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인구 100만 '특례시'
과거 중국에서 인구 100만 명을 넘는 도시는 남조(南朝) 여러 나라의 수도였던 건강과 당나라 때 장안과 낙양, 송대의 개봉과 임안, 명대 초기의 남경, 청대의 북경 정도를 꼽는다. ‘인다(人多)·지대(地大)·물박(物博)’의 중국에서도 오랜 기간 인구 100만 명 도시는 특별한 예외적 현상이었다.

일본 에도(도쿄)도 18세기 중기에야 거주민이 10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는 각각 1802년과 1846년이 돼서야 ‘밀리언시티(million city)’에 등극했다.

과거에 비해 인구가 크게 증가한 현대에도 ‘100만 인구’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대도시의 기준이다. 유엔에 따르면 2018년 현재 ‘밀리언시티’는 전 세계에 총 548개다. 이 중 중국(143개), 인도(61개) 등 인구 대국에 절반 이상이 몰려 있다. 한국에선 서울(972만 명), 부산(340만 명), 인천(295만 명), 대구(243만 명)를 비롯해 대전, 광주, 수원, 울산, 고양, 용인, 창원 등 11개 도시가 여기에 속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그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경기 수원(119만 명)·고양(107만 명)·용인(106만 명), 경남 창원(104만 명) 등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기존 일반시들이 ‘특례시’로 지정될 길이 열렸다.

특례시는 인구가 많은 기초지자체에 부여되는 명칭으로, 기존 광역시급 위상에 걸맞은 행정·재정 자치권한을 확보하게 된다. 도지사의 승인 없이 시가 51층 이상 혹은 연면적 20만㎡ 이상 건축물의 허가를 낼 수 있는 등 일반시에 비해 조직·재정·인사·도시계획 등에서 재량권이 크게 넓어진다.

특례시로 이름이 바뀌는 것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수 기여도가 높은 ‘특례시’를 내보내야 하는 경기도 등 광역자치단체들의 반대가 거세다. 특례시 지정을 기회 삼아 공무원 조직을 확대하려는 ‘밥그릇 챙기기’도 우려된다. 커진 덩치에 걸맞은 재정 자립과 성숙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특례시 지정을 지방 행정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좁혀졌는데도, 고려(5도양계)·조선(8도) 시대 제도와 큰 차이가 없는 현 행정구역 시스템으론 바뀐 시대상을 반영한 효율적 행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례시가 1000년 묵은 낡은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