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5G 서비스 전용 '급행차선' 필요하다
지난 4월 한국과 미국을 시작으로 5G(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의 닻이 올랐다. 5G를 이루는 주요 기술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요소 기술 중 하나인 네트워크 슬라이싱(network slicing) 기술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은 어떤 것인가. 전통적인 이동통신 시스템은 사람 간의 음성통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스마트폰 사용이 본격화된 3G, 4G 시대에는 데이터 통신이 주목적이 되면서 전화기보다는 컴퓨터의 성격을 띠게 됐다. 나아가 5G 시스템은 사람이 만드는 데이터뿐만 아니라 기계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도 서비스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5G는 자율주행, 스마트 공장, 원격 수술 등 이전보다 다양한 요구조건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다양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초광대역 서비스(eMBB), 고신뢰·초저지연 통신(URLLC), 대량 기기 통신(mMTC) 등 세 가지 성능 기준을 분류했다. 이를 하나의 모뎀으로 개발하는 대신 각각의 독립적인 통신 칩으로 개발하고 있다. 즉, 사용처가 다른 여러 종류의 기계가 각각 필요한 성능을 만족하는 모뎀을 선택해 용도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보다 더 향상된 초고화질 영상 통화나 증강현실(AR)·가상현실(VR)서비스 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초광대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칩(eMBB)이 필요하다. 원격진료나 수술, 스마트 공장 등에서는 초저지연 기능이 특화된 모뎀(URLLC)의 기능을 사용한다. 요즘 화두에 오르내리는 사물인터넷(IoT)서비스 등에는 초연결에 특화된 모뎀(mMTC)기술이 사용될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원격 수술을 안전하게 하려면 전송되는 영상의 질이 매우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시간 지연 문제도 거의 없어야 한다. 이 경우 기존 동영상 통화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성능이 보장돼야 한다. 일반 사용자들의 망을 함께 사용하면 필요로 하는 성능을 만족시킬 수 없어 수술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이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법이다.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은 하나의 네트워크를 여러 개의 가상화된 네트워크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상화된 여러 개의 독립된 네트워크를 통해 원격 수술,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장과 같은 서비스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

일각에선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을 망중립성 위반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국내에서는 망중립성을 법제화하고 있지 않지만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통신사가 불합리하게 트래픽을 구분하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른 목적과 성능을 요구하는 서비스들을 동일한 네트워크로만 구성해야 한다면 그 서비스들은 애초에 제공되기 어렵다.

자율주행차와 스마트폰에서 요구하는 품질의 안정성이 다른데, 이를 모두 같은 네트워크로만 구성해야 한다면 자율주행 서비스에서 요구하는 품질을 만족시킬 수 없다. 이 서비스를 사용할 소비자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몸의 혈액 순환계와 림프 순환계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이가 “혈액이 림프관을 통해서 흐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중립성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설득력이 있겠는가.

방송통신위원회 가이드라인은 2011년 4G 시스템에 맞춰 수립된 것이다. 5G 시스템이 도입된 현 시점에서는 망중립성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미국은 2018년에 망중립성을 공식적으로 폐기했고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망중립성을 유지하되 합리적인 관리는 허용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이런 추세에 맞춰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는다면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하고도 5G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