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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일훈 칼럼] 늙어가는 국가, 오늘만 살겠다는 사람들

    우리는 나날이 늙어가는 3만달러 국가에서 살고 있다. 인력도, 기업도, 산업도 원숙을 넘어선 노쇠의 굴레에 빠졌다. 최첨단 반도체조차 대규모 설비와 경직적 고용이라는 무거운 사슬에 묶여 있다. 연간 10조원 적자가 나도 감원이 불가능하다. 국내 최대 조선사는 외국인 근로자들 없이 돌아갈 수 없는 구조다. 모처럼 찾아온 호황에 매출 10조원을 올리고도 영업이익은 고작 3000억원에 그친다. 지금이 피크라고 하니 앞이 캄캄하다.지난 20여 년간 눈부신 성장과 확장을 거듭해온 대기업과 금융사들은 어느새 관료주의적 무사안일에 젖었다. 일부 대기업의 주말 임원 근무는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넉넉한 연봉과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도 성장과 혁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솔선수범하지 못한 데 따른 질책이다. “첨단 디지털 시대에 농업적 근면성을 요구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혁신 부재를 임원들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다들 오늘 하루를 편하게 때우는 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주 52시간제로 대표되는 노동 과보호와 워라밸의 범람, 해외 경쟁 기업들의 거센 견제와 추격 속에서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의 상징처럼 돼버린 사과 값과 건설 비용이 동시에 치솟은 연유가 있다. 경제 전반에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찌든 탓이다. 권력 이동이나 정치 퇴행보다 훨씬 심각한 변화다.우리 사회에선 멀리 내다보는 사람들, 혁신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회사, 고객, 환자야 어떻게 되든 말든 한 줌 기득권에 집착하고 미래의 일보다 눈앞의 현세적 이익에 더 촉각을 곤두세운다. 미래

    2024.04.23 18:17
  • [조일훈 칼럼] 윤석열 대통령,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총선 결과가 야당 압승, 여당 참패로 나왔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차마 인정할 수 없는 결과다. 지난 집권 2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정과 상식을 앞세운 승리 공식은 외면받았고 여당 지지자들은 단장(斷腸)의 비탄에 잠겼다. 야당 인사들의 숱한 범법과 파렴치는 유권자들의 불감증을 일깨우지 못했다.숨죽여 결과를 확인한 뒤의 막막함과 적막감이 다시 길고 어두운 터널 앞에 선 우리 경제와 안보를 걱정스럽게 한다. 윤 정부는 자력으로 개혁과제들을 추진할 동력을 잃었다. 이제 무엇으로 국민을 만나고 설득하고 희망을 줄 것인가. 자유 시장경제와 한·미·일 해양 결속만이 국가의 안녕과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믿음은 메시아가 약속한 구원의 손길처럼 아득한 거리로 멀어졌다. 유권자들은 미래 아젠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담론보다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 김건희 여사의 그릇된 처신에 더 눈을 부릅떴다. 극강의 막말과 기동성과 전투력으로 무장한 야당 후보들이 기어이 금배지를 단 배경이다.윤 대통령은 국정 전면 쇄신이라는 무거운 짐을 받았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정부 전체가 무력증에 빠질 수 있는 위기다. 국면 전환을 위한 지름길은 없다. 지름길이 없는 이상, 그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총선 패배 요인 가운데 대통령실 부분만 따로 떼어내 정교하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집안 정리부터 해야 한다. 용산의 참모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운용체계를 바꿔야 한다.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교체만이 능사가 아니다. 꼭 필요한 인재는 남겨둬야 한다. 힘 빠진 대통령실이 모을 수 있는 인재 풀이 그다지 넓은 것도 아니

    2024.04.11 17:49
  • [조일훈 칼럼] 조국 수호-이재명 방탄, 그 5년의 퇴락

    과거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를 겪은 직후 “좌파가 이렇게 센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많은 우파 지식인들이 정치 물정 어두운 대통령에게 혀를 찼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간첩단 보고를 받고 “우리나라에 간첩이 이렇게 많아?”라고 반문했다. 비록 공안검사 출신은 아니지만 평생 범죄자를 쫓아왔고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외쳐온 대통령조차 그랬다. 우파는 안일하고 좌파는 음험하다. 우파는 김정은까지 3대를 이어온 북한의 대남공작이 핵무기보다 훨씬 무섭다는 것을 잘 모른다. 친중·친북·반자유·반미·반일 이념의 거대 저수지에서 배양된 좌파적 사고와 의식은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다. 우파는 체제 헤게모니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 국민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거의 왼쪽으로 기울어 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임기 초반부터 30%대로 떨어진 이유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앞세운 좌파 진영의 집요한 공작과 강력하고도 일사불란한 공격력이다. 전교조 민노총 언론 사회단체 등이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전 분야의 좌파 프레임을 앞다퉈 생산하고 퍼뜨렸다.돌이켜보면 여야 피차간에 크고 작은 약점과 실착이 많았다. 흠집의 성격과 무게를 놓고 보면 야당 쪽이 더 큰 타격을 받았어야 했다. 잇따른 입법 폭주와 장관 탄핵 남발, 김남국 의원의 코인 난장, 의원 수십 명이 연루된 돈봉투 사건, 이재명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폐기, 공천 과정의 숱한 무리수 등은 정당 민주주의 퇴락과 공당의 도덕적 파탄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불통 논란, 이태원 참사·김건희 여사에

    2024.03.27 17:49
  • [조일훈 칼럼] 의사집단은 끝내 이권 카르텔로 남을 건가

    의사들은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 본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의료 현장을 떠나는 자기 파괴적 투쟁 말고는 달리 대항 수단이 없다. 의사가 모자란다고 하는 판에 스스로 활동 의사 숫자를 줄이고 있다. 이런 어깃장이 없다. 의약분업, 원격의료, 의대 증원 등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정책이 나올 때마다 파업으로 맞서온 사람들이다. 그 폐해가 수십 년간 누적돼 이제 국민도 진력이 나고 있다. 의사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0년 펴낸 ‘한국경제 60년사’에도 필수의료 부족과 의료서비스의 지역별 불균등 문제가 적시돼 있다. 다른 선진국과의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를 비교하는 수치가 소상하게 나열돼 있다.의대 교수와 전공의의 길드(동업조합)적 연대는 의사 집단의 카르텔적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 결의를 ‘제자 사랑하는 순수의 발로’로 볼 순 없다. 이제 막 입학한 의대 신입생들의 수업 거부를 방치하는 스승들 아닌가. 학원 소요가 심했던 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의 강단도 이렇진 않았다.모든 의사를 싸잡아 말할 순 없지만, 의료계에는 오랜 훈련과 직업적 경험을 통해 중세 길드식 생존법을 체화하고 전파하는 사람이 많다. 직역의 대체 불가성과 의료 시스템의 취약성을 능란하게 파고든다. 길드의 경쟁력은 정부 면허를 기반으로 한 배타적 독점력이었다. 이를 위해 도제 숫자를 통제하고 조합원 충원과 훈련에 대해 전권을 행사했다. 오늘날 의사단체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길드의 수습공은 도제라는 기술훈련 시스템에 따라 4~5년의 수련을 거쳐 숙련공이 되고 나중에 장인이 되는 길을 걸었다. 독일 보쉬 창업자

    2024.03.12 18:06
  • [조일훈 칼럼] 반도체판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미국 인텔의 파운드리 선전포고에 이어 일본 구마모토의 TSMC 신공장 착공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1주일이 지나갔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전통적 분업 질서에 조종이 울렸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국보급 달러박스, 삼성전자도 거대한 격랑에 휩싸였다.첨단기술이 세상을 얼마나 요란하게 바꾸든 모든 것은 컴퓨팅에서 시작한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대용량 서버의 기본적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컴퓨터는 중앙처리장치로 불리는 CPU(스마트폰은 모바일AP)와 메모리 반도체로 작동한다. 우리가 컴퓨터에 어떤 동작을 하라고 명령하면 CPU가 연산 방식, 메모리 접근, 입력과 출력을 결정한다. 이렇게 생성된 정보와 데이터는 D램과 낸드플래시로 넘어가 저장된다. 인공지능(AI)이 등장하기 전 CPU와 메모리 시장의 최강자 인텔과 삼성전자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양분한 배경이다.비즈니스 세계에서 위기는 기회로, 기회는 위기로 순식간에 바뀐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공급망 전쟁에 나설 때만 해도 “삼성에 운이 따른다”는 평가가 많았다. 중국의 추격 속도 둔화가 삼성에 반사이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공급망 전쟁의 진실은 미국의 반도체 굴기다. 4년간 520억달러의 보조금을 걸었더니 세계 600여 개 기업이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여기에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양대 축으로 한 AI산업 발진이 기존 반도체 생태계를 급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다.AI 시대의 컴퓨팅은 선수 교체를 요구한다. CPU 자리에 GPU(그래픽처리카드), D램 자리에 HBM(D램을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린 고용량 메모리)이 투입된다. 삼성전자는 CPU도, GPU도 없다. 칩 설계도 제자리걸

    2024.02.27 18:07
  • [조일훈 칼럼] '명품백 논란'보다 중요한 국민 삶의 혁신

    윤석열 대통령은 ‘명품백 수수’에 대해 끝내 명시적 사과를 하지 않았다. 부정적 여론이 강하고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 뻔한 데도 그랬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로 접근한 세력들의 불의에 굴복할 수 없다는 고집이었을 것이다. KBS 방송 직후 지난 8일 열린 민생토론회. 신분을 속인 청소년들에게 술을 팔았다가 그들의 신고로 영업정지 위기를 맞은 음식점주의 하소연이 있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제가 온전히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합니까.”관련 부처에 즉각 시정을 지시한 윤 대통령도 흥분했다. “술 먹고 담배 산 청소년이 자진신고한 경우는 처벌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국가가 이렇게 하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먹고 살기도 힘든데 도대체 왜 그러느냐 이 말이야.” 이 장면이 묘하게도 명품백 논란에 대한 대통령의 울화를 엿보게 만들었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러느냐”로 오버랩됐다.윤 대통령은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해선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고 바로 사과했다. 그 한마디로 마무리됐다. 김건희 여사 문제 역시 깔끔하게 사과했더라면 후폭풍은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보지 않았을 리 없다. 혹여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그래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 책임은 오롯이 본인의 것이며 판단은 국민 몫이다.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이제 총선 때까지 매를 맞으면서 가야죠”라고 꼬집었다. 대통령에 대한 원념이 가득했다.대통령은 점차 여의도에서 밀려나고 있다. 용산 출신 후보들도 알아서 긴다. 대

    2024.02.13 17:49
  • [조일훈 칼럼] 한국 주식시장 저평가론에 대하여

    한국 주가는 낮다. 높아야 하는데 낮은 게 아니다. 그냥 낮을 뿐이다. 미국, 일본 주가가 올랐다고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는 단선적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한국 시장이 저평가돼 있다는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일시적 정체라면 몰라도 수십년째 디스카운트를 받는 시장은 없다. 지금 삼성전자를 미국 뉴욕시장으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한국 상장사 주가수익비율(PER)이 미국에 비해 40% 저평가돼 있다는 논리를 추종하면 단번에 10만원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인적 구성, 사업구조, 핵심 역량이 바뀌지 않는다면 뉴욕 할아버지라도 소용없다. 지금 주가가 우리 기업들의 실력이요, 국가 경쟁력의 현주소라고 봐야 한다.주식시장은 사업밑천을 모두 쏟아부어 성과를 극대화하는 기업에 환호를 보낸다. 많이 팔고(총자산 회전율), 많이 남기는(순이익률) 경쟁의 장이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주가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로 자리잡은 이유다. 벌어들인 돈을 은행에 넣지 않고 바로 주주들에게 나눠주거나 모험적 투자에 나서는 애플과 테슬라식 경영은 최고의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상장사들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대규모 설비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 비중이 높아 가볍게 움직일 수 없다. 미국 빅테크들처럼 생산성이 떨어지는 공장을 마음대로 정리하고 언제든 대규모 해고를 단행할 수 있는 경영환경도 아니다. 정치가 기업을 짓누르고 강성 노조와 좌파 단체가 발목을 잡는다. 외국 기업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업 재편과 방향 전환이 한국 기업들에는 무척 어렵다. 자본력을 모두 투자에 쏟아붓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경영진의 현금 보유 선호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2024.01.30 18:05
  • [조일훈 칼럼] 선관위 편의가 선거 공정성보다 앞설 순 없다

    지난 주말 끝난 대만 총통 및 입법의원 선거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이다. 사전투표, 부재자 투표가 없고 휴일인 토요일에 호적지로 가서 투표하도록 돼 있다. 그러고도 투표율은 전자시스템을 채용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사전투표 도입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선거 개입 우려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개표 과정은 더 수동적이다. 기표관리원이 수작업으로 표를 하나씩 뽑아 들어 모두에게 보여주며 표에 적힌 내용을 소리 내 읽는다. 정당과 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이를 눈으로 확인한 뒤 복창한다. 또 다른 기표관리원은 모두가 보는 곳에서 번호, 성명 등에 맞춰 표수를 바를 정(正)자로 기록한다. 기록지에 100표가 가득 차면 또 다른 관리인이 소리 내어 읽고, 주변인들이 이를 복창하며 결과 합산지에 기록한다.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고도 오후 4시에 시작한 개표는 7시께 개표율 60%를 넘었고, 8시가 되자 완전히 승패의 윤곽이 드러났다.2020년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 여전히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양대 정당의 사전투표와 본투표 지지율 격차가 최대 16%포인트, 평균으로는 10%포인트 정도 벌어지면서다. 수만, 수십만 명에 달하는 동일한 유권자 집단을 기반으로 사전·사후투표의 성향이 이렇게 다를 수 없다는 통계학자들의 증언도 잇따랐다. 바로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전투표에 대한 불신은 근본적으로 본투표와의 시간적 간격, 장소 이동, 집표 방식 차이 등에서 연유한다. 과연 현행 사전투표가 본투표만큼 정확하고 공정하게 집계되느냐에 대한

    2024.01.16 17:54
  • [조일훈 칼럼] '오너들의 반란'은 끝났지만

    지난해 재계 인사의 특징은 세대교체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오너들의 귀환’ 내지는 ‘오너들의 반란’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산업계와 금융계에 제법 이름난 장수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물러났다. 최태원 SK 회장은 부회장단을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게 한 뒤 사촌 동생(최창원)을 그룹 2인자로 끌어올렸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주력 회사 CEO들을 50대 중반으로 꾸리면서 친정 체제를 강화했다. 한화 HD현대 코오롱 등은 2, 3세들이 부회장급으로 전면에 나섰다. 롯데는 3세를 그룹 미래전략실장으로 임명했다. 삼성은 ‘전쟁 중에 장수를 교체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사장단 교체는 최소화하면서도 부사장급을 대거 정리했다. 고위 중역들의 퇴임 안전판인 상근 고문제도 폐지했다.오너들의 전면적 부상은 지난해 경영 실적이 저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래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다. 총수들은 기업 존속에 무한 책임을 진다. 회사 운영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개인 빚을 감수하는 것도 그들이다. 자신과 기업을 동일시하며 생사를 함께하는 운명체라고 여긴다. 비록 늦어버리긴 했지만, 오죽하면 90세의 윤세영 회장이 태영그룹 경영일선에 복귀했겠나. 기존 지식과 경험이 먹히지 않는 시대가 오면 사람부터 흔드는 게 상례다.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타성과 관행에 젖은 기업 관료주의를 혁파할 수 없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단행하지 않으면 야성적 초심을 회복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네이버 카카오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젊은 여성들을 새로운 CEO로 발탁한 이유일 것이다.지금 기업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경영 환경은 ‘초불안 상태’로 요약된다.

    2024.01.04 17:43
  • 구조개혁 없이 아이 낳으라고 할 순 없다

    어김없이 뜨는 태양은 애써 시간의 마디를 구분하지 않는다. 어제의 햇살은 오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변화무쌍한 기상은 지구 내부의 변화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의 시간은 자연의 정속 주행(크로노스)과 다른 차원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변화와 혁신을 가능케 하는 ‘특별히 의미 있는 시간’, 카이로스다. 동토 아래에서 추위와 어둠을 견디는 단단한 씨앗처럼 오늘을 참고 내일을 대비해야 만들 수 있는 것이다.갑진(甲辰)년 새해가 밝았다. 청룡의 비상(飛翔)을 바라는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가 넘쳐나도 사람들의 낯빛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는다. 1964년 서울 세종로의 작은 건물(현재 신한은행 본점 자리)에서 시작해 국내 최고의 경제미디어를 일군 한국경제신문도 마냥 창간 60주년의 창대함을 자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면한 저성장과 수출 부진, 온존하는 지정학적 불안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가까운 장래에 가파르게 나타날 인구 구조 파행과 생산력 퇴조가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빤히 보이는데도 피할 수 없는 재앙이다. 로봇과 인공지능(AI), 연금·교육개혁과 이민청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우리 내부의 혁신(革新)-숙의(熟議)-합의(合意) 역량이 따라줄지 의문이다. 위기 앞에서 결속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지만 지금처럼 여야 대립과 이념적 격돌이 심하지 않았던 시절의 미덕이다.대한민국은 극적 방향 전환 없이는 미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5년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는 한국”이라고 예측한 그대로 외통수에 몰렸다. 앞으로 20년 뒤, 생산가능인구의 노인부양 비율이 지금의 세 배로 치솟고, 40년

    2023.12.31 17:25
  • [조일훈 칼럼] 민주화 주역은 과연 누구인가

    전두환 정권이 등장한 1980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1660달러였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한 1987년에는 3402달러로 껑충 뛰었다. 전자·자동차·조선 산업이 쑥쑥 자라면서 연평균 10% 넘는 고도성장을 지속한 데 따른 것이다.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연관성은 무척 음미할 만하다. 산업화가 먼저 되고 나중에 민주화가 된 나라는 많지만 그 반대 경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배고픈 시절에는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다. 모든 에너지를 생존에 쏟아붓는 마당에 사회의 지식 축적이나 잉여 생산이 일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고 과학기술 태동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늘어나면 새로운 양상이 벌어진다. 봉건적 권력이 신분제 등을 기반으로 독점하고 있는 자원배분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산업혁명이 정확하게 그런 경로로 정치·경제·사회 질서를 탈바꿈시켰다. 중산층과 시민계급이 산업화와 도시화를 기반으로 착실하게 성장하면서 자원배분 결정권이 정치권력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가 확장되고 민주주의적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인권 향상이 이뤄졌다. 비록 산업화 과정의 경제적 불평등이 공산 독재라는 반동을 불러오긴 했지만, 민주주의는 인류 문명의 보편적 기본질서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먼저 민주화를 이뤄놓고도 산업화에 실패한 사례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업과 시장이 아니라 정치적 포퓰리즘이 국가의 자원배분 시스템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산업화는 동원 가능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을 구사하는 고난도 전

    2023.12.20 17:42
  • [조일훈 칼럼] 30년 경제기자의 K팝 관람기

    K팝은 한국의 자랑이지만 나 같은 586세대에겐 다소 버겁다. 우선 빠르고 현란한 창법에 노랫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렵다. 어지러운 춤동작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인지 변별해내지도 못한다. 많게는 10명이 넘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기계적으로 조련한 듯한 몰개성적 엔터 제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동안 곁눈질로 봐온 K팝 현장을 지난주 일본 도쿄돔에서 마주쳤다. CJ ENM이 매년 아시아 국가를 돌아가며 개최하는 K팝 시상식 ‘마마 어워즈(MAMA AWARDS)’. 줄서기 2시간, 공연 4시간에 걸쳐 K팝 이방인과 첨단 공연 현장의 엄청난 간극을 메우는 데 경제기자 30년의 공력을 쏟아부었다. 당연히 단기 속성은 불가능. 무대가 너무 멀어 아티스트들을 식별하는 데만 금세 피로가 왔다. ‘아티스트’란 용어도, 그들이 쓰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도 낯설었다. ‘이제 스무 살 안팎의 청년들에게 과분한 표현’이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 모든 거부감을 잠재운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와 도쿄돔 4만여 좌석을 가득 메운 일본 팬들의 환호였다. 난생처음 하는 사람 구경, 함성 체험이었다. 관객들이 기립 떼창으로 화답한 일본 현지 아이돌 ‘JO1’과 ‘INI’ 그룹이 눈에 띄었다. CJ가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식 오디션 프로그램과 합숙훈련을 통해 조련한 아이돌이었다. 백미는 일본의 전설적 록밴드 엑스재팬 리더 요시키의 등장. 1965년생인 중년의 로커와 한국 아이돌들의 협연은 국경과 세대, 장르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대상은 세븐틴이 거머쥐었다. 단일 앨범 600만 장 판매라는 신기록을 보유한 이 괴물들은 마마 행사가 끝난 뒤 나

    2023.12.06 01:18
  • [조일훈 칼럼]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삼성물산 합병 찬성"

    인간의 기억은 위태롭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부가 흐릿해진다. 혹여 기억을 흔드는 반대의 주장이 쏟아지면 비교적 또렷한 장면들도 의심과 망각의 어둠으로 빠져든다. 타인의 불신이 운명론적 체념과 맞물리면 진실은 어느새 라쇼몽의 안갯속으로 흩어진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었던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위한 경영권 승계의 결정판이었던가, 아니면 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을 내놓으라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기습에 맞선 승부수였던가. 그것도 아니면, 건설사업 부실과 호주 광산 투자 실패에 휩싸인 물산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나. 이제 오래전 그 사건의 수순과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당시 취재 일선에 있었던 필자조차 복잡하게 뒤섞인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합병 과정의 숨가쁜 호흡과 거센 찬반 논란을 떠올릴 뿐이다. 그 오랜 사건의 1심 마지막 공판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찰이 ‘삼성물산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로 명명한 사건으로 공판에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세상은 거꾸로 뒤집어졌다. 과거 삼성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 검사는 이제 법무장관으로 엘리엇과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을 다투고 있다. 엘리엇 측에 한 푼의 세금도 내줄 수 없다는 법무부는 이제야 “물산 합병이 옛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치지 않았다”는 삼성 측 방어논리를 차용하고 있다. 위치와 역할에 따라 생각과 주장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 이 사건의 전복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미 국정농단 재판으로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른 이 회장은 “기업활동에 전념해 국민경제에 기여

    2023.11.22 17:59
  • [조일훈 칼럼] 진짜 민생, 가짜 민생

    내년 총선의 최대 화두는 민생이다.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어떻게 보살피느냐를 놓고 좌우 세계관의 일대 격돌이 불가피하다. 선거 판세를 좌우한다는 ①인물 ②구도 ③정책 가운데 정책 비중이 역대 어느 선거보다 높아졌다. 야당은 확장재정을 요구한다. 정부가 돈을 풀면 성장률 3% 회복이 가능하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정부와 여당은 수세적이다. 각 부문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운데 정부만은 건전 재정 기조를 지켜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에서 지더라도 긴축재정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막상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그것은 돈을 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 국민의 재정 중독증이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5년 동안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 재정지출을 단행하고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민생 전쟁의 핵심은 국민의 체감도다. 돈을 뿌리는 것이 가장 강력하지만 재정 악화는 필연적으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그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물가와 환율을 자극해 취약계층을 더 곤궁한 처지로 몰아넣는다.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실질적 혜택을 제공하는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가계가 당하는 고통의 근원은 고물가와 고금리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다. 물가를 낮추고 이자 상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나랏돈을 축내지 않는 진짜 민생 대책이다. 물가를 낮추는 전통적 방책은 금리 인상으로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걱정을 하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다음 정공법은 시장경쟁을 촉진하고 독과점 폐해를 줄여 경제 전반의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이명박 정

    2023.11.08 18:12
  • [조일훈 칼럼] 중동 사막에서 빛난 K기업군단의 진격

    삼성그룹이 사장단 업무용 차량을 SM5에서 현대자동차 에쿠스로 교체한다고 발표한 것은 2001년 3월. 요즘 시선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재계는 ‘화해 신호탄’이라고 해석하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1995년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진출한 이후 현대와 삼성의 관계는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현대도 삼성의 텃밭 반도체 영역을 일찌감치 치고 들어간 터였다. 1990년대는 세계화와 디지털화 동이 트기 직전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선진국에 비해 기술과 자본이 빈약했던 기업들이 덩치를 키우기 위해 전자 자동차 건설 조선 석유화학 유통 등의 분야에서 피 터지게 싸웠다. 자동차만 해도 현대-기아-대우-삼성-쌍용이 격돌했고, 조선에선 현대-대우-삼성, 백화점에선 롯데-신세계-현대가 맞붙었다. ‘에쿠스 발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별세했다.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빈소를 방문했고 장례 이후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삼성 승지원을 찾아 감사를 표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기업인들의 창업 1기가 막을 내린 상징적 장면이다. 창업주들의 분투는 그야말로 고단하고 눈물겨운 여정이었다. 삼성전자는 일본 NEC로부터, 현대차는 미쓰비시로부터 온갖 견제와 핍박을 받으며 기술을 배우고 노하우를 익혔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기치를 내건 박정희 대통령은 이병철, 정주영 회장을 만날 때마다 “일본 수준이 100이라면 우리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느냐”고 끊임없이 물었다. 사람들은 재벌을 싫어했다. 그들의 돈은 부러워했지만 경영권이 2세, 3세로 내려가는 것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20년의 과정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몇몇 기업은 외환위기 등으로 좌

    2023.10.25 18:09
  • [조일훈 칼럼] 부채 7000조원…'文 정부 탓하기' 시효는 끝났다

    경제위기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갑자기 터진다. 사전에 경고된 숱한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라 쓰나미처럼 덮친다. 1997년 외환위기도 그랬다. 위기에 이른 과정을 사후적으로 복기해 봤더니 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과다한 기업부채,관치에 찌든 금융,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짓누른 환율, 대미·대일 외교 약화, 구조개혁 실패, 야당의 비협조….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레토릭 뒤에 숨어 있던 경제의 민낯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3저 호황이 끝난 1990년대 초부터 오랫동안 진행된 병세였지만 방만과 무사안일에 찌든 경제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파국을 예견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그 시절과 많이 다르긴 하다. 외교력이 탄탄하고 비교적 넉넉한 외환보유액과 해외순자산도 있다. 하지만 부채 문제는 그야말로 악성이다. 간단히 셈을 해봤더니 어느새 7000조원에 육박한다. 2분기 말 가계부채 1860조원, 기업부채 2700조원, 8월 말 기준 중앙정부 부채 1110조원, 지방정부 부채 33조원, 지난해 말 기준 전세부채(보증금) 1060조원을 합친 것이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1968조원)의 3배가 넘는 규모로 국민 1인당 1억3000만원꼴이다. 외환위기 때는 중국이라는 거대 신흥시장이 회복의 발판 역할을 해줬지만 이제는 거꾸로다. 불황에 빠진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우리 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는 구조다. 모든 경제주체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마당에 투자와 소비가 살아날 리 없다. 부채로 쌓아올린 거품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유동성이 넘치던 시절, 자애롭고 시혜적인 정책이 남겨놓은 부실은 곳곳에 껌딱지처럼 덕지

    2023.10.15 18:03
  • [조일훈 칼럼] 그래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기사회생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피차간 혈전이 불가피하다. 이미 지난 1년5개월 동안 격렬하게 싸운 터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외교 안보 경제 역사관 등 모든 영역에서 지향점이 달랐기에 애당초 협치는 불가능했다.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를 반(反)자유·반문명·반시장으로 규정하고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원을 서둘렀다. 건국 정통성 부정, 친중·친북 외교, 재정 포퓰리즘, 입법권 남용, 구조개혁 회피, 반시장적 규제입법, 징벌적 세금 등 전체주의적 특질이 강했던 전 정부 유산들이 속속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회를 장악한 현실적 권력이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패를 거듭했음에도 막강한 입법권과 의결권을 앞세워 국정 발목을 잡았다. 국회 통과가 필요한 개혁법안은 입안 단계에서 대부분 좌초됐다. 시행령만으로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에 노동 교육 연금 세제 등 구조개혁 방안들은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뤄졌다. 민주당은 오히려 재정적 부담이 크고 충분히 논의가 이뤄지지도 않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에게 부담을 줬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세력 기반이 정치 팬덤과 노동조합, 좌파단체 등에 폭넓게 포진해 있고 결집력도 높다. 바늘 같은 빈틈을 찾아내 종국에는 둑을 무너뜨리는 ‘프레임 전쟁’에도 능하다. 윤 정부에 대한 여론의 인색한 평

    2023.09.27 16:59
  • [조일훈 칼럼] 꿈을 크게, 판을 넓게

    우리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나도 그런 편이다. 하지만 위기감에도 객관화가 필요하다. 주변국 사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만 특별히 어려운 게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는 거의 모든 산업국가가 당면한 문제다. 정도와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비가 충분하지 않기로는 피차 마찬가지다. 국가경쟁력도 상대적으로 봐야 한다. 우리에게 겹겹의 괴로운 사정이 있듯이 경쟁국인 일본 독일 중국 대만도 각자 ‘자신만의 지옥’에 시달리고 있다. 첨단 산업의 미국 공급망 기지로 떠오른 일본은 정작 반도체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메모리 패권을 한국에 넘겨준 이후 뿔뿔이 흩어진 기업과 기술자들을 다시 모으는 일이 쉬울 리 없다. 한번 망가진 생태계는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만약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5년을 현 정부가 뒤집지 않았더라면 한국의 원전 생태계도 궤멸했을 것이다. 언제 떠올려도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독일의 지옥도는 바로 탈원전에서 비롯됐다. 전력 공급이 부족한 가운데 러시아 가스 도입이 어려워지자 제조업 경쟁력이 순식간에 추락했다. 믿었던 중국 시장의 수요 둔화와 자동차산업 부진은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로 돌려놓을 분위기다. 대만도 탈원전에 따른 두 차례의 대정전 여파, 중국의 위협 등으로 반도체산업의 안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개방 이후 역대급 고난에 봉착한 곳은 중국이다. 회심의 반도체 굴기는 미국의 강력한 공급망 봉쇄로 좌초 직전이다. 화웨이 스마트폰에 장착된 7나노급 AP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기술적 한계를 드러냈다. 중국이 자체 기술로 한국 반도체를 추격하는 것은 사실상 무망해졌다. 이렇게 보면 애플 테

    2023.09.13 18:04
  • [조일훈 칼럼] 총리실 '의경 해프닝'…이대로 돌아서면 아무 일 없나

    한덕수 국무총리가 강력범죄 단속을 위한 의무경찰제 재도입을 거론했다가 슬그머니 접었다. 기왕 ‘의경 부활’ 카드를 꺼냈으면 제대로 논쟁을 벌여볼 만했는데, 병력 부족 문제를 들고나온 국방부 반대가 부담스러웠던지 맥없이 물러서버렸다. 실망스러운 후퇴다. 국가적으로 매년 줄어드는 청년 인력의 전략적 배치와 활용을 공론화할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총리실은 향후 치안 상황을 봐서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문제에 ‘나중에’라는 것은 없다. 청년 인구 격감을 동반하는 저출생은 치안과 안보 모두에 궤멸적 리스크를 몰고 오는 중이다. 2014년 38만 명에 달했던 만 20세 남성 인구는 올해 25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현재 군병력(48만 명)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치 아래다. 지난해 태어난 남아들이 20세가 되는 2042년엔 12만 명으로 격감한다. 병력 8000명을 의경으로 전환하는 데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국방부의 사정도 이해가 간다. 아무리 군사장비가 전자화·원격화되고 있다지만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선 병력 숫자가 중요하다. 더욱이 북한군은 100만 명이 넘는다. 지상군의 수적 가치는 지척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경찰도 젊은 인력들의 이탈과 미충원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경찰 인력은 13만 명대. 20~30대 직원은 5만 명대로 그중에 남자 비율이 70% 정도다. 이 남성들이 갈수록 귀해지고 있다. 일선 치안을 담당하는 지구대·파출소의 절반가량은 정원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박봉에 거친 업무가 많아 5년간 그만둔 하위직 경찰이 4000명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가운데 길거리 범죄, 대낮 칼부림, 묻지마 폭행

    2023.08.30 17:58
  • [조일훈 칼럼] 동북아 휘감는 거센 탁류…민주당은 어디에 서 있나

    2000년 6월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면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실토한 것은 한반도 지정학의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해방 이후 자유 대한민국이 미분단 유일체제로 중국, 소련과 국경을 맞댔더라면 어땠을까. 일단 지금처럼 미군이 한국에 주둔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총성 없는 열전 양상을 띠었지만 미국은 수세적, 소련은 팽창적이었다는 점이 달랐다. 미국이 1950년 1월 한국과 대만을 극동방어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을 내놓은 것도 소련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게다가 한국은 최악의 극빈국에 변변한 부존자원도 없었다. 미국은 설령 한국이 공산화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에 태평양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실제 트루먼 정부는 공산주의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안을 제법 오랫동안 핍박했다. 좌우 대립이 심한 만큼 정부 구성도 좌우합작이 현실적이라고 종용한 것이다. 6·25전쟁 발발은 그 비극성과 황폐함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을 발판으로 한반도의 새로운 세력균형, 자유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에 눈 뜬 미국의 전략적 선회와 어떤 일이 있어도 자유를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정부의 결연한 의지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김정일조차 이 동맹의 덕을 봤다. 이미 체제경쟁의 승패가 가려진 상황에서도 남북 병존이라는 현상 유지와 중국의 지배야욕 차단이라는 정권적 이익을 지속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라는

    2023.08.16 18:06
  • [조일훈 칼럼] 김은경 '노인 발언'에 담긴 끔찍한 맥락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발언은 노인폄하가 아니라 노인혐오에 가깝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민주당 지지율이 낮은 노년층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일상화된 탓일 게다. 놀라운 지점은 발언이 튀어나온 소위 ‘맥락’이다. 그는 지난달 말 청년 좌담회에서 아들이 중학생 시절 “왜 나이 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고 물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아들이 생각할 때는 평균 여명을 얼마라고 봤을 때 자기 나이부터 평균 여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좀 다듬어서 표현하면 젊은 세대에 더 많은 투표권을 부여해야 하며, 청년과 노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아직 생각이 영글지 못한 나이 탓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엉뚱하고 희한하다. ‘평소 자식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길래 이런 질문을 받았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학교나 학원에서 이런 종류의 정치 교육을 받았을 리도 없지 않은가. 그는 이어지는 설명에서 아들의 문제 제기가 타당하다는 생각도 감추지 않았다. “(아들의 말은) 되게 합리적이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이기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그게 참 맞는 말이에요.” 발언 직후 큰 논란이 일자 김 위원장은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발언의) 앞뒤를 자르고 맥락 연결을 이상하게 해 노인폄하인 것처럼 말하는데, 그럴 의사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본인도 곧 60세가 되는데 왜 노인을 폄하하겠느냐고도 했다. 그래서 혁신위가 공개한 발언 전문을 놓고 그 맥락이라는 것을 살펴봤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자녀 언급 대목의 메시지는 “노인 투표권을

    2023.08.02 18:00
  • [조일훈 칼럼] 대통령의 재정긴축 승부수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나눠 먹기 관행을 질타하며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은 지난달 28일. 정작 기획재정부 예산실을 패닉으로 몰고 간 것은 다른 사안이었다. “공무원 출장에 왜 식비를 지급해야 합니까”라는 대통령 질문이 날아든 것. 사무실에 있어도 밥은 제 돈으로 사 먹어야 하는데, 왜 출장 때만 별도로 밥값을 주느냐는 것이었다. 현재 공무원의 출장 식비(하루 세끼 기준)는 2만5000원. 대통령도 검사 시절 출장을 다녔을 텐데, 오랜 기간 관행으로 굳어져온 식비 지급을 몰랐을 리 없다. 공무원 보수 같은 경직성 예산은 줄이기 어렵다는 관료사회의 타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렇게 세세한 비목까지 들여다보며 지출의 적정성과 형평성을 따진 적이 없다. 게다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이날 대통령 발언의 정점은 올해 나랏빚을 늘리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하는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를 거절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올해 세입경정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세수가 모자라도 부채를 끌어와 결손분을 채우지 않겠다는 것. 이렇게 되면 모자란 세수만큼 지출을 줄이거나 다른 국고에서 돈을 끌어와야 한다. 올해 세수결손 전망치는 약 60조원. 전체 예산의 10%에 육박하는 큰돈이다. 추경호 부총리가 “강제 불용은 없다”고 하는 걸 보면 나름 복안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세출 삭감은 불가피하다. 용산 정무라인과 여당에선 걱정이 태산이다. 내년도 총

    2023.07.19 18:17
  • [조일훈 칼럼] 아이 안 낳을 자유와 국가의 생존

    올해 결혼 소식을 알리는 안내장이 부쩍 늘었다. 이른바 ‘보복 결혼’ 행렬이다. 하지만 지난해 24만9000명에 불과했던 출생아 수가 얼마나 반등할지는 잘 모르겠다. 한 해 50만 명 이상이 태어난 해는 2001년(55만7000명)이 마지막이었다. 벌써 20여 년 전의 까마득한 일이다. 연간 100만 명대가 태어난 1970년대 초 베이비붐 세대가 30년이 지나 낳은 아이들이 딱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 살배기 아이들이 30세가 돼 낳는 자녀는 몇 명이나 될까. 합계출산율 0.78명 수준이 유지된다면 10만 명 선에 턱걸이할지도 모른다. 저출산은 개인의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자생적 질서다. 국가적 단위에선 재앙이지만, 남녀 개인이나 개별 가정 단위에선 자유의지의 문제다. 주택비용과 사교육비 부담 운운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기대수명과 생애소득, 삶의 질에 대한 우선순위 변화 등에 비춰볼 때 아이를 낳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성가시다고 느끼는 것이 저출산 문제의 본질이다. 신체구조상 임신과 출산, 수유 부담을 홀로 안아야 하는 여성들에겐 특히 그렇다. 남녀 공동육아가 각 가정이나 직장에서 순조롭게 이뤄진다고 해도 이 문제만은 온전히 남는다. 자아실현과 안락한 삶의 욕구에 눈뜬 여성들은 생각 밖으로 예민하고 절박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언어능력과 전문성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취업할 수 있는 세상이다. 출산과 양육을 본인 행복의 걸림돌로 여기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체로 부합한다. 재정지출 확대와 출산율 증가의 인과관계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매년 적잖은 예산 편성에도 출산율은 계속 뒷걸음쳐왔다. 돈으로는 결

    2023.07.05 18:14
  • [조일훈 칼럼] 정년 연장 시대, 50대 직장인을 향한 경례

    최근 10년간 기업 조직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50대 직장인의 비약적인 증가세다. 인구 분포상으로 가장 많은 연령대이기도 하지만 지난 2016년부터 정년이 만 55세에서 60세로 늘어난 여파다. 어느 대기업 인사팀에 시기별·연령별·직군별 변화를 물어봤더니 생각보다 놀라운 수치가 나왔다. 2013년 대비 현재 50대 생산직 비중은 15%에서 25%로, 사무직은 3.5%에서 15%로 각각 늘었다. 사무직 비율이 유달리 치솟은 이유가 있다. 55세 정년 시대와 달리 중도 퇴사가 확연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더 늦기 전에 창업한다는 이유로, 아니면 후배 임원이나 부서장 밑에서 일하기 껄끄럽다며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50대 후반의 5년은 장년층에 대단히 중요한 시간이다. 대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결혼한 터라 자녀들이 학업을 수행 중이거나 혼사를 앞두고 있다. 은행 정도를 제외하고는 희망퇴직의 금전적 보상이 큰 것도 아니다. 기업 내 50대 비중은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고령화 구조에서 언제나 50대는 40대보다, 40대는 30대보다 많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그렇다. 반면 인구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년 연장은 시간 문제다. 더욱이 한국은 사실상 정리해고가 불가능한 노동·고용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사직을 권유하기도 어렵다. 50대는 이제 기업 인사정책의 상수(常數)로 부상하고 있다. 예전처럼 보조적 업무 배정이나 비핵심 분야 배치로는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없다. 신입사원 교육에 들이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떠올려보면 방치하기 아까운 인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기업들의 인사틀로는 50대 사무직을 제대로 포

    2023.06.19 18:19
  • [조일훈의 시선] 문재인, 장하준, 그리고 시장경제의 적들

    시장은 비인간적이고 차갑고 익명적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 물건을 만들거나 가게를 열었다는 이유로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가격, 품질, 디자인, 취향, 만족도를 철저히 따진다. 그런 연유로 시장 거래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자유로우며 지속 가능하다. ‘1원 1표’는 시장 거래와 자원 배분의 원리다. 시장에서 1원이라는 1표를 얻고 또 행사하기 위해 수요자와 공급자는 저마다 최적의 선택을 놓고 고심을 거듭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온전히 책임을 진다. 경쟁에 따른 격차는 불가피하다. 누군가는 ‘100원=100표’의 권한을 거머쥔다. 타인을 이롭게 할수록 더 많은 돈과 표를 얻을 수 있으므로 정의로운 거래다. 반면 ‘1인 1표’는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를 짜는 원리다. 표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시장과 달리 거래는 인간적이고 실명적이며 달콤한 언어로 포장된다. 개인 차원에서 정의로운 선택을 하더라도 표의 다수가 반대쪽으로 가면 온전히 그 영향을 받는다. 선택에 따른 자기책임은 표를 의미 없이 날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다수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본인 지갑을 내놓으라고 하는 지경에 이르면 ‘끔찍한 재앙’으로 변한다. 1인 1표 정치로 경제 지배?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쓴 라는 책이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읽고 SNS에 이런 글을 썼다. “1원 1표의 시장논리 함정에 빠지지 않고 1인 1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깨어 있는 주권자가 되기 위해 건강한 경제학 상식이 필요합니다.” 경제학을 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함께였다. 1원 1표로 작동하는 시장을 1인 1표의 정치로 갈아엎자는 주장과 다름없었다. 말이 너무 희한

    2023.06.07 17:35
  • [조일훈 칼럼] 10대 경제강국 좀먹는 악당들

    도둑들이 너무 많다. 대도(大盜) 전성시대다. 개발경제 시대의 신출귀몰, 조세형은 차라리 소박했다. 나랏돈, 회삿돈, 고객돈 가리지 않고 빼먹는다. 얼마 전 감사원에 적발된 시민단체들은 정부 보조금을 골프, 자녀 유학비, 가족·지인 월급으로 착복했다. 윤미향 횡령 건은 특출난 것도 아니었다. 돈에 환장하는 사회다. 회사원 횡령 사고는 금액이 너무 커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오스템임플란트에선 직원 한 명이 무려 2215억원을 빼돌렸다. 열받은 대주주는 회사를 팔아버렸다. 우리은행과 계양전기 직원도 수백억원대를 해먹었다. 꼬리가 길어 들킬 가능성이 높은데도 도망치지 않았다. 양심의 통각이 마비되면 나타나는 불감증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권력 주변 인사들의 결탁으로 의심받은 3종 사기 세트(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는 투자자들에게 무려 2조원이 넘는 피해를 줬다. 어찌 된 일인지 수사 부진과 재판 지연 등으로 아직도 사건 전모가 규명되지 않고 있다. 권력형 비리나 금융 범죄로 넘어가면 얼굴에 철판 까는 사람들을 본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당당함을 넘어 피해자 행세까지 한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난장은 절망적이다. 국회의원의 금융 거래와 투자가 그렇게 불투명하고 난잡할 수 있을까. 이런 인물이 어떻게 세상사에 호통치게 된 것일까. 속속 드러나는 거짓과 허물에도 검찰 수사의 희생양 행세를 하며 당당한 것일까. 희한하게도 주가조작범 라덕연에게 똑같은 방식의 질문이 가능하다. 무명이나 다름없는 투자자문업자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으며, 무엇을 믿고 체포 직전까지 ‘돈 먹은 사람이 범인’이라며 피해자 행세를 한 것일까. 그리고 이름만큼

    2023.05.24 17:47
  • [조일훈 칼럼] 반일도 친일도 아닌 용일(用日)의 시간

    “마음이 아프다(心が痛む思いだ)”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사과는 현시점에서 최대치였다고 본다. 이 표현을 일본어 용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죄악감이나 미안함 등으로 참을 수 없이 괴롭다’고 나온다. 일본어 전문가들은 ‘정치 여건상 정부 차원의 사죄를 하진 못하지만, 징용공들을 힘들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뉘앙스라고 한다. 이런 방식의 사과가 국민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른바 ‘진정한 사과’를 요구해온 사람들은 노골적 반감을 표시한다. 이 대목에서 곰곰이 생각해볼 것이 있다. 사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성의를 다한 것인데도 모자란다고 하면 더 굴욕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굴욕적 언사에는 ‘이만하면 됐다’는 기준과 경계가 없다. 어떤 표현을 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끝없이 꼬투리를 잡는다. 한국과 일본을 떼어놓는 것으로 이념적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종북좌파와 얼빠진 정치인들, 반일몰이를 이권화한 일부 단체가 대체로 그렇다. 한·일 관계 정상화 문제는 근원적이면서도 난해하다. 우리 국민은 대체로 일본을 대국으로 여기지 않는다. 겁내지도 않는다. 일본의 경제력이 여전히 압도적이고, 6개월 내 핵무장이 가능하며, 자위대 전력이 미국 중국 러시아 다음으로 막강해도 그렇다. 실력이나 우월감의 발로가 아니다. 일본은 영원히 죄인이고, 우리는 언제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채권자라는 의식 때문이다. 이런 일방성이 일본의 독도 언급과 역사 왜곡 문제로 복잡하게 뒤틀렸다. 그래서 옆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관계가 돼버렸다. 한·

    2023.05.10 18:11
  • [조일훈 칼럼] 대(對) 중국·일본 동시 무역적자 시대

    4월 대중 무역적자가 또다시 20억달러에 육박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단기적 우려에 앞서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 많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적자와 대중국 무역흑자 규모는 거의 같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된 대일 무역적자는 6934억달러.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대중 무역흑자 규모(6980억달러)와 맞먹는다. 역내 교역 구조로만 보면 절묘한 균형이다. 한국은 세계 2, 3위 경제 대국이 포진한 동북아시아 무역수지를 ‘제로’로 유지하면서 1위 국가 미국(누적 흑자 3591억달러)에서 안정적 흑자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포연 자욱한 수출 전선을 새까맣게 누비고 다닌 기업인들이 땀과 눈물로 일구고 다진, 너무나 성공적인 모델이다.중국 산업은 자본과 기술력을 결합한 한국의 중간재를 먹고 자랐다. 가장 혜택을 많이 본 업종 중 하나가 석유화학이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본격 성장기였다. 1990년 노태우 정부는 자유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석유제품 가격고시제를 폐지하고 전후방 산업 칸막이를 풀었다. 동시에 울산, 여수단지 외에 충남 대산단지를 추가로 조성했다. 여수에 대림산업, 롯데케미칼, 한양화학(현 한화솔루션)이 포진했고 울산에는 유공(현 SK이노베이션), 대한유화가 자리를 잡았다. 대산단지에는 삼성과 현대가 새로 터를 닦았다. 단기 과잉 투자와 공급 확대로 고전하던 국내 업계를 먹여 살린 것은 2000년대를 전후로 고성장 가도를 달리던 중국 시장이었다. 석유화학산업의 가장 기초적인 원료이자 제조업 육성에 필수 품목인 에틸렌의 중국 자급률은 20%에 불과했다.하지만 중국 산업의 성장은 역

    2023.04.23 18:07
  • [조일훈 칼럼] 도쿄 벚꽃놀이도 좋지만…(下)

    먹고살 만해지면 두 가지 마음이 고개를 든다. 더 잘살고 싶은 마음, 더 놀고 싶은 마음이다. 이율배반적이다. 얼마 전 모기업 창업 2세가 아버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요즘 직원들 출근이 너무 늦다. 휴가도 많이 가는 것 같고….” 2세는 무척 답답한 모양이다. 세상이 변했는데도 창업주 생각은 과거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한 것은 맞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 국민과 기업과 국가가 잘산다는 것이다. 우리가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시대로 가려면 1인당 8000달러씩 소득이 늘어나야 한다. 인구 5000만 명 기준으로 약 4000억달러, 500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국내총생산(GDP) 500조원은 어느 정도일까. 국민 소득은 기업 실적과 엄연히 구별되지만, 기업 규모와 경영지표에 빗대 대략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연간 50조원의 영업이익 창출과 30조원의 인건비를 지출하는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6개 이상 새로 생겨나야 한다. 그것도 삼성전자 이익이 국내에서 100% 만들어지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 정도의 국부를 새로 창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필자도 선뜻 가늠이 안 된다.하지만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넘어오는 과정은 훨씬 힘들고 고단했다.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사장들은 기저귀를 차고 들어갔다. 언제 끝날지 몰라 용변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10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가 다반사였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이라고 비판하기엔 너무나 절박하고 결사적이었다. 취재기자 시절, 이른 아침에 서울 계동의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집무실을 찾은 적이 있다. 오전 6시였는데도 결재받으려는

    2023.03.30 17:34
  • [조일훈 칼럼] 도쿄 벚꽃놀이도 좋지만…(上)

    벚꽃놀이가 절정이다. 윤달이 낀 탓인지 절기를 놓친 매화 산수유 개나리들이 두서없이 개화한다. 거리와 산야의 꽃구경 행렬로 주말 고속도로는 만원이다. 일본 관광 행렬도 북새통이다. 여행수지 적자가 매일 벚꽃처럼 흩날려도 멈출 줄 모른다. 일본이라면 바득바득 이를 가는 더불어민주당이 왜 논평 한번 내지 않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가계 기업 모두 긴축에 시달리는 고금리 고물가 시대에 원·엔 환율만은 무풍지대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선을 오르내리는 와중에도 100엔당 원화 환율은 1000원 선 아래를 맴돌고 있다. 양쪽 환율이 이 정도로 벌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일본이 국가부채 이자 부담으로 금리를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잠깐 찾아온 틈새를 노려 값싼 관광을 즐기는 것이 뭐 문제인가 싶다. 경기가 가라앉고 사업이 어려워도 이 정도 여유는 부릴 수 있다고 본다.놀 때 놀더라도 지금 같은 환율 구조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본 경제를 향해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우리 경제도 피크아웃 경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 나라의 경제적 규모와 능력을 구성하는 인구, 투자, 생산성, 혁신, 신기술 등 모든 면에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이런 종류의 정체와 하강에 어느 정도 적응한 상태다. 국민들도 그다지 조바심을 내지 않고 있다. 부침이야 있어도 1인당 국민소득이 31년 연속 3만달러를 넘긴 나라다. 한국은 다르다. 2017년 3만달러를 넘어선 이후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수출시장은 이미 피크를 친 느낌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휘발유를 수출하는 총력전을 펼쳐왔지만 선진국들의 보호주의와 신흥

    2023.03.2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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