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37)]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부관참시, 이장(移葬)보다 더 큰 모욕
죽은 자에게 이장보다 더 큰 모욕은 부관참시(剖棺斬屍)다. 무덤을 파헤쳐 관을 부수고 유해를 토막 내 욕보이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적(政敵)에게 복수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올리버 크롬웰의 경우를 보자. 청교도 혁명을 일으켜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영국 최초로 공화정을 실시한 크롬웰은 사후(死後) 웨스트민스터 묘지에 안장됐다. 그러나 왕정복고로 즉위한 찰스 2세는 복수심에 불타 크롬웰을 부관참시했다. 무덤을 파서 관을 부수고 목을 잘랐다. 머리는 장대에 꽂아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걸었다. 그 후 머리는 무려 300년을 떠돌다가 1960년에야 케임브리지에 있는 시신 곁에 묻혔다. 모진 인생역정이었다.
사후 복수를 예견하고 미리 조치를 강구한 사례도 있다. 바빌론 여왕인 니토크리스의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있었다. ‘바빌론 왕은 돈이 필요하면 무덤을 파서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 단, 정말로 돈이 필요할 때만 무덤을 파라.’ 페르시아 제국의 설계자이자 전성기를 이끈 다리우스 1세가 바빌론을 정복한 뒤 비문을 읽었다. 황제로서 돈은 많았지만 금은보화가 무덤 안에서 썩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 그가 무덤을 파헤쳤다. 그러나 돈은 없었고 여왕의 시신 옆에서 메모가 나왔다. ‘죽은 자의 무덤을 약탈할 생각을 할 정도로 당신은 탐욕스럽군.’ 산 자에 대한 죽은 자의 통쾌한 복수였다.
오늘날 독재국가가 아닌 한 부관참시를 보기는 어렵다. 근대문명은 잔혹한 형벌을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덤에 침을 뱉는 무례를 방지하기는 힘들다. 누군가가 무덤 위에서 춤을 추는 것도 좀처럼 막기 어렵다. 옛날 한 영국 귀족의 부인은 남편과 사이가 매우 나빴다. “당신이 죽으면 무덤 위에서 춤을 출 거야.” 그러나 꾀가 많은 남편은 그녀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바다에 묻어달라는 조항을 유언에 남겼기 때문이다.
선행(善行)으로 마음 속에 묻혀야
그렇다고 중국 철학자 장자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죽음을 초탈하지 않은 이상 자연장(自然葬)으로 장사를 지내 동물의 먹이가 되도록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가 당신의 무덤에서 춤을 추거나 침 뱉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까? 먼저 선행을 베푸는 방법이 있다. 특히, 국가 지도자가 준엄한 역사의 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정(善政)을 펼쳐야 한다. 르완다에는 ‘사람은 죽어서 들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묻힌다’는 격언이 있다. 당신의 선행을 기리며 사람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거나 추모의 꽃다발을 놓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우주에 묻히는 것이다. 사망 후 유골을 우주공간으로 보내는 우주 장례식은 1997년 처음 시작됐다. 그 후 상업용 로켓기술이 발달하면서 성업 중이다. 여러 우주장례 서비스 업체가 경쟁하고 있고, 비용도 낮아지고 있다. 작은 캡슐에 담긴 유해가 지구궤도를 수년간 돌다가 대기권에 진입하며 연소돼 소멸하거나, 유골함을 실은 인공위성이 240년간 지구궤도를 돌거나, 달에 매장하는 등 다양한 장례 방식이 실행 중이거나 실현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우주의 별이 돼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