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현대重, 회사가 살아야 노조도 흥한다
노조란 무엇인가. 근로자 개인이 못하는 일을 사측을 상대로 하는 단체다. 단체로 교섭하고 협약을 맺는다. 때에 따라서는 파업도 한다. 노동3권은 법으로 보장돼 있다. 그게 노조의 권리이고 존재 이유다. 그런데 파업은 왜 할까. 사측과 협상이 원활하지 않을 때 선택할 것이다. 그래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지금 현대중공업은 파업으로 무얼 얻고자 하는 것일까. ‘회사 주인이 되겠다’는 건 아닐 것이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니까 말이다. 그럼 세상을 바꾸나. 민주노총은 창립선언문에서 침략 전쟁과 핵무기 종식, 세계 평화, 평화적 통일 등의 실현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근로자들의 관심은 본래 소박하다. 직장일을 하면서 잘먹고 잘사는 것이다. 노조는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좋게 해주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이런 환경은 회사가 만들어준다. 경영자의 책임과 의사결정은 그래서 중요하다. 경영자가 경영을 잘못하면 주주가 손해 본다. 종업원은 월급이 줄어들기도 하고 재수 없으면 실직에 내몰리기도 한다. 경영과 생산에서 노사는 각자 역할이 다르다. 싸우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힘을 모아야 하는 게 이치다. 한배를 탄 가족이라서 그렇다.

지금 우리 경제는 매우 어렵다. 장기불황의 긴 터널 속에 들어선 듯하다. 미·중 무역전쟁 등 외부 상황도 살얼음판이다. 당연히 기업들의 사정은 예전만 못하다. 사업장 폐쇄와 폐업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생계가 막연해져 종업원과 사장이 함께 우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일감이 줄어든 탓에 나이 든 근로자부터 차례로 해고하는 사업장도 부지기수다.

지난달 31일, 기업분할을 의결한 울산 현대중공업의 주주총회 현장은 놀라웠다. 노조가 주총 행사장을 며칠씩 점거했다. 법원이 이를 금지했어도 노조는 막무가내였다. 주주들을 태운 버스가 내달리고, 경찰들이 달리고, 오토바이 행렬이 뒤를 쫓는 장면은 말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사측은 장소를 옮겨서야 주총을 끝낼 수 있었다. 그날 노조원들은 경찰관을 폭행하고 기물까지 깨부수는 폭력성을 보였다.

도대체 사측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신의성실의 원칙을 저버렸나. 이번 결정의 핵심은 한물간 우리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다. 부실 기업들의 생존전략이다. 해외 경쟁업체에 밀리는 경쟁력을 복구하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낫다. 그래서 인수자가 됐다. 인수할 자금이 없는 게 딱할 뿐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이 진짜 문제다. 대우조선해양은 구제금융으로 연명하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형국이다. 돈을 빌려준 산업은행은 국민의 눈총이 따가울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13조원 가까이 쏟아부었으니 말이다. 주인 없는 회사의 경영이 제대로 될 리 있었을까.

그래서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머리를 맞대 방법을 찾았다. 현대중공업을 신설법인 두 개로 쪼개는 거다. 물적분할 말이다. 신설 중간지주회사 한국조선해양이 출범했다. 서울에 달랑 사무실 하나 두고 자회사 투자를 관리하는 지주회사가 아니다. 직원을 500명쯤 둘 예정이다. 지방에 있으면 연구원 채용이 힘들어서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은 신설법인으로 전환한다. 물론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를 인수한다. 인수합병(M&A)은 부실한 쪽의 부채와 자본을 함께 떠안는 방식이다. 그게 팔리는 쪽과 사는 쪽 간의 공정한 거래다.

대한민국 노조는 세계 최강이다. 파업도 자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 현대중공업 파업은 심했다. 법치와 공권력을 무력화시켰고, 시장경제의 근간인 경영권을 침해했다. 경영승계의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인수되는 쪽의 대표가 산업은행인데 설마 정부가 재벌을 챙겨줄까. 울산시장의 삭발도 무모했다. 불안해하는 시민들에게 진실을 얘기했어야 했다. 현대중공업은 지금처럼 울산이 본사라고 말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부끄러워하는 게 맞을 것이다. 국가에서 빌린 돈으로 월급을 받고 있었으니 국민에게는 감사하고 반성해야 한다.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게 성공해야 우리 조선업계가 산다. 잘못되면 모두가 어려워진다. 회사가 흥해야 노조도 흥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