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절벽 시대’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민간소비는 올해 작년보다 4% 넘게 감소하는 데 이어 내년에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 집값 급등, 고용시장 회복 지연 등이 겹치면서 가계의 씀씀이 개선이 상당 기간 늦춰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치솟는 집값·고용 한파…'소비절벽 장기화' 우려

민간소비, 외환위기 후 최악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3분기 민간소비(실질·원계열 기준)는 632조6835억원으로 작년 동기(661조6608억원)보다 4.4% 줄었다. 이 같은 소비 감소율은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1~3분기(-12.7%) 후 22년 만에 가장 큰 수치다.

한은은 코로나19로 위축된 올해 민간소비가 2022년에 가서야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민간소비는 2019년 890조원에서 올해 852조원으로 4.3% 감소하는 데 이어, 내년에 878조원으로 올해보단 3.1% 증가하지만 2019년보다는 여전히 12조원(1.3%) 낮은 수준에 머물 것이란 예상이다. 민간소비는 2022년이 돼야 900조원으로 늘어나면서 2019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한은은 예상했다.

소비는 수출과 함께 국내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1848조9585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8.1%에 달했다. 국가 경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민간의 씀씀이 부진은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된다.

“집값 과열도 가계 지갑 닫게 해”

민간소비 회복이 늦춰지는 데는 코로나19 충격 외에도 치솟는 집값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과열 양상을 띠는 주택의 매입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가계가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재 한은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날 발표한 ‘주택 구매가 가계의 최적 소비 경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서울 주택시장에서 집값이 뛰고 거래가 감소하고 있다”며 “주택구매 시점이 미뤄지면 소비를 늦추거나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계가 씀씀이를 줄이면서 저축률(가계 가처분소득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율)은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은은 올해 가계 저축률이 지난해보다 4%포인트 높은 10%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3.2%) 후 최고치다.

저축이 늘고 소비가 줄면 기업 창고에는 재고가 쌓인다. 기업은 그만큼 고용을 줄이고 가계는 씀씀이를 더 줄이는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시한 이른바 ‘저축의 역설’이 국내에서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생산인구, 5년 새 150만 명 증발

지속되는 고용시장 부진도 가계 씀씀이를 옥죌 변수로 꼽힌다. 한은은 올해 취업자 수가 20만 명가량 감소할 것으로 봤다. 내년에도 취업자 수는 13만 명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비가 왕성한 생산연령인구의 고용률도 내년 65.8%로 2019년(66.8%)은 물론이고 올해 추정치(65.9%)도 밑돌 것으로 한은은 전망했다.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고용 창출 기여도가 높은 서비스업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며 “고용 회복세가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소비 침체를 장기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는 올해 3735만8000명으로 작년에 비해 23만2000명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2021~2025년에는 150만5000명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빚어진 고용시장 충격이 청년층에 집중됐다”며 “저출산·비혼화가 고착화하면서 소비 위축이 만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