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민노총 열차 올라탄 판교의 노조 새싹들
판교밸리의 성공한 기업인 중에 가끔 만나는 사람이 있다. 정치적으로 확실한 진보성향을 갖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의 열렬 지지자다. 그는 얼마 전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되느냐”는 어느 직원의 공개 질의를 받고 무척 난감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내가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고 전했다.

이 회사 직원들이 노조 설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올 들어 판교밸리에 노조가 속속 설립된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 4월 네이버를 시작으로 9월에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10월 카카오와 안랩에 잇따라 노조가 만들어졌다. 안랩(한국노총)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노총에 가입했다. 회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노조활동에 경험과 자신이 없는 젊은 직원들이 자진해서 갔다고 한다. 노련한 상급단체의 도움을 빌려 활동근거를 마련하고 연봉 인상과 휴식권 확대를 따내겠다는 노조 새싹들의 판단이다.

노동조합 설립에 쌍수를 들어 반기는 기업인은 없다. 정치적 성향 따위는 아무런 위로가 안 된다. 기업은 경제적 활동을 하는 조직이다. 반면 노조는 사회적 결사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 구성 원리와 운동 궤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노조가 사회적 결사체라는 말은 대중적 조직이라는 말과 동의어다. 노조는 대중의 정치참여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례해 몸집과 힘을 키운다. 정치인들이 대중을 정치무대에 불러들이는 공간을 기민하게 파고들면서 조합을 거대 전투조직으로 변화시킨다. 민노총이 촛불 시위의 최전선을 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노총은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 정책을 틈타 조합원 수를 급격히 늘려나가고 있다. 어느덧 1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100인 이상 사업장 전체 근로자(2016년 말 534만 명)의 20%에 가까운 규모다. 이들이 노사정 위원회 판을 깨고 고용시장 유연화를 위한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면서 온 나라가 기진맥진해 있다.

민노총 내 급진 좌파세력들은 자본가와 기업인들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혐오를 끊임없이 조장하고 획책한다. 그래서 이들의 요구와 관심사는 언제나 정치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사드 반대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민노총 홈페이지는 ‘원희룡 퇴진’ ‘이재용 구속’ ‘홍남기 반대’ 등의 구호들로 가득 차 있다.

폭력을 휘두르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회사 임원을 잔혹하게 두들겨 팬 것은 법치주의를 얼마나 우습게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감옥을 가더라도 인생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고서야 이런 난동을 부릴 리가 없다. 급진 좌파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악마화’를 통해 폭력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자본가들이 잘살고 노동자들이 못사는 이유는 자본가들이 노동자의 몫을 빼앗아가도록 법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선전한다. 그 결말은 약탈적이다. 민노총이 재벌 해체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기업과 연금의 현찰 금고를 공중으로 던지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극좌파들이 노리는 것은 단언컨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파괴다. 개별 사업장 근로자들의 권익은 오로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직력을 확보하는 선에서만 활용 가치가 있을 것이다. 판교의 노조 새싹들이 나중에 이런 상급단체를 통제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대중 조직인 노조에서 탈퇴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면 힘이 센 쪽이 이기게 돼 있다.

민노총은 한국의 모든 시민단체와 직능단체를 통틀어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자리잡고 있다. 군을 제외하곤 실질적으로 최강의 조직력과 전투력을 갖고 있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겁을 집어먹고 있다. 지난달 초 “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고 말하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조차 그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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