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도쿄지검 특수부의 분식회계 수사
일본 도시바의 분식회계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15년 2월이었다. 공교롭게도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의 분식회계 논란이 시작된 것과 같은 해다. 일본의 증권거래감시위원회(한국의 증권선물위원회)는 도시바 측 내부 고발을 계기로 조사에 착수했다. 도시바 경영진은 같은해 9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총 2248억엔의 이익을 과대계상하는 부정회계가 있었다”고 실토했다. 니시다 아쓰토시, 사사키 노리오, 다나카 히사오 등 분식회계가 이뤄진 기간의 전직 사장들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증권거래감시위원회는 “반드시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흥분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나섰다. ‘거악(巨惡)을 잠들지 못하게 하라’를 모토로 내건 일본 최고의 수사조직이다. 하지만 전직 사장들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대신 도시바에 73억엔의 과징금 처분이 내려졌을 뿐이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특수부가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도시바 PC사업부문은 외부 업체와의 거래과정에서 부품 가격 조작을 통해 이익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지만, 여기에 전직 사장들이 관여한 정도를 명확하게 가리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명백한 증거 없이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일본 증권거래감시위는 이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형사고발을 포기했다. 요즘 한국의 법감정이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결말이었다.

정현호 삼성전자 사장(사업지원 TF팀장)이 1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소환됐다. 삼바 분식회계에 대한 증거인멸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제 검찰의 칼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향할 태세다. 삼성은 말 그대로 폭풍전야다.

만약 삼바의 분식회계가 사실이고, 이 부회장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면 그에 대한 사법처리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는 자의적 심증이나 일방적 추론이 아닌, 명확한 증거로 입증돼야 한다. 일차적으로 분식회계에 대한 사실 여부가 법원에서 가려져야 한다. 삼바의 회계 처리는 당초 금융감독원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봤던 사안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돌변했다. 지난해 5월 돌연 재감리를 결정, ‘위법’으로 몰고갔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분식 여부를 가리기보다는 증거인멸에 대한 수사에 열을 올렸다. 분식은 아예 기정사실로 간주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8명의 삼성 임직원을 구속했다. 삼성에서 30년 가까이 봉직한 부사장 3명을 비롯해 상무 3명, 부장 1명, 대리 1명이었다. 증거인멸은 가볍지 않은 범죄다. 하지만 검찰이 위아래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구속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들이 감옥을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필부들이다. 인멸하려던 증거가 삼바 분식과 직접적 관련성이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역설적으로 저인망식 구속이 검찰의 자신감 결여를 반증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더욱이 애초에 분식이 아니라면 ‘증거인멸’이나 ‘지시’ 같은 혐의는 존재할 수 없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도시바 전 사장들을 기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해나 비난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한 증거주의로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한국은 어떨까. 일부 언론을 통해 드러난 검찰의 추론은 ‘삼성 수뇌부가 삼바 분식회계를 지시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고, 증거인멸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했으며, 오로지 이재용만 그 혜택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삼성은 거악이다. 하지만 사실과 증거가 우선이다. 검찰은 범죄 사실과 그 피해를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게 진짜 실력이다. 만약 자의적 추론에 기댄 짜맞추기 수사로 죄없는 사람들을 잡아넣는다면 거악의 오명은 검찰이 뒤집어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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