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장폐지 폭탄' 터지나
올해 기업 재무사정 악화나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상장기업 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경기 부진 여파로 기업 실적이 악화된 데다 ‘신(新)외감법’(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 시행으로 감사가 깐깐해진 ‘이중고’에 몰린 탓이다. 관리종목 지정 사유를 해소하지 못하면 내년에 무더기 상장폐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관리종목 지정 기업 급증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관리종목(스팩 및 우선주 제외)으로 지정된 기업은 모두 80곳이다. 관리종목 지정 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 97곳이 있었고 여파가 남아 있던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104곳, 93곳이었다. 이후 점차 줄어들어 2016년과 2017년에는 38곳씩에 그쳤다. 그러다 지난해 57곳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 들어 더 급증한 것이다.

올해 남은 기간에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곳까지 합치면 연간 지정 기업 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수준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관리종목 지정은 연간 사업보고서가 나오는 3~4월과 반기보고서가 나오는 7~8월에 가장 많지만 연말에도 적지 않다.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11~12월에 적게는 2곳에서 많게는 11곳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실적 악화에 따른 파산 및 회생 절차 개시 등이 지정사유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면 연간 관리종목 지정 기업은 90곳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

올해 관리종목이 된 기업 80곳의 지정 사유를 보면 감사의견 비적정(한정·부적정·의견거절 합계)이 36곳(45.0%)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4개 사업연도 이상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기업 이익 악화가 원인인 기업이 26곳(32.5%)으로 뒤를 이었다. 두 가지 원인이 모두 들어 있는 경우는 8곳(10.0%)이었고, 임직원의 배임·횡령 등 기타 사유는 10건(12.5%)이었다.

내년 '상장폐지 폭탄' 터지나
이익 악화에 신외감법 ‘이중고’

올 들어 관리종목 지정이 급증한 가장 큰 원인은 기업 이익 환경 악화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영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공시부장은 “감사 의견 비적정 문제도 알고 보면 이익이 줄어드는 등 사업환경 악화가 원인이 된 경우가 많다”며 “재무구조가 나빠지면 기업이 이를 감추기 위해 감사인에게 자료 제공을 제대로 안 하거나 부실회계를 하려는 동기를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외감법 영향으로 외부감사가 깐깐해진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신외감법은 감사인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한 법으로 지난해 11월 시행됐다. 이익이 나빠진 상황에서 더 엄격한 감사를 받다 보니 기업이 관리종목 지정이라는 ‘막다른 곳’에 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EY한영이 국내 중견 기업 재무담당자 18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신외감법 시행 뒤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7.0%가 ‘국제회계기준(IFRS)상 다양한 해석이 있음에도 (감사인이) 무리한 지적을 한다’고 답했다.

감사의견 비적정으로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면 절반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상장폐지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쇼크’로 기업 이익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며 “상장폐지 사유 발생으로 인한 개선 기간이 끝나는 내년에 무더기 상장폐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