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시] 대동강 물 언제 마르나, 이별 눈물 해마다 보태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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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보내며(送人)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짙은데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꼬,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거니.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고려 최고 서정시인 정지상(鄭知常, ?~1135)의 절창이다. 시 제목은 《동문선(東文選)》에 ‘송인(送人)’으로 기록돼 있지만 《대동시선(大東詩選)》에는 ‘대동강(大同江)’이라고 돼 있다.
봄비가 그친 강둑 위로는 풀빛이 푸르러오는데 정든 임과 이별하는 슬픔으로 가슴은 미어진다. 흐르는 눈물이 강물에 하염없이 떨어지니 대동강 물인들 마를 날이 있을까. 참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다. 중국 시인들도 탄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헤어지는 장소가 왜 하필이면 남포(南浦)일까. 어떤 사람은 대동강 남쪽 기슭이나 하류 쪽 광량만의 남포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진남포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시를 좀 아는 사람들은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남포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후 거의 모든 시인에게 이별을 상징하는 정운(情韻)의 시어로 씌어졌기 때문이다.
그 연원의 끝에는 중국문학사상 가장 오래이자 최고로 평가받는 대시인 굴원(屈原)이 있다. 굴원은 기원전 300년 무렵에 쓴 ‘구가(九歌)’ 중 ‘하백(河伯)’에서 ‘그대의 손을 잡고 동으로 갔다가 남포에서 떠나보내네(子交手兮東行 送美人兮南浦)’라고 노래했다. 이 구절을 보고 무릎을 친 후배 시인들은 실제로 헤어지는 포구가 동쪽 포구이든 서쪽 포구이든 북쪽 포구이든 간에 모두 다 남포라고 말했다.
중국 남조시대 강엄(江淹)도 ‘별부(別賦)’에서 ‘봄풀은 푸르고 봄물은 초록 물결, 남포에서 그댈 보내니 이 슬픔 어이하리(春草碧色 春水綠波 送君南浦 傷如之何)’라고 노래했다. 당나라 무원형(武元衡) 또한 ‘악저송우(鄂渚送友)’에서 ‘강 위 매화는 무수히 지는데, 남포에서 그댈 보내니 마음만 안타깝다’고 했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별처가(別妻家)’ 중 ‘부용꽃 새벽이슬 젖어 있는데, 가을날 남포에서 헤어지누나(芙蓉濕曉露 秋別南浦中)’도 마찬가지다.
정지상이 쓴 같은 제목의 또 다른 이별시 ‘임을 보내며(送人)’에도 남포가 등장한다.
‘뜰 앞에 나뭇잎 지고, 마루 밑 벌레 슬프네./ 홀홀이 떠나는 것 말릴 수 없네만, 유유히 어디로 가는가./ 한 조각 마음은 산 다한 곳, 외로운 꿈엔 달 밝을 텐데/ 남포에 봄 물결 푸르를 때, 그대여 뒷기약 잊지 마시게.(庭前一葉落 床下百蟲悲, 忽忽不可止 悠悠何所之, 片心山盡處 孤夢月明時, 南浦春波綠 君休負後期)’
떨어지는 나뭇잎과 벌레 소리에 빗대 정인을 보내는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산이 다한 곳까지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고, 이별한 뒤 외로이 꾸는 꿈이 밝은 달빛 같은 것이라며, 잊지 말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부디 어기지 말라는 기원까지 담았다. 떠나는 것에 대한 슬픔이 큰 만큼 다시 만날 희망도 간곡하다.
정지상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짙은데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꼬,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거니.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고려 최고 서정시인 정지상(鄭知常, ?~1135)의 절창이다. 시 제목은 《동문선(東文選)》에 ‘송인(送人)’으로 기록돼 있지만 《대동시선(大東詩選)》에는 ‘대동강(大同江)’이라고 돼 있다.
봄비가 그친 강둑 위로는 풀빛이 푸르러오는데 정든 임과 이별하는 슬픔으로 가슴은 미어진다. 흐르는 눈물이 강물에 하염없이 떨어지니 대동강 물인들 마를 날이 있을까. 참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다. 중국 시인들도 탄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헤어지는 장소가 왜 하필이면 남포(南浦)일까. 어떤 사람은 대동강 남쪽 기슭이나 하류 쪽 광량만의 남포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진남포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시를 좀 아는 사람들은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남포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후 거의 모든 시인에게 이별을 상징하는 정운(情韻)의 시어로 씌어졌기 때문이다.
그 연원의 끝에는 중국문학사상 가장 오래이자 최고로 평가받는 대시인 굴원(屈原)이 있다. 굴원은 기원전 300년 무렵에 쓴 ‘구가(九歌)’ 중 ‘하백(河伯)’에서 ‘그대의 손을 잡고 동으로 갔다가 남포에서 떠나보내네(子交手兮東行 送美人兮南浦)’라고 노래했다. 이 구절을 보고 무릎을 친 후배 시인들은 실제로 헤어지는 포구가 동쪽 포구이든 서쪽 포구이든 북쪽 포구이든 간에 모두 다 남포라고 말했다.
중국 남조시대 강엄(江淹)도 ‘별부(別賦)’에서 ‘봄풀은 푸르고 봄물은 초록 물결, 남포에서 그댈 보내니 이 슬픔 어이하리(春草碧色 春水綠波 送君南浦 傷如之何)’라고 노래했다. 당나라 무원형(武元衡) 또한 ‘악저송우(鄂渚送友)’에서 ‘강 위 매화는 무수히 지는데, 남포에서 그댈 보내니 마음만 안타깝다’고 했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별처가(別妻家)’ 중 ‘부용꽃 새벽이슬 젖어 있는데, 가을날 남포에서 헤어지누나(芙蓉濕曉露 秋別南浦中)’도 마찬가지다.
정지상이 쓴 같은 제목의 또 다른 이별시 ‘임을 보내며(送人)’에도 남포가 등장한다.
‘뜰 앞에 나뭇잎 지고, 마루 밑 벌레 슬프네./ 홀홀이 떠나는 것 말릴 수 없네만, 유유히 어디로 가는가./ 한 조각 마음은 산 다한 곳, 외로운 꿈엔 달 밝을 텐데/ 남포에 봄 물결 푸르를 때, 그대여 뒷기약 잊지 마시게.(庭前一葉落 床下百蟲悲, 忽忽不可止 悠悠何所之, 片心山盡處 孤夢月明時, 南浦春波綠 君休負後期)’
떨어지는 나뭇잎과 벌레 소리에 빗대 정인을 보내는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산이 다한 곳까지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고, 이별한 뒤 외로이 꾸는 꿈이 밝은 달빛 같은 것이라며, 잊지 말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부디 어기지 말라는 기원까지 담았다. 떠나는 것에 대한 슬픔이 큰 만큼 다시 만날 희망도 간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