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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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정부 부처나 유관 기관의 자료를 구할 때 종종 국회의원들의 힘을 빌립니다. 기자들이 아무리 부탁을 해도 주지 않지만 국회의원이 달라고 하면 순순히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국정감사 시즌이 다가오면 기자들과 의원실 사이의 협력 관계가 절정에 이릅니다. 정부 자료를 근거로 하는 ‘큰 장’이 선다고 할까요. 국감 무렵에 단독 기사가 부쩍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자는 기사를 써서 좋고, 국회의원은 기사를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내면서 정책 실패 등을 캐물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옳다그르다를 떠나서 이런 ‘공생관계’가 이어져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정부 부처나 유관 기관의 취재원들 가운데는 기자들에게는 직접 줄 수 없으니 국회의원한테 도움을 청해보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합니다. 저도 의원실의 도움으로 여러 건의 기사를 썼습니다. 최근에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로 ‘2억원 이상 대출자는 전체의 1%도 안됐다’ 등의 기사를 낼 수 있었습니다.
금감원은 왜 윤창현 의원에 자료를 안 주려 하나 [박종서의 금융형통]
해당 부처들은 골치가 아플 겁니다. 감추고 싶은 자료들을 억지로 꺼내주고 십중팔구 비판받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은 급기야 ‘보이콧’에 나섰습니다. 타깃은 윤창현 의원이었습니다. 윤 의원은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을 핵심 소관기관으로 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소속돼 있습니다. 윤 의원실은 지난해 11월부터 금감원에 요청한 자료를 하나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국회의원은 국회법(128조 보고·서류 등의 제출 요구)과 국회증언감정법 등을 근거로 사진·영상물의 제출을 정부, 행정기관 등에 요구할 수 있습니다.

윤 의원실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윤 의원에게 자료를 주면 보도가 계속 안 좋게 나와서 주기가 어렵다고 했다”며 “여러 차례 그런 뜻을 전해왔고 8일에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금감원은 “의원님께 그럴 수가 있겠냐”면서도 보이콧 여부에 대해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윤 의원이 금감원의 홀대를 받게 됐을까요. 저는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윤 의원이 일단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이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야당은 정부의 실책을 매섭게 질타하는데 치중하는 탓에 자료를 줄 수록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윤 의원의 경력도 이유가 됐다고 봅니다. 윤 의원은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금융전문가로 의법 활동을 하는 데 주력하는 자리입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갖고 있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를 지냈고 한국금융연구원장을 역임했습니다. 금감원이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전문적인 금융지식이 있다고 봐야하겠습니다.

윤 의원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기자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금융과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러다보니 언론사의 금융부 기자들이 선호하게 된 것이지요. 윤 의원실이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후 국회에서 금감원에 요청한 자료는 60여건에 이릅니다. 상당부분을 윤 의원실에서 부탁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 총선거에서 초선 의원들이 많이 배출된 데다 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대거 교체된 영향도 있을 겁니다. 정무위에서 활동하는 의원 24명 가운데 13명이 초선입니다. 정무위를 통틀어도 금융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은 10명이 안 됩니다. 야당 의원은 10명이고 그 가운데 금융 관련 경력으로는 윤창현 의원이 가장 풍부합니다.

의원들을 통해 자료를 얻어내려면 요령이 필요합니다. 피감기관들은 어떻게든 불리한 자료를 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너무 광범위하게 자료를 달라고 하거나 반대로 너무 협소한 부분을 물어보면 기사화하기에 의미없는 자료가 오기 일쑤입니다.

시행착오 끝에 제대로 자료를 받았다고 하더라고 이미 시간이 지나 쓸 수 없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죠. 금융을 이해하는 의원실에 자료를 요청해야 기사화할 수 있는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합니다. 윤 의원이 기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금감원도 나름대로 억울한 사연이 있다는 겁니다. 금감원 일각에서는 일부 신문사가 윤 의원으로부터 나오는 자료를 통해 의도적으로 금감원을 폄훼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 방어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말도 나옵니다. 초강경 대응을 하게된 배경입니다.

아무리 입법부 본연의 기능이 행정부 견제(다만, 금감원은 행정부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금융위원회 설치법에 따라 금융위의 지도·감독을 받아 금융회사의 감독을 위해 설립한 무자본 특수법인입니다)라고 하지만 부당한 비판까지 감수해야 하냐는 불만입니다.

윤 의원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국민의 대표 자격으로 요청한 자료를 대놓고 주지 못하겠다고 하니 화가 날 수 밖에요. 들리는 말로는 윤 의원이 직접 금감원 앞에서 시위라도 할 태세라고 합니다. 물론 의원 신분에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만.

저는 자료를 못 받게 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만은 결국 괜찮아질 것입니다. 무엇을 그리 숨기고 싶은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정무위 소속 다른 의원들을 통해 자료를 얻으면 됩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정무위 의원들의 금융 이해도가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다른 기자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을 할 것입니다. 금감원이 다른 의원들한테도 보이콧에 나서게 될까요. 자못 궁금해집니다.

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