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경기 안산시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에 참석하기 앞서 ‘스마트 제조 시범(데모) 공장’을 방문해 기술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안산=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경기 안산시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에 참석하기 앞서 ‘스마트 제조 시범(데모) 공장’을 방문해 기술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안산=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제조업 부흥을 통해 2030년까지 소득 4만달러, 수출 세계 4위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기 안산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비전선포식에서 “대한민국 경제활력을 제조업에서 다시 불러일으키겠다”며 이 같은 2030년 글로벌 제조업 4강을 목표로 한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 "AI 스마트공장 2000곳 만들겠다"
문 대통령은 “도약이냐 정체냐 중대 갈림길에 서 있는 제조업은 여전히 우리 경제의 중심이고 혁신성장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2030년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여는 견인차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올 들어 문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해 비전을 선포한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미래자동차 등의 3대 핵심 성장전략과 맞물린 제조업 부흥 구상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단기간 내 제조업 역량을 키워 세계 6위의 제조업 강국으로 우뚝 섰지만 과거의 추격형 산업전략은 더 이상 한국 경제의 해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제조업 역량을 잃으면 혁신 역량까지 잃게 된다”며 제조업 부흥이 곧 경제 부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공장 2000개 신설과 유턴기업 세제 지원 강화 등의 대책도 내놨다.

대통령 주재 ‘민관 합동 제조업르네상스 전략회의’를 신설해 노사문제 환경규제 등 기업 애로사항을 논의하는 창구로 활용할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 "AI 스마트공장 2000곳 만들겠다"
문재인 대통령 "융·복합 가로막는 규제 걷어낼 것…기업가정신 맘껏 발휘해 달라"

고광일 대표가 2002년 자본금 10억원으로 설립한 반도체 장비업체 고영테크놀러지는 작년 매출 2382억원에 영업이익 460억원을 기록했다. 이익률은 약 20%다. 직원 수 400여 명의 이 회사는 3차원(3D) 전자부품 검사 부문에서 11년 연속으로 세계 1위다.

정부가 19일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은 2030년까지 고영테크놀러지와 같은 강소 제조업체를 다수 배출하는 게 목표다. 양질의 일자리와 혁신 성장의 원천은 제조업이란 판단에서다.

미래기술에 8조4000억원 투자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은 2030년까지 한국 제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독일 인더스트리4.0, 중국 제조 2025, 일본 신산업 구조 비전, 미국의 첨단제조업 리더십 확보 전략 등과 일맥상통한다. 글로벌 4대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는 게 최종 목표다. 추진 전략은 △산업구조 혁신 △신산업 육성 △산업생태계 개편 △기업가형 정부 등 네 가지다.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산업 지능화다. 올해 말 AI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2030년까지 ‘AI 기반 스마트 공장’을 2000개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제조업 혁신 특별법’을 별도 제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2022년까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공장 3만 개를 보급하는 한편 2030년까지 스마트 산업단지를 20곳 조성할 계획이다.

제조업 생산 중 신산업·신품목 비중을 현재 16%에서 2030년 30%로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시스템 반도체와 미래차, 바이오헬스 등 3대 핵심 산업을 차세대 주력 제조업으로 키울 방침이다. 정부는 관련 연구개발(R&D)에만 총 8조4000억원을 투자한다. 민간이 투입하는 180조원은 별도다. 철강 섬유 화학 등 기존 주력산업의 경우 고부가 유망품목 중심으로 전환한다. 유망 품목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2차전지, 고부가철강 등이 꼽히고 있다.

“식어가는 엔진”에 놀란 정부

정부가 ‘다시 제조업’을 들고 나온 배경은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온 제조업이 위기를 맞았다는 판단에서다. 제조업은 201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출의 90%, 설비투자의 56%를 차지했지만 각종 환경·노동 규제와 중국의 약진 등으로 급격히 위축됐다. 지난 10년간 새로 성장한 신산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수출은 작년 말을 기점으로 7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비전 선포식에서 “도약이냐 정체냐, 지금 우리 제조업은 중대 갈림길에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 이후 새로운 산업을 만들지 못해 지난 10년간 주력산업이 변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중국은 ‘추격자’를 넘어 ‘추월자’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세계 제조 강국들이 혁신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우리 대응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뼈 아픈 대목이다.

“노동 등 기업규제 개선부터”

전문가들은 정부의 제조업 혁신 방향에 대해선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제조업체의 자생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란 지적도 많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에서 제조업 비전을 논의했다는 자체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다음으로 노동시장 규제 등 구체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제조업 강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은 고부가가치화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규제샌드박스와 규제자유특구를 통해 융·복합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겠다”고 말했다. 또 “기업가정신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정부가 뒷받침하겠다”며 “민관 합동 전략회의를 신설해 생산비용, 노사문제, 환경규제 등 기업 애로사항을 함께 해결해가자”고 했다. 하지만 강력한 의지와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법인·상속세를 낮추는 등 투자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노조에 기울어진 노사관계를 정상화해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형호/조재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