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파도는 언제나 유능한 뱃사람의 편이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의 명언이다. “거친 파도가 유능한 뱃사람을 만든다”는 영국 속담과도 닮았다.기번은 독신 생활을 하며 26년 동안 로마사를 연구한 끝에 필생의 대작을 완성했다. 그가 찾은 로마제국의 강성 비결은 거센 바다의 폭풍우 같은 역경을 이겨낸 응전과 도전의 힘이었다. 로마가 멸망한 것은 이 같은 역경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돛에 의지하던 범선(帆船) 시절, 뱃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한 건 무풍지대였다. 맞바람이라도 불면 역풍을 활용해 나아갈 수 있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면 오도 가도 못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적도 부근이나 북위·남위 25~35도는 ‘죽음의 바다’였다. 이곳에 갇히면 소설과 영화에 나오듯 선원들이 다 죽고 배는 유령선이 된다.동력으로 항해하는 기선(汽船) 시대에는 무풍 대신 폭풍과 파도가 가장 큰 적이 됐다. 세계기상기구(WMO)에 기록된 파도의 최고 높이는 29.1m로, 아파트 10층 규모였다. 영국 해양조사선이 2000년 2월 8일 밤 스코틀랜드 서쪽 250km 해상에서 관측했다.파도는 해수면의 강한 바람에서 생긴다. 그래서 ‘풍파(風波)’라고 한다. 파도의 가장 높은 곳은 ‘마루’, 가장 낮은 곳은 ‘골’, 마루와 골 사이의 수직 높이는 ‘파고(波高)’다. ‘파장(波長)’은 앞 파도 마루와 뒤 파도 마루 사이, 골과 골 사이의 수평 거리를 뜻한다. 뱃사람들은 파고와 파장을 눈으로 재면서 파도가 얼마나 세게 밀려올지 판단한다.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배가 부서지고 목숨을 잃는다. 서양인들이 “전쟁에
도스토옙스키는 늘 돈과 시간에 쫓겼다. <죄와 벌>을 쓸 무렵에는 극한 상황에 몰렸다. 형과 함께 시작한 잡지와 출판사가 연달아 망하고, 갑자기 세상을 뜬 형의 빚을 떠맡은 데다 형수와 조카들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도박 빚까지 짊어져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간신히 월간지에 <죄와 벌>을 연재하기 시작했지만 굶기를 밥 먹듯 했다. 1866년, 그의 나이 44세 때였다.돈이 급한 그는 그해 10월 4일 다른 출판사와 선불 계약을 맺었다. 조건은 ‘11월 1일까지 새로운 장편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면 향후 9년간의 출판권을 모두 넘긴다’는 것이었다. 마감까지는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죄와 벌>만으로도 밤을 새울 판인데, 그사이에 새 작품까지 써내야 하다니! 피가 말랐다.다급해진 그는 속기사를 구해 밤낮으로 구술하며 미친 듯 받아 쓰게 했다. 그렇게 해서 27일 만에 <노름꾼>을 탈고했다. 마감 하루 전 원고를 넘긴 그는 출판권을 빼앗기는 위기는 모면했다. 이 와중에 <죄와 벌>의 최종회 연재 원고까지 완성했다.그의 초인적 집중력은 압박과 몰입 덕분이었다. 시간 압박이 강할수록 몰입력은 커진다. 이런 ‘압박형 창작’ 유형은 의외로 많다.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여러 소설을 겹치기로 연재하며 매일 마감 시간과 싸웠다. 출판과 인쇄업에 연거푸 실패한 그는 빚을 갚기 위해 하루 15시간씩 글을 썼다.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50잔이나 마셨다. 그렇게 전력투구한 결과 90여 편의 장편과 중편, 30편의 단편, 5편의 희곡을 남길 수 있었다.알렉상드르 뒤마도 신문 소설을 한꺼번에 연재했다. 43세 때인 1844년에는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 <여왕
홀로와 더불어 구상나는 홀로다.너와는 넘지 못할 담벽이 있고너와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고너와는 헤아릴 바 없는 거리가 있다.나는 더불어다.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이 담겨 있고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이 배어 있고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이 스며 있다.이렇듯 나는 홀로서또한 더불어서 산다.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구상(具常) 시인의 문학 정신을 한눈에 보여주는 시입니다. ‘홀로서기’와 ‘함께 있음’을 대비하면서 ‘대긍정’과 ‘조화의 철학’을 잘 드러낸 작품이지요.첫 연의 “넘지 못할 담벽”과 “건너지 못할 강”, “헤아릴 바 없는 거리”는 존재론적 간극을 상징합니다. “너”는 결코 내 안으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섣부른 화해로 건너뛰지 않고 홀로됨의 냉정을 먼저 인정합니다. 이것이 대긍정의 출발점입니다.그런 다음엔 바로 반대편을 제시합니다. “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과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 “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 이것은 남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나는 홀로이되 홀로만으로 성립할 수 없는 존재이지요. 우리는 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갑니다.“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 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럴 때 ‘평형’은 중간 지대의 타협이 아니라 ‘홀로’를 지키면서 ‘더불어’를 아우르는 균형을 의미하지요.최근 열린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창립 20주년 기념 강연에서 김재홍
자규시(子規詩) 단종한 마리 원통한 새 궁중을 떠나온 뒤외로운 홑 그림자 푸른 산중 헤매누나.밤마다 잠을 청해도 잠은 이룰 수 없고해마다 한을 풀려 해도 한은 끝이 없네.울음소리 끊긴 새벽 봉우리 달빛만 희고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붉은 꽃이 지네.하늘은 귀먹어서 슬픈 하소연 못 듣는데어찌하여 설움 많은 내 귀만 홀로 밝은고.---------------------------------비운의 조선 왕 단종(1441~1457)이 강원도 영월 유배지에서 지은 ‘자규시(子規詩)’입니다. 피를 토하듯 운다는 자규, 곧 두견새에 자신을 빗대어 읊은 절창이지요. 짧은 시지만 그 속에 어린 임금의 한이 혈흔처럼 응축돼 있습니다.단종의 삶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현덕왕후를 여의었고, 열한 살에 아버지 문종이 승하하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요.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자 단종은 허울뿐인 상왕으로 밀려났습니다.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이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습니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산에 막혀 있는 ‘육지 속의 섬’이지요.청령포에 머문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자 단종은 영월 관아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관풍헌 앞에 누각이 있었는데, 단종은 그곳에 올라 먼 데를 바라보곤 했지요.이 누각에서 지은 시 중 한 편이 ‘자규시’입니다. 원래 매죽루(梅竹樓)라고 불리던 이 누각은 단종이 여기에서 자규의
얼마나 애틋했으면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을까. 북방 시인 백석은 남쪽 끝 통영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 친구 결혼식에서 한눈에 반한 통영 출신 이화여고생 ‘난(蘭, 본명 박경련)’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짝사랑하는 여인은 거기 없었다. 갈 때마다 길이 엇갈렸다. 낙심한 그는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아 울 듯 울 듯 손방아만 찧었다.당시 그는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을 거쳐 구마산역에 내린 다음 객줏집에서 자고 뱃길로 반나절 더 가서 통영에 도착했다. 그 먼 길에 어렵사리 꺼낸 청혼은 거절당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더 강렬하고 기억도 오래간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이가르니크 효과’ 혹은 ‘미완성 효과’ 때문일까. 백석에게 통영은 못다 한 사랑과 미완의 결핍이 교차하는 안타까운 항구다. 어쩌면 그 덕에 통영의 역사가 더 풍요롭고, 서정과 서사의 폭도 넓어졌는지 모른다.청마문학관엔 빨간 우체통이90년 전 그의 회한을 되짚으며 봄맞이 통영 기행에 나섰다. 옛 이틀 길을 고속버스로 네 시간 만에 닿았다. ‘난’이 살던 집 주소는 명정동 396.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한 그녀의 옛집 건너편엔 오래된 우물 두 개 ‘명정(明井)’이 나란히 있다. 다정한 부부 같다. 맞은편 공원의 시비에는 백석의 시 ‘통영 2’가 새겨져 있다. ‘미역 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구절이 유난히 애처롭다.명정동에서 서피랑 골목을 끼고 강구안으로 가는 항남동 길에도 백석의 애환이 서려 있다. 이곳은 청마 유치환과 김춘수 김상
처음 출근하는 이에게 고두현잊지 말라.지금 네가 열고 들어온 문이한때는 다 벽이었다는 걸.쉽게 열리는 문은쉽게 닫히는 법.들어올 땐 좁지만나갈 땐 넓은 거란다.집도 사람도 생각의 그릇만큼넓어지고 깊어지느니처음 문을 열 때의 그 떨림으로늘 네 집의 창문을 넓혀라-부분 발췌-“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스콜라철학의 대부인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명언이다. 그는 늘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라며 독선적 이념의 폐해를 경계했다.그가 로마 근교 수도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수도원장이 한 젊은 수도사에게 “맨 처음 만나는 수도사를 데리고 시장을 봐 오라”고 지시했다. 젊은 수도사는 눈에 띄는 한 뚱보를 잡아끌고 시장에 갔다. 그는 걸음이 느린 뚱보에게 퉁을 주며 야단을 쳤다.이를 본 시장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분이 누구신지 알아요?” “누구긴요. 수도사지.” “정말 모른단 말이오? 우리 시대 최고 석학이자 교황의 존경을 받는 토마스 아퀴나스 선생님을?”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사람들이 “왜 선생님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아퀴나스는 조용히 대답했다. “수도사의 본분은 순종과 겸양입니다. 저 젊은 수도사와 저는 그 본분을 따랐을 뿐입니다.”또 다른 일화. 아퀴나스가 교황청 발코니에서 교황과 함께 있을 때였다. 세금 수송마차가 돈을 가득 싣고 들어오는 광경을 보고 교황이 말했다. “저걸 보시오. 이제 교회가 ‘은과 금은 내게 없노라’고 말하던 시대는 지나갔소.” 그러자 그가 답했다. “예. 하지만 이젠 앉은뱅
사랑하고 잃는 게 더 나으리라 앨프리드 테니슨난 부러워하지 않네, 어떤 감정 상태에서도고결한 분노를 상실한 포로와새장 속에서 태어나여름 숲을 전혀 경험한 적 없는 방울새를.난 부러워하지 않네, 시간의 들판에서제멋대로 살아가며죄의식에 얽매이지 않고양심이 한 번도 깨어난 적 없는 짐승을.부러워하지 않네, 스스로 복되다 여길지라도사랑의 서약을 해 보지 않은 가슴나태의 잡초 속에 갇혀버린 마음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갖게 되는 휴식을.난 진실로 믿네, 무슨 일이 닥치든가장 깊은 슬픔 속에서도 느끼네.사랑하고 잃는 게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영국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유명한 시입니다. 이 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사랑하고 잃는 게/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마지막 구절이지요. 이 애틋한 문장 뒤에는 한 남자의 청춘을 송두리째 앗아간 상실과 17년 동안 이어진 애도의 서사가 숨겨져 있습니다.이야기의 첫 무대는 182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입니다. 내성적인 기질의 청년 테니슨 앞에 사교성 좋고 두뇌가 명석한 아서 헨리 핼럼(Arthur Henry Hallam)이 나타납니다. 둘은 순식간에 서로를 알아봤습니다.핼럼은 테니슨의 시적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지지자였고, 테니슨은 그런 핼럼을 “나의 절반”이라고 불렀습니다. 핼럼이 테니슨의 여동생 에밀리와 약혼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들에게 미래는 찬란한 금빛이었지요.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1833년 가을, 핼럼이 아
“모두가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바꾸려는 사람은 드물다.”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짧은 산문 ‘세 가지 개혁 방법’(1900)에 나오는 명언이다. 톨스토이는 이 글에서 정치가와 혁명가들이 세상의 부조리를 탓하며 타인을 비난하고 제도를 뜯어고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결국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을 향한 분노나 외침보다 인간 내면의 윤리적 결단을 중시한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톨스토이가 이 문장을 썼을 때 러시아는 혁명의 기운으로 들끓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황제의 폭정을 비판하고, 법을 바꿔야 한다고 외쳤으며, 체제를 무너뜨리면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그 광장의 언어에 숨겨진 기만의 그림자를 봤다. 타락한 귀족이 농노제를 비판하고, 탐욕스러운 졸부가 분배의 정의를 논하는 풍경을 보면서 그는 물었다. “악한 인간들이 모여 만든 법이 어떻게 선한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는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의 행태가 자신의 비루함을 감추기 위한 ‘도덕적 분장’일 때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소설 <부활>에서 주인공 네흘류도프 공작은 법정의 죄수가 된 카튜샤를 ‘제도의 힘’으로 구하려고 시도한다.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고, 상고심을 청구하며, 인맥을 동원해 형을 줄이려고 애쓴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곧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법정의 판사와 감옥의 교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가난했다. 그는 유럽 철학의 시조이자 수학·지질·천문에 밝았지만, 돈 버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별자리를 관찰하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는 바람에 “하늘의 이치를 알려면서 제 발밑도 볼 줄 모르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툭하면 “철학이 밥 먹여주냐?”는 조롱에 시달렸다.참다못한 그는 팔을 걷어붙였다. 기원전 6세기에 벌써 일식을 예측할 정도로 천문학에 능한 그는 이듬해 올리브가 풍작일 것을 알고 한겨울에 기름 짜는 착유기(搾油機)를 미리 빌렸다. 정확하게는 ‘수확기에 일정 금액으로 빌릴 수 있는 권리’를 샀다. 착유기 주인들은 사용하지도 않고 밀쳐둔 기계로 돈을 벌 수 있으니 너도나도 응했다.수확기가 되자 예상대로 풍작이었다. 올리브 농가들이 일제히 착유기를 빌리러 나섰다. 사용권을 가진 탈레스는 비싼 값에 착유기를 빌려줬다. 당장 기름을 짜야 하는 농가들은 탈레스가 제시한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엄청난 돈을 벌었다. 파생금융상품의 한 종류인 ‘옵션거래’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다. 피라미드 높이를 그림자로 측량그는 큰돈을 번 뒤 흔쾌히 사회에 환원했다. 이를 두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부자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단지 그들의 진지한 관심사가 아닐 뿐이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 돈벌이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정치학(Politics)> 제1권)이라고 평했다. 탈레스의 진짜 관심사는 돈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지, 그런 혜안을 통해 경쟁자를 어떻게 물리칠 수 있는지, 어떤 원리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참된 마음의 결혼을 방해하지 말라 윌리엄 셰익스피어참된 마음의 결혼을 방해하는그 어떤 장애도 용납하지 않으리.사랑은 상황이 바뀐다고 해서 변하고사랑하는 이가 멀어진다고 멀어지는 게 아니다.아니,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지표거센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떠도는 배들을 인도하는 별이니높이는 잴 수 있어도 진가는 헤아릴 수 없도다.사랑은 시간의 어릿광대가 아니라장밋빛 입술과 뺨이 세월에 시들어도사랑은 시간의 짧은 흐름에 변하지 않고심판의 끝까지 견디어 내리라.만약 이것이 틀린 생각이라 입증된다면난 쓰지 않았고, 누구도 사랑한 적 없으리.-----------------------------------이 시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중 116번째 작품입니다. 윌리엄 워즈워스를 포함한 많은 이가 “셰익스피어 최고의 소네트”라고 극찬했지요. 서양에서는 ‘참된 마음의 결혼’이라는 명구 덕분에 결혼식에서 이 시를 자주 낭송하기도 합니다.셰익스피어는 이 시를 통해 참된 마음의 결합을 찾는 사람들을 무한히 응원합니다. ‘참된 마음의 결혼을 방해하는/ 그 어떤 장애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첫 구절은 마치 사제의 설교 서두를 떠올리게 합니다.전통 기독교의 혼인 예식에서는 두 사람의 결합을 가로막을 장애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밝히라고 요구하지요. 이 대목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합니다.400여 년 전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결혼식에서 “이 결혼이 법적으로 성사되지 못할 장애가 있으
풍죽 1 성선경사람살이로 말하자면어려움을 당해서야 그 마음의 품새가 드러나듯늘 푸른 대나무도 바람을 맞아야제멋이다 몇 해 전서울 동대문 프라자에서 간송전을 보다가풍죽(風竹) 복사본을 한 점 구해다 놓고한참을 잊고 지내다 새삼액자를 하여 거실 벽에다 걸어 놓았다마음 어지러운 어느 날가만히 바라보니 내 마음이 다 환해진다대숲에 든 듯 새소리댓잎 부딪는 소리 들린다역시 푸른 대나무도 바람을 맞아야어려움 이겨 낸 옛 어른 풍모 보여 준다여린 가지와 흐린 묵향 속에서어디 저런 기품이 숨어 있었나?새삼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대숲에 든 듯세속을 벗어난 듯내가 잔잔히.최근 출간된 성선경 시인의 시집 <풍죽>의 표제작입니다. 풍죽(風竹)은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를 말하지요. 고난과 시련에 맞서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시는 상징을 앞세우기보다 생활의 풍경을 먼저 보여줍니다. 시인은 몇 해 전 간송전에서 본 풍죽의 복사본을 구해뒀다가 한참 뒤에 액자를 해 거실 벽에 걸어놓습니다.그런 다음 “마음 어지러운 어느 날” 그림을 보면서 느낀 감각의 전환을 얘기합니다. 눈으로 보던 그림이 어느 순간 귀로 들리기 시작하면서 감각이 천천히 바뀝니다. “대숲에 든 듯 새소리/ 댓잎 부딪는 소리 들린다”에서 화면은 소리로 바뀌고, 소리는 내면의 풍경을 바꿉니다. 이때 환해지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바깥의 사건은 그대로인데, 안쪽의 숨결이 바뀌는 순간이 곧 시의 변곡점이지요.여기서 ‘바람’은 단순한 고난의 은유를 넘어섭
안개 칼 샌드버그 안개는 고양이 발로가만히 다가와 조용히움츠리고 앉아항구와 도시를 굽어보다가그러곤 일어나 가네. -------------------- 칼 샌드버그는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시인입니다. 시카고를 사랑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이 시는 첫 시집 <시카고 시편>에 실렸습니다. 그가 ‘시카고 데일리 뉴스’ 기자로 일하면서 쓴 작품이지요. 어느 날 그가 판사를 인터뷰하러 법원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랜트파크를 가로질러 가던 중 시카고 항구 위로 스며드는 안개를 봤습니다. 그리고 판사를 기다리는 동안 종이 조각에 이 시를 적었습니다. 이 배경을 알고 읽으면 이 시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기자의 현장 감각, 도시 풍경, 하이쿠적 압축미가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짧고 압축적이며, 한 장면에 집중하고, 설명 대신 이미지로 끝내는 게 이 시의 매력이지요. 시는 때로 번개처럼 오지만 많은 경우 기다리는 시간에 찾아옵니다. 누구를 만나기 전의 10분, 일이 끝나고 돌아서는 5분, 막차를 기다리는 플랫폼 위의 몇 분, 병원 복도의 침묵 속에서도 옵니다. 그곳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보다 얼마나 또렷하게 봤느냐가 중요하지요. 샌드버그는 안개가 그냥 오는 게 아니라 ‘고양이 발로’ 왔다고 썼습니다. 그에게 안개는 기상 현상이 아니라 소리 없이 다가와 잠시 웅크린 채 항구와 도시를 굽어보다가 말없이 떠나는 존재입니다. 이 한 번의 비유가 시 전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지요. 그래서 ‘항구와 도시를 굽어보다가’라는 대목이 더 생명력을
“오늘은 소 명절이란다.” 어른들은 설 쇠고 처음 맞는 축일(丑日)을 ‘소날’ ‘소 명절’이라고 불렀다. 음력 정월의 첫 번째 축일이어서 상축일(上丑日)이라고도 했다. 이날 하루만큼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마음껏 쉬게 했다. 음식도 제일 좋은 것으로 먹였다. 쇠죽을 쑬 때 각종 나물과 콩을 함께 삶고, 여물에도 쌀겨와 밀기울 등을 넣어 진수성찬을 차렸다. 집에서 가장 소중한 일꾼이자 가족과 다름없는 생구(生口)를 사람처럼 대접하고 위로했다.힘든 일을 해야 할 시기가 오면 건초나 여물보다 신선한 풀을 더 많이 먹였다. 소에게 풀을 먹이는 일은 주로 아이들이 맡아서 했다. 방과 후 소를 몰고 뒷산에 올라 연한 풀 자리를 고른 뒤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소들은 방울 소리를 울리며 보드라운 풀을 뜯느라 여념이 없었다. 쇠꼴을 베다가 쉬면서 봐도 쉴 새 없이 혀를 놀렸다.약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그런데 어딘가 아픈 소는 좀 달랐다. 배 속이 불편하거나 몸이 무거우면 천천히 장소를 옮기면서 다른 풀을 찾았다. 소 쌀밥이라고 불리는 안달미나 조리풀도 마다하고 무언가를 탐색했다. 풀잎을 고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혀 놀림도 느려졌다. 소 혀에는 2만 개가 넘는 맛봉오리가 모여 있다. 그래서 미묘한 맛의 차이를 하나씩 음미하려는 것이었을까. 시골에서 자란 백석(白石) 시인의 두 줄짜리 시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인간보다 영(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약(藥)이 있는 줄을 안다고// 수양산(首陽山)의 어느 오래된 절에서 칠십이 넘은 노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맛자락의 산나물을 추었다’(백석, &lsq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언이다. 과학적 지식과 직관적 체험을 모두 중시한 그는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고 자주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가야금 명인’ 황병기로부터 들은 덕담도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였다.어릴 때, 어머니가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일의 결과를 미리 재단하지 말고, 인생을 폭넓게 보라는 뜻이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될는지, 저것이 잘될는지, 혹 둘이 다 잘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구름이나 비, 씨앗의 원리는 오묘하다. 같은 씨앗도 싹을 틔우는 속도가 다르다. 비가 많이 와서 햇볕을 못 받으면 웃자라고 약하다. 늦더라도 햇빛과 양분을 제대로 받으면 잘 자라고 튼실하다. 파종하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밭고랑을 깊이 파되 밭이랑을 넓고 높게 돋워야 한다. 거기에서 될성부른 떡잎이 자란다.사람은 어떤가. 두 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해 최고의 경지에 오른 타이거 우즈는 ‘조기 영재’ 스타일이다. 타고난 재능에다 생후 7개월 때 골프채를 쥐여준 아버지의 열정이 더해졌다. 반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는 다양한 운동을 폭넓게 접하고 뒤늦게 테니스로 진로를 결정했다. 어릴 때 스키·레슬링·수영·야구·핸드볼·탁구·배드민턴 등을 두루 섭렵한 다음에야 테니스를 택했다. 성공한 선수들은 의외로 페더러 스타일이 더 많다.‘조기 전문화’와 ‘늦깎이 전문화’베스트
모든 진실을 말하라. 하지만 비스듬하게 에밀리 디킨슨모든 진실을 말하라. 하지만 비스듬하게-성공은 에둘러 가는 데 있다.우리 허약한 기쁨엔 너무 밝다.진실은 엄청난 경이로움이니어린아이에게 친절히 설명하면번개를 무서워하지 않듯진실도 차츰차츰 광채를 발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모두 눈이 멀고 말리라--------------------------------이 짧은 시는 진실을 전달하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핵심은 모든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듣는 사람이 수용할 수 있도록 ‘비스듬하게 말하라’는 것입니다.진실은 때로 번개처럼 번쩍입니다. 번개는 어둠을 가르지만, 정면으로 마주 보면 눈이 멉니다. 그래서 시인은 어린아이에게 번개의 원리를 친절히 설명해 주듯이 진실도 “차츰차츰” 광채를 발하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에밀리 디킨슨이 살던 19세기는 진실이 “엄청난 경이로움”으로 솟구친 시대였습니다. 증기기관과 철도는 시간을 압축했고, 공장은 일과 삶의 형식을 바꿨으며, 전신(電信)은 멀리 있는 소식을 번개처럼 당겨줬습니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는 세계를 이해하는 사고의 틀 자체를 뒤흔들었습니다.그 흔들림 속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진실을 ‘알아야’ 했고, 동시에 그 과정을 ‘견뎌야’ 했습니다. 진실은 발견되는 순간 완성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비로소 살아 움직이지요. 디킨슨의 “비스듬하게”는 바로 그 번역의 각도, 설득의 각도를 의미합니다.역사적으로 보면, 진실을 정면으로 말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홀로와 더불어 구상나는 홀로다.너와는 넘지 못할 담벽이 있고너와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고너와는 헤아릴 바 없는 거리가 있다.나는 더불어다.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이 담겨 있고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이 배어 있고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이 스며 있다.이렇듯 나는 홀로서또한 더불어서 산다.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구상(具常) 시인의 문학 정신을 한눈에 보여주는 시입니다. ‘홀로서기’와 ‘함께 있음’을 대비하면서 ‘대긍정’과 ‘조화의 철학’을 잘 드러낸 작품이지요.첫 연의 “넘지 못할 담벽”과 “건너지 못할 강”, “헤아릴 바 없는 거리”는 존재론적 간극을 상징합니다. “너”는 결코 내 안으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섣부른 화해로 건너뛰지 않고 홀로됨의 냉정을 먼저 인정합니다. 이것이 ‘대긍정’의 출발점입니다.그런 다음엔 바로 반대편을 제시합니다. “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과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 “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 이것은 남의 도움 없이 불가능합니다. 나는 홀로이되 홀로만으로 성립할 수 없는 존재이지요. 우리는 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갑니다.“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럴 때 “평형”은 중간지대의 타협이 아니라 “홀로”를 지키면서 “더불어”를 아우르는 균형을 의미하지요.이 시는 지난주에 열린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사랑 이후의 사랑데릭 월컷그때가 오리라.네 문 앞에 도착해네 거울 속의 너를큰 기쁨으로 반길 때가,둘이 서로의 환영에 미소 지으며,이렇게 말하리라, 여기 앉아라. 먹어라.넌 한때 낯설었던 너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되리라.포도주를 따르라. 빵을 주어라. 네 마음을자신에게 돌려주어라, 평생 너를 사랑해 왔으나네가 다른 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느라 외면했던너를 가슴 깊이 알고 있는 그 낯선 이에게.책장 위의 연애편지를 내려놓고,사진들을, 절박한 메모들을 걷어내라.거울 속에서 너의 이미지를 벗겨내라.앉아라. 네 삶을 잔치처럼 누려라.이웃집 젊은이가 실연을 당했습니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자신을 책망하며 슬퍼합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후회와 원망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폭음, 폭식에 ‘이불킥’으로 새벽을 맞기도 합니다. 밤새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위해 이 시를 골랐습니다.카리브해의 대표 시인 데릭 월컷은 이 시에서 이별 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이별의 감정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발로 오지요. 슬픔, 외로움, 분노, 억울함, 수치, 후회, 불면 등이 묶음으로 옵니다. 그 위에 얹히는 것이 또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반복해 곱씹는 ‘반추’입니다. 이 반추가 이별 뒤 고통을 오래 끌고 가며 우울과 자기 의심을 키웁니다.월컷의 시 ‘사랑 이후의 사랑’은 이런 감정을 해소하는 해독제와 같습니다. 우리 마음의 위기는 감정 자체보다 감정을 대하는 태도, 즉 자기 자신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증폭되지요. 이럴 때 월컷의 시가 도움을 줍니다. 시인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는 감정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일깨웁니다.그러면서 “그때
풍죽 1 성선경사람살이로 말하자면어려움을 당해서야 그 마음의 품새가 드러나듯늘 푸른 대나무도 바람을 맞아야제멋이다 몇 해 전서울 동대문 프라자에서 간송전을 보다가풍죽(風竹) 복사본을 한 점 구해다 놓고한참을 잊고 지내다 새삼액자를 하여 거실 벽에다 걸어 놓았다마음 어지러운 어느 날가만히 바라보니 내 마음이 다 환해진다대숲에 든 듯 새소리댓잎 부딪는 소리 들린다역시 푸른 대나무도 바람을 맞아야어려움 이겨 낸 옛 어른 풍모 보여 준다여린 가지와 흐린 묵향 속에서어디 저런 기품이 숨어 있었나?새삼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대숲에 든 듯세속을 벗어난 듯내가 잔잔히.-----------------------------최근 출간된 성선경 시인의 시집 『풍죽』의 표제작입니다. 풍죽(風竹)은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를 말하지요. 고난과 시련에 맞서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시는 상징을 앞세우기보다 생활의 풍경을 먼저 보여줍니다. 시인은 몇 해 전 간송전에서 본 풍죽의 복사본을 구해 뒀다가 한참 뒤에 액자를 해 거실 벽에 걸어 놓습니다.그런 다음 “마음 어지러운 어느 날” 그림을 보면서 느낀 감각의 전환을 얘기합니다. 눈으로 보던 그림이 어느 순간 귀로 들리기 시작하면서 감각이 천천히 바뀝니다. “대숲에 든 듯 새소리/ 댓잎 부딪는 소리 들린다”에서 화면은 소리로 바뀌고, 소리는 내면의 풍경을 바꿉니다. 이때 환해지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바깥의 사건은 그대로인데 안쪽의 숨결이 바뀌는 순간이 곧 시의 변곡점이지요.여기서 ‘바람’은 단순한 고난의 은유를 넘어섭니다.
그가 중학교 교사로 발령받은 지 두 달 만이었다. 방과 후 학생들에게 기계체조 시범을 보이다 그만 사고를 당했다. 경추 손상으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고 말았다. 일상이 한꺼번에 멈췄다. 이대로 끝인가. 스물넷, 삶을 내려놓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지내던 어느 날 한 줄기 생각이 스쳤다. “그래, 몸은 말을 안 들어도 입은 움직이잖아!”그는 입에 붓을 물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림도 그렸다. 그 곁에 짧은 문장을 덧붙였다. 그림과 글이 서로를 끌어안는 시화(詩畵)의 세계가 그렇게 열렸다.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 ‘꽃의 시화전’은 200차례 이상 이어졌고, 그가 펴낸 책도 200만 부 넘게 팔렸다. 그의 이름으로 고향에 세워진 미술관에는 매년 10만여 명의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그의 이름은 호시노 도미히로(星野富弘).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이자 시인. 그의 그림은 밝고 부드럽다. 응달에서 피워 올린 빛의 꽃망울 같다. 시도 그렇다. 어휘는 평범한데 행간마다 비범한 의미가 반짝인다. 병실 창밖에서 냉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본 그는 어머니의 고단한 어깨를 떠올린다. ‘하나님이 단 한 번만이라도/ 나의 팔을 움직이게 해 주신다면//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려 드리고 싶다// 바람에 흔들리는 냉이풀의/ 꽃 열매를 보고 있으면/ 그런 날이 정말로 올 것 같다.’(‘냉이풀’ 전문)한쪽 팔만 움직일 수 있어도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려 드리고 싶다는 소망은 ‘그런 날이 정말로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에게는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감사의 대상이다. 그는 ‘매일초’라는 시에
사랑 이후의 사랑 데릭 월컷그때가 오리라.네 문 앞에 도착해 네 거울 속의 너를큰 기쁨으로 반길 때가,둘이 서로의 환영에 미소 지으며,이렇게 말하리라, 여기 앉아라. 먹어라.넌 한때 낯설었던 너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되리라.포도주를 따르라. 빵을 주어라. 네 마음을자신에게 돌려주어라, 평생 너를 사랑해 왔으나네가 다른 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느라 외면했던너를 가슴 깊이 알고 있는 그 낯선 이에게. 책장 위의 연애편지를 내려놓고, 사진들을, 절박한 메모들을 걷어내라.거울 속에서 너의 이미지를 벗겨내라.앉아라. 네 삶을 잔치처럼 누려라.--------------------------------------이웃집 젊은이가 실연을 당했습니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자신을 책망하며 슬퍼합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후회와 원망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폭음, 폭식에 ‘이불킥’으로 새벽을 맞기도 합니다. 밤새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위해 이 시를 골랐습니다.카리브해의 대표 시인 데릭 월컷은 이 시에서 이별 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알려 줍니다. 이별의 감정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발로 오지요. 슬픔, 외로움, 분노, 억울함, 수치, 후회, 불면 등의 묶음으로 옵니다. 그 위에 얹히는 것이 또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반복해서 곱씹는 ‘반추’입니다. 이 반추가 이별 뒤의 고통을 오래 끌고 우울과 자기 의심을 키웁니다.월컷의 시 ‘사랑 이후의 사랑’은 이런 감정을 해소하는 해독제와 같습니다. 우리 마음의 위기는 감정 자체보다 감정을 대하는 태도, 즉 자기 자신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증폭되지요. 이럴 때 월컷의 시가 도움을 줍
여인숙잘랄루딘 루미인간이라는 존재는 한 채의 여인숙.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네.기쁨, 우울, 옹졸함,잠깐 스쳐가는 깨달음이뜻밖의 방문객으로 찾아오네.그 모두를 환대하고 맞아들이라!설령 슬픔의 무리라 하여네 집을 난폭하게 휩쓸고가구를 몽땅 없애버린다 해도,그 손님을 정중히 대하라.그는 어쩌면 너를 비워내고새로운 기쁨을 들이려는 것일지 모른다.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악의,그들을 문간에서 웃으며 맞고집 안으로 초대하라.무엇이 찾아오든 고마워하라.모두가 저 너머로부터 온인도자들이니.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인간을 “한 채의 여인숙”이라고 표현합니다. 여인숙은 나그네를 받는 곳이지요. 주인이 손님을 마음대로 골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손님이 문을 두드리면 열어줘야 합니다. ‘기쁨’이 찾아오면 더없이 좋겠지만 ‘우울’과 ‘옹졸함’, ‘슬픔’과 ‘분노’도 찾아옵니다. 이런 감정은 문을 잠근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문을 두드리고, 벽을 흔들고, 잠을 깨웁니다.슬픔의 무리가 집을 부숴도…그래도 루미는 “그 모두를 환대하고 맞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설령 “슬픔의 무리”가 가구를 부수고 집을 난폭하게 휩쓸어도 “정중히 대하라”고 합니다. 그 손님이 “저 너머로부터 온 인도자”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이 역설은 고대의 지혜와 맞닿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낯선 손님은 신의 얼굴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크세니아(ξενία, 영어 xenia)’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의 ‘환대’는 사적인 친절이 아닌 공적인 질서였습니다. 이
이타카콘스탄티노스 카바피네가 이타카를 향해 길을 떠날 때,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모험과 발견으로 가득하기를.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네 생각이 고결하고숭고한 감동이네 정신과 육체에 깃들면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네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네가 맞이할 여름날 아침이 수없이 많으리니크나큰 즐거움과 기쁨을 안고미지의 항구로 들어서게 되면페니키아 시장에서 길을 멈춰어여쁜 물건들을 사라.자개와 산호, 호박과 흑단온갖 감각적인 향수를주머니가 허락하는 한 관능적인 향수를그리고 이집트의 여러 도시에 들러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그곳에 이르는 것이 네 궁극적인 목표이니그러나 절대 서두르지 마라.비록 그 길이 오래 걸리더라도늙어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므로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그 땅이 보잘것없다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 없고너는 그 가득한 경험으로 길 위에서 현자가 되었으니마침내 이타카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리라.------------------------------------------------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1863~1933)는 이 시에서 우리 인생의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제목의 ‘이타카’는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
여인숙 잘랄루딘 루미인간이라는 존재는 한 채의 여인숙.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네.기쁨, 우울, 옹졸함,잠깐 스쳐가는 깨달음이뜻밖의 방문객으로 찾아오네.그 모두를 환대하고 맞아들이라!설령 슬픔의 무리라 하여네 집을 난폭하게 휩쓸고가구를 몽땅 없애버린다 해도,그 손님을 정중히 대하라.그는 어쩌면 너를 비워내고새로운 기쁨을 들이려는 것일지 모른다.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악의,그들을 문간에서 웃으며 맞고집 안으로 초대하라.무엇이 찾아오든 고마워하라.모두가 저 너머로부터 온인도자들이니.-----------------------------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인간을 “한 채의 여인숙”이라고 표현합니다. 여인숙은 나그네를 받는 곳이지요. 주인이 손님을 마음대로 골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손님이 문을 두드리면 열어줘야 합니다. “기쁨”이 찾아오면 더없이 좋겠지만 “우울”과 “옹졸함”, “슬픔”과 “분노”도 찾아옵니다. 이런 감정은 문을 잠근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문을 두드리고, 벽을 흔들고, 잠을 깨웁니다.그래도 루미는 “그 모두를 환대하고 맞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설령 “슬픔의 무리”가 가구를 부수고 집을 난폭하게 휩쓸어도 “정중히 대하라”고 합니다. 그 손님이 “저 너머로부터 온 인도자”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이 역설은 고대의 지혜와 맞닿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낯선 손님은 신의 얼굴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크세니아(ξενία, 영어 xenia)’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의 ‘환대’는 사적인 친절이 아닌 공적인 질서였
그날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2007년 1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맥월드 기조연설 현장.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의 스티브 잡스가 무대에 등장했다. 조명이 그의 손끝을 비추는 듯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꺼냈다. 설명은 길게 하지 않았다. 버튼이 몇 개고, 어떤 칩이 들어갔고, 얼마나 빠른지 등은 생략했다. 대신 아주 단순한 동작을 보여줬다. 유리판을 손가락으로 슬쩍 쓸어 올렸다. 마치 잠든 얼굴의 이마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화면이 열리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버튼 없는 전화기를 그가 손가락으로 처음 연 것이다.그때까지 잊고 있었다. 인간은 원래 ‘누르는’ 존재가 아니라 ‘만지는’ 존재였다는 것을. 그날 무대에서 잡스는 신제품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손가락 문명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버튼의 시대를 살았다. 버튼은 한쪽만 작동하는 명령의 문법이었다. 누르면 켜지고 꺼지는 일방적 방식이었다. 이는 세계를 ‘명령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었고, 사용자를 ‘명령하는 자’나 ‘명령을 따르는 자’로 정렬했다.열 손가락은 십진법의 교과서그런데 터치는 다르다. 대화에 가깝다. 손가락이 화면을 스치면 화면이 반응하고, 그 반응이 다시 손가락의 속도와 촉감의 밀도를 바꾼다. 이 과정에서는 눈과 손과 머리가 한꺼번에 움직인다. 생각이 손끝으로 내려오고, 손끝에서 다시 생각이 올라간다. 한 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의 상호작용이다. 이런 변화는 기술의 진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 극적인 변화의 순간은 인간이 세계를 다루는 방식, 문명 자체의 방식이 바뀌는 변곡점이기도 하다.예로부터 문명은
독을 품은 나무윌리엄 블레이크나는 친구에게 화가 났네.그에게 분노를 말했더니 분노는 사라졌네.나는 원수에게 화가 났네.그에게 말하지 않았더니 분노는 자라났네.나는 무서워서 분노에 물을 주었네.밤낮없이 내 눈물로 적셨네.나는 그것을 미소로 햇볕에 쬐었네.부드럽고 기만적인 아양으로 키웠네.그 나무는 밤낮으로 자랐네.마침내 빛나는 사과를 맺었네.내 원수는 그것이 빛나는 것을 보았네.그리고 그것이 내 것임을 알았네.밤이 하늘을 가린 사이에그는 내 정원으로 몰래 들어왔네.아침에 나는 기뻐하며 보았네.그 나무 아래 뻗어 있는 내 적을.이 시는 첫 4행에서 분노의 근본 원인과 분노의 독을풀어줄 해독제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시인은 친구에게 화가 날 때 말을 함으로써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을 대할 때는 입을 다물었고 분노를 키웠습니다.마치 아메리카 인디언의 ‘두 마리 늑대’ 이야기와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내 안에는 서로 이기려고 싸우는 두 마리 늑대가 있지. 하나는 악이란다. 악한 늑대는 분노와 증오, 시기, 탐욕, 오만, 원한, 죄책감, 열등감, 거짓말, 이기심이지. 두 번째는 선이란다. 이 늑대는 기쁨과 사랑, 공감, 평화, 희망, 조화, 겸손, 친절,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지. 이 둘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데 그런 싸움이 네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단다.” 손자가 “그래서 누가 이겨요?”라고 묻자 노인은 답합니다. “그건 내가 누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려 있지.”명분의 거름을 먹고 자라나는 분노역사를 보면, 로마 공화정 말기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분노’ 때문에 ‘독 사과’를 먹
독을 품은 나무윌리엄 블레이크나는 친구에게 화가 났네.그에게 분노를 말했더니 분노는 사라졌네.나는 원수에게 화가 났네.그에게 말하지 않았더니 분노는 자라났네.나는 무서워서 분노에 물을 주었네.밤낮없이 내 눈물로 적셨네.나는 그것을 미소로 햇볕에 쬐었네.부드럽고 기만적인 아양으로 키웠네.그 나무는 밤낮으로 자랐네.마침내 빛나는 사과를 맺었네.내 원수는 그것이 빛나는 것을 보았네.그리고 그것이 내 것임을 알았네.밤이 하늘을 가린 사이에그는 내 정원으로 몰래 들어왔네.아침에 나는 기뻐하며 보았네.그 나무 아래 뻗어 있는 내 적을.----------------------------이 시는 첫 4행에서 분노의 근본 원인과 분노의 독을 풀어줄 해독제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시인은 친구에게 화가 날 때 말을 함으로써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을 대할 때는 입을 다물었고 분노를 키웠습니다.마치 아메리카 인디언의 ‘두 마리 늑대’ 이야기와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내 안에는 서로 이기려고 싸우는 두 마리 늑대가 있지. 하나는 악이란다. 악한 늑대는 분노와 증오, 시기, 탐욕, 오만, 원한, 죄책감, 열등감, 거짓말, 이기심이지. 두 번째는 선이란다. 이 늑대는 기쁨과 사랑, 공감, 평화, 희망, 조화, 겸손, 친절,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지. 이 둘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데 그런 싸움이 네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단다.” 손자가 “그래서 누가 이겨요?”라고 묻자 노인은 답합니다. “그건 내가 누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려 있지.”역사를 보면, 로마 공화정 말기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분노’ 때문에 ‘독 사과’를 먹고 ‘뻗어&
“요즘 ‘왜 대답을 안 하느냐’는 말을 자주 들어. 엊그제도 아내가 그러더라고. ‘아유, 답답해. 대답 좀 해요.’” 연말 모임에서 한 친구가 말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나도 그래!”라며 맞장구를 쳤다. “택배 상자를 한창 뜯는 중인데 뒤에서 집사람이 ‘아, 왜 대답을 안 해요’라고 해서 아차 싶었지.” 그러고 보니 남의 일만이 아니다. 나이 들면서 감각이 무뎌지고 표현력이 줄어든 탓일까.표현력이 좋다는 서양 사람도 그런 모양이다. 40대 중반의 미국 남자 러스티는 컴퓨터 엔지니어다. 업무 특성상 말을 많이 하진 않지만, 집에 와서는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아내에게 사랑 표현도 나름대로 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불만이 누적되자 사소한 일에도 티격태격하게 되고, 급기야 부부 사이가 냉랭해졌다.다정한 마음도 말로 표현해야러스티는 혼자 끙끙대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는 사랑한다고 말해요. 도대체 또 뭘 더 말해야 하죠?” 그의 하소연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의사는 천천히 책장으로 옮겨 시집을 꺼내더니 한 페이지를 골라 건넸다. 영국 여성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라는 시였다.“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 헤아려 보죠./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와 넓이와 높이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끝과 이상의 은총을 더듬어/ 가닿을 수 있는 데까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햇빛 아래서나 촛불 아래서나/ 나날의 가장 고요한 일상까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권리를 위해 투쟁하듯 자유롭게 사랑하고/ 칭송을 외면하
핏줄신달자핏줄 속에는큰 손이 있는기라보이지도 않으면서 화악 잡아당기는쇠스랑 같은 손이 있다캉께핏줄 속에는발자국도 없이저벅저벅 걸어와 기척 없이 몸 위에 드러눕는뭉클한 가슴이 있는기라그 뭉클한 가슴을 생으로 떼어 줘도 될 것 같은아니 떼어 준 그루터기에서 비집고 나오는새순 같은 그 질긴 생명력을몇 배로 키워 다시 핏줄 안으로쏴아 쏴아 내려 붓고 싶다캉께핏줄 속에는항시 몸비 마음비가 내려뚝 뚝 떨어져 내려뚝 뚝 떨어져 내릴 때마다 아파 아파 아파라에미는 입에 들어가는 밥을 꺼내뜨거운 화기로 뭉쳐 온몸 비비며핏줄을 보호하려모은 두 손이 다 닳았다 안 카드나그래, 핏줄은 축축한기라 끈적끈적한기라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징글징글한 기도인기라그래서 핏줄은 푸르른 가지 속에 붉은 생명이 들어 있능기라니 아나?고향도 아버지같이 핏줄인기라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명으로 태어난 고향물이지만 쇠뭉치 같은 바위보다 더 무거운그 질긴 줄을 저릿저릿한 핏줄이라 안 카드나수세기를 흘러가는 줄끊을 수 없는 역사라 안 카드나지난 4일 오후 경남 거창에서 열린 신달자문학관 개관식에서 연극 배우 박정자 씨가 신달자 시인의 시 ‘핏줄’을 낭독하고 있다.갑작스레 한파가 닥친 4일 오후, 경남 거창 남하면 대야리 문화마을. 거창이 고향인 신달자(82) 시인의 이름을 딴 ‘신달자문학관’ 개관식에서 연극배우 박정자 씨가 이 시 ‘핏줄’을 낭독하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핏줄 속에는/ 큰 손이 있는기라/ 보이지도 않으면서 화악 잡아당기는/ 쇠스랑 같은 손이 있다캉께”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강한 억양이 행간에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에밀리 디킨슨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비치네.겨울 오후-대성당에서 들려오는 성가의무게처럼 짓누르며-하늘의 상처를 주는데도-겉으로는 흉터 하나 없고,그 뜻이 닿는 내면엔큰 변화가 있네-누구도 가르칠 수 없네- 아무도-그것은 봉인된 절망- 공중으로부터 보내진제국의 고뇌-그것이 올 때, 풍경들은 귀 기울이며-그림자들은- 숨을 멈추네 -그것이 사라질 때, 마치 죽음의 모습처럼아득함을 느끼네----------------------------------에밀리 디킨슨은 시의 첫 행에서 겨울 오후의 빛이 ‘비스듬히’ 비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왜 “대성당에서 들려오는 성가의/ 무게처럼” 짓누른다고 했을까요. 어떤 점에서 압박감을 느꼈을까요.겨울에는 낮이 짧고 흐린 경우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빛의 기울기(slant)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지구는 약 23.5도 기울어진 채 자전합니다. 이 기울기와 공전이 결합해 계절이 생기지요. 자전축의 기울기와 공전 궤도 덕분에 계절마다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 기온, 생태계가 달라집니다. 겨울에는 북반구가 태양에서 멀어져 태양 빛이 더 낮고 짧게 비추기 때문에 낮이 짧고 밤이 길어집니다. 한마디로 태양과 지구 사이의 이 각도가 겨울의 본질이지요. 이 시를 읽은 미국 정신과 의사 노먼 로젠탈은 “단 몇 마디 단어만으로 겨울 빛의 핵심을 찌르는 능력과 통찰이 놀라울 정도로 빛나는 시”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는 계절성 정서장애(SAD)를 처음으로 정의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광선요법을 개발한 의사입니다. 로젠탈이 이
핏줄 신달자핏줄 속에는큰 손이 있는기라보이지도 않으면서 화악 잡아당기는쇠스랑 같은 손이 있다캉께핏줄 속에는발자국도 없이저벅저벅 걸어와 기척 없이 몸 위에 드러눕는뭉클한 가슴이 있는기라그 뭉클한 가슴을 생으로 떼어 줘도 될 것 같은아니 떼어 준 그루터기에서 비집고 나오는새순 같은 그 질긴 생명력을몇 배로 키워 다시 핏줄 안으로쏴아 쏴아 내려 붓고 싶다캉께핏줄 속에는항시 몸비 마음비가 내려뚝 뚝 떨어져 내려뚝 뚝 떨어져 내릴 때마다 아파 아파 아파라에미는 입에 들어가는 밥을 꺼내뜨거운 화기로 뭉쳐 온몸 비비며핏줄을 보호하려모은 두 손이 다 닳았다 안 카드나그래, 핏줄은 축축한기라 끈적끈적한기라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징글징글한 기도인기라그래서 핏줄은 푸르른 가지 속에 붉은 생명이 들어 있능기라니 아나?고향도 아버지같이 핏줄인기라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명으로 태어난 고향물이지만 쇠뭉치 같은 바위보다 더 무거운그 질긴 줄을 저릿저릿한 핏줄이라 안 카드나수세기를 흘러가는 줄끊을 수 없는 역사라 안 카드나-----------------------------------------갑작스레 한파가 닥친 4일 오후, 경남 거창 남하면 대야리 문화마을. 거창이 고향인 신달자(82) 시인의 이름을 딴 ‘신달자문학관’ 개관식에서 연극배우 박정자 씨가 이 시 ‘핏줄’을 낭독하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핏줄 속에는/ 큰 손이 있는기라/ 보이지도 않으면서 화악 잡아당기는/ 쇠스랑 같은 손이 있다캉께”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강한 억양이 행간에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투박하고, 어떻게 보면 속 깊고, 때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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