각기 다른 각도로 뻗어나온다. 눈부시지 않으면서 모든 공간을 밝혀주는 절묘한 디자인이 포인트다.

루이스폴센의 ‘파테라’는 고전적인 샹들리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조명이다. 노르웨이의 디자이너 외이빈 슬라토가 2015년 설계한 펜던트 조명으로 360도 어느 방향에서 봐도 균일한 빛을 뿜어낸다는 게 특징이다. 빛의 원천인 태양을 모티브로 피보나치 수열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모든 시점에서 바라보는 이에게 각기 다른 느낌을 부여한다.

한지로 만든 등을 연상시키는 허먼밀러(Herman Millar)의 ‘버블램프’는 미국 가구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조지 넬슨이 1947년 디자인했다. 미국 가구회사인 허먼밀러는 1945년 넬슨을 영입하며 널리 알려졌다. 버블램프는 플라스틱 소재이면서도 한지의 질감을 표현한 조명이다. 동양적인 아름다움과 모던한 디자인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핀란드의 국민 영웅이자 세계적인 건축가인 알바 알토는 1935년 그의 아내 아이노 알토와 아르텍(Artek)을 설립하며 핀란드 디자인에 큰 획을 그었다. 그는 공간과 그 사용자를 고려한 가구와 조명을 설계했다. 그의 대표적인 조명 ‘골든벨’은 종 모양의 펜던트로 유선형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따뜻한 빛이 확산되는 것이 매력적이다. 황동 소재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색이 변해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기능성과 혁신적인 디자인

산업디자이너들도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조명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탈리아의 산업디자이너 비코 마지스트레티가 1977년 디자인한 올루체(Olluce)의 ‘아톨로’는 원기둥과 원뿔, 반구 형태의 기하학적 도형의 결합체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의 이 테이블 조명은 1979년 이탈리아의 산업디자인상인 황금콤파스상을 수상하며 이탈리아 조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영국 조명업체 앵글 포이즈(Angle Poise)의 ‘타입75’는 자동차 디자이너 조지 카워다인이 1932년 디자인한 스탠드 조명이다. 자동차에 사용되는 서스펜서 메커니즘을 적용해 사람의 관절처럼 자유자재로 꺾으며 다양한 각도로 빛을 비출 수 있다. 클래식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능성을 앞세워 세계 100대 디자인에 빠짐없이 언급되는 제품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조명으로는 책을 펼쳐놓은 형태의 ‘북램프’가 꼽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맥스 구나완이 설계하고 홍콩의 조명업체 루미오(Lumio)가 생산한다. 2015년 레드닷 상품 디자인상을 받은 북램프는 평상시에는 접었다가 필요할 때 펼쳐서 빛을 밝힐 수 있는 이동용 충전식 조명이다. 책 모양의 조명을 90도, 180도, 270도 등으로 다양하게 펼쳐서 활용할 수 있다.

한국 디자이너의 조명 브랜드 아고(Ago)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스웨덴 최대 예술·디자인학교 콘스트팍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 유화성이 스웨덴 스톡홀름에 설립한 디자인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하고 있다. 아고의 펜던트 조명 ‘모찌’는 찹쌀떡을 모티브로 가운데를 살짝 찌른 듯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모습이다. 단순하면서도 친숙한 디자인을 앞세워 기존 조명과 차별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