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뜨거운 날이 많아 이제 서야 가을의 초입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을이면 연상되는 것 중의 하나가 책이다. 책 관련 행사도 푸짐하다. 사무실에도 책이 쌓여 몇 개월에 한 번씩 책장을 구입할 정도다. 살다보면 친목회, 동문회 등 사적모임이 많다. 필자는 활동하는 모임이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나답지 않게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독서모임인데 구성원은 필자 포함해서 3명으로 단출하다. 모임의 목적은 ‘책에서 도 닦기’다. 여기서 도를 닦는 다는 것은 산에서 수행하는 것을 도시로 이동을 하는 것이며, 인생의 이치를 깨닫는 공통점도 있지만 비즈니스 내공을 높이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도를 닦는 여정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필요한 창조와 상상에 대한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모든 이들의 내면에는 아직 자신이 찾지 못하는 창의로 가득 찬 보물창고가 있다. ‘창조와 상상’이 가득 찬 보고(寶庫)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필자의 독서모임은 그 창고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지도를 펴주면서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고, 지도는 손에 쥐어주되 길은 스스로 찾아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책을 보면서 무릎을 치는 정도의 공감을 넘어 전율이 있을 정도의 일체감을 느낄 때가 있다.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이해 필자가 책을 보면서 크게 공감을 느낀 구절과 사연에 대해서 소개코자 한다. ‘책에서 도 닦기’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책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타인을 만나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대학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주변에 영향을 준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도 닦기에 열중한 시기가 있었다. 일 년 정도 최고로 집중할 때 답이 보이지도 않고 너무 힘들어 포기 할 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지만 깨달음이 왔다. 포도과수원을 하는 외가댁에 방학 때마다 일을 거들고자 찾아뵈곤 했는데, 어느 날 이른 아침 희미한 안개 속에서 산책을 하다 우연히 나팔꽃을 보게 되었다. 그 때 마음속에서 퍼뜩 이런 울림이 올라왔다.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모두 진리이거늘, 내 눈이 미혹해서 눈앞의 진리를 보지 못했구나.’ 책 속에서 그리고 사고의 극대화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던 어리석음을 단숨에 날려버린 일생의 큰 사건이었다. 그 깨달음 이후 하산을 했고, 엄청나게 큰 내공의 업그레이드가 선물로 주어졌다. 그것이 평생 보물이 될지 알지 못했다.




얼마 전 ‘하늘이 감춘 땅’이란 제목의 종교전문기자가 쓴 책의 서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얼마나 찾았던 얘기인지, 20년이 훨씬 넘은 대학시절 그 깨달음의 순간으로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필자의 깨달음에서 대해 내심 또 다른 공감의 동참자를 찾고 있었는데 그 동반자를 얻은 느낌이다. 해당 책에서 몇 구절 인용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의 나라 구이(九夷)에서 살고 싶다고 했고, 예부터 중국에선 죽기 전 금수강산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았다. 불신으로 인한 내 몸은 고단했다. 히말라야를 비롯해 세상 사람들이 지상 최고라고 하는 곳들을 찾아 무려 30여 개국을 쓸고 다녔다. 달라이라마, 틱낫한을 위시한 세계적인 영성가들을 만난 것도.




봄을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니다 지쳐 돌아와 앞마당에 들어서니 뜰에 매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토록 오랜 국외 순례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보배는 ‘거기(there)’가 아닌, ‘여기(here)’에 있음을 깨닫기 위한 예비코스였는지 모른다. 혹은 눈앞의 것을 보지 못하는 원시(遠視)를 치료하는 과정이었는지도.”




전쟁이란 단어가 무시무시한 의미인데 현실에서 자주 사용되곤 한다. 그 만큼 개인이든 조직이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녹록치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쟁터에서도 한 송이 꽃은 피니, 생각을 달리하면 현실이란 전쟁터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차피 치룰 전쟁이라면 피하지 말고 맞서면 어떨까.




개인 금융상품에 많이 쓰는 단어로 ‘노후’가 있다. 여기에는 비즈니스 상술이 내포되어 있지만, 덕분에 질풍노도의 시기부터 노후를 걱정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노후를 대비한 재정계획이 달성되면 풍광 좋은 곳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싶다고 한다. 필자도 풍광 좋은 곳을 좋아한다. 그러나 방법론에서 필자는 전쟁터에서 생존하며 오랫동안 그 곳에서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다. 도심 빌딩 숲을 산책하다보면 벅찬 마음이 올라온다. 1등 아니면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힘들다는 비즈니스 전쟁터에서 3년 넘게 작은 공간이라도 차지하고 있으니 대견한 마음이 들고 나에게 칭찬도 해준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나이가 들더라도 절대 전쟁터를 떠나지 말 것이며,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다. 평생 일을 놓고 싶지 않으며, 그것이 가장 건강하게 사는 길이라는 생각한다.




뉴욕에서 연수중인 기자가 쓴 ‘샌드위치 딜리셔스’를 보면 미국 노인의 노후에 대한 얘기를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노후에 대해서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 같다. 몇 구절 인용해 본다.




“한국의 노년들이 도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 오십만 넘으면 다 산에서 만난다’는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말입니다. 반면, 미국의 노년들은 퇴직자 커뮤니티가 형성된 곳은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노인끼리 몰려다니면서, 옛날얘기로 시간을 보내는 게 탐탁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요즘 미국의 은퇴자들은 여생을 보낼 최적지로 대학촌을 꼽습니다. 스포츠 활동이나 문화공연 등 각종 행사가 많고. 이웃간 친밀도가 높으며, 집값도 싸다는 이유입니다.




나이 들면 일부러 산이 가깝고 경로당 잘된 아파트로 옮기거나 또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는 우리 노년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나이 들수록 문화현장과 가깝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덜 늙습니다. 각양각색의 문화 옆에 있어야 늙어서도 뭐라도 배울 수 있고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시간이 많다는 게 괴롭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