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홍콩 시민, '복면금지법' 맞서 마스크·가면 쓰고 거리로
곳곳 반중국 구호와 낙서…시위대, 중국계 은행·점포 집중 공격
홍콩지하철공사, 시위대 미움 사 곳곳 전철역 훼손되고 불에 타
[르포] 홍콩 도심 '저항의 마스크'로 뒤덮이다
6일 오후 홍콩 도심은 온통 마스크와 가면의 물결로 뒤덮였다.

홍콩의 최대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에서 경찰본부가 있는 완차이, 홍콩 정부청사가 있는 애드머럴티,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에 이르기까지 홍콩 도심은 각종 마스크와 가면을 쓴 수만 명의 시민이 점령했다.

지난 4일 홍콩 정부는 17주째 이어져 온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며 '복면금지법'을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다음 날인 5일 0시부터 곧바로 시행했다.

공공 집회나 시위에서 마스크나 가면의 착용을 전면 금지한 이 법을 어기면 최고 1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홍콩 도심을 뒤덮은 마스크의 물결은 정부의 복면금지법이 저항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쓴 캘빈 씨는 "수만 명의 시민이 일제히 마스크를 쓰고 행진한다면 경찰이 과연 이를 저지할 수 있느냐"며 "복면금지법은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르포] 홍콩 도심 '저항의 마스크'로 뒤덮이다
지금껏 대규모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시위에 참여한 사람도 상당수 찾아볼 수 있었으나, 이날 홍콩 시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마스크나 가면을 쓰고 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띈 가면은 바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해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이었다.

1605년 영국의 가톨릭 신자인 가이 포크스는 가톨릭과 갈등을 빚는 영국 성공회 수장 제임스 1세 국왕을 암살하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민중의 저항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앙받게 된다.

앞에는 마스크를 쓰고, 뒷머리에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한 시위 참가자는 "홍콩 시민들의 저항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가면을 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쓴 시민은 무죄이며, 복면금지법이야말로 터무니없다는 뜻의 '복면무죄, 입법무리'(蒙面無罪, 立法無理)라고 쓴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사람도 보였다.

호랑이 수염이나 이빨을 그려 넣은 재미있는 마스크들도 눈에 띄었다.

[르포] 홍콩 도심 '저항의 마스크'로 뒤덮이다
이날 시위대는 홍콩 도심인 코즈웨이베이, 완차이, 코즈웨이베이, 센트럴 등을 온통 점령한 채 물결이 흐르듯 이곳저곳을 행진하고 다녔다.

침사추이, 몽콕 등 카오룽 지역에서도 시위는 벌어졌다.

이들은 "폭도는 없고 폭정만 있다", "홍콩인이여 저항하라",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과 함께(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 Kong)", "6대 요구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홍콩 시위대의 요구 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 5가지였으나, 최근 여기에 '경찰 해체'가 더해져 6대 요구가 됐다.

도심 곳곳에서 시위대는 송환법 반대 시위의 주제가인 '홍콩에 영광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르포] 홍콩 도심 '저항의 마스크'로 뒤덮이다
이날도 홍콩 시위대는 강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냈다.

홍콩 도심의 건물 벽과 길바닥에는 곳곳에 차이나(CHINA)와 나치(NAZI)를 합성해 만든 '차이나치'(CHINAZI) 낙서가 적혀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압제에서 홍콩을 해방하자는 뜻을 담은 '광복홍콩 시대혁명'의 낙서도 눈에 띄었다.

코즈웨이베이, 프린스에드워드, 조던 등 홍콩 곳곳에 있는 중국은행, 중국건설은행 지점의 현금입출금기(ATM) 등은 시위대에 의해 박살이 났다.

몽콕 인근의 중국 휴대전화 제조업체 샤오미 매장에는 시위대가 불을 질렀고, 완차이 지역의 중국여행사 매장은 중국을 비난하는 낙서로 뒤덮였다.

현재 홍콩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시위 진압을 위해 진입할 것이라는 소문, 중국이 홍콩에 공급하는 물과 수도를 끊을 것이라는 소문, '긴급법'이 발동된 이상 야간 통행금지와 소셜미디어 차단이 멀지 않았다는 소문 등 온갖 소문이 떠돌고 있다.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비상 상황 시 행정장관에게 시위 금지 등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긴급법'을 발동해 복면금지법을 시행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20대 다니엘은 "긴급법이 발동된 이상 그 다음 수순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우리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지만, 홍콩의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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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의 원한을 산 또 다른 기관은 바로 홍콩지하철공사(MTR)였다.

이날 홍콩 곳곳의 지하철역에는 '민간 쓰레기장'이라고 적힌 팻말이 붙어 있었고, 시위대가 여기에 쓰레기나 폐품 등을 갖다버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위대는 몽콕 지하철역 입구 등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시위대는 홍콩 지하철공사가 역내에서 시위를 금지하는 법원의 임시명령을 발부받은 것을 두고 홍콩 정부와 결탁했다며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센트럴 지하철역 앞에서 만난 갯츠비 씨는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홍콩지하철공사는 인근 전철역을 모두 폐쇄해 시위대가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며 "이런 행태를 보이니 미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홍콩지하철공사는 전날 시위대에 의한 지하철역 기물 파손을 이유로 홍콩의 모든 지하철 운행을 중단했다.

이날도 시위가 예상되는 지역의 주요 역은 모두 폐쇄됐다.

오전부터 홍콩 내 전체 91개 지하철역 중 49곳이 폐쇄됐으며, 오후 들어 시위가 확산하자 폐쇄된 지하철역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르포] 홍콩 도심 '저항의 마스크'로 뒤덮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