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빈곤층 고용악화 외면한 '빈곤 전문가'
추워지는 날씨 때문이었을까. 지난 3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게재된 ‘일자리 질 대해부’ 기획을 취재하는 동안 기자들의 마음은 유난히 시렸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 인근 인력중개사무소에서 만난 노인, 밤거리에서 만난 40대 배달원 등은 모두 악화된 취업 상황을 고발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 감소를 부르고, 사회적 약자의 삶부터 갉아먹는다는 경제학 교리를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통해 증언했다.

노인빈곤율은 2017년 2분기 44.6%에서 올해 3분기 47.4%까지 높아졌다. 주 40시간 이상을 일하는 30~40대 근로자는 지난 2년간 74만 명 줄었다. 원자료를 분석하긴 했지만 모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작 통계청이 발표하는 지표들은 하나같이 장밋빛이다. 60대 이상을 중심으로 취업이 늘고 있다고 매달 홍보하더니 지난 10월에는 고용률이 67.1%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고 자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목희 일자리 부위원장도 이를 들어 “일자리 정책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민간 일자리가 사라지고, 일자리의 질이 악화되는 것에 대한 대책이 나올 리 없다. 정부 통계가 정책 결정자들의 눈과 귀를 막아 근로소득 감소에 따른 빈곤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강신욱 통계청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빈곤 전문가다. 1998년부터 서울사회경제연구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을 거치며 빈곤 문제 해결을 연구해왔다. 지금도 통계청 홈페이지에는 저소득층 생활 개선과 소득 불평등 완화를 주제로 한 강 청장의 저서와 논문 제목이 나열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강 청장이 취임한 이후 통계청의 모습은 빈곤과 소득 악화를 정확히 보여주기보다 이를 감추는 데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사상 최고를 기록한 비정규직 증가 수치를 발표한 10월 강 청장의 행보가 단적인 예다. 이례적으로 직접 설명에 나선 강 청장은 “질문 방식 변화에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경준 전 통계청장은 “결과에 영향을 줄 만한 변화는 없었다”며 “통계 구조를 모르고 있거나 일부러 의미를 축소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9년 이후 최고치를 찍은 지난해 자살 증가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와 함께 “유명인 자살 모방효과”라는 설명을 내놔 지탄을 받았다.

평생을 빈곤 문제에 천착해온 강 청장이 악의를 갖고 특정 통계 결과를 부풀리거나 축소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통계가 빈곤 해결을 위한 경제정책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그간 자신의 연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해석과 설명을 내놓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