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경제협력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돼 제재가 풀려야만 남북한 간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가능하고, 그것은 어려움에 놓여 있는 한국 경제에 새 활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외교협회 연설에서는 “대북 제재가 해제된다면 한국은 북한의 경제 발전을 위해 선도적으로 힘쓸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시장이 우리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지적에 공감가는 측면이 있다. 경협은 북한을 개방으로 이끄는 촉진제가 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할 계기를 잡는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짚어봐야 할 것도 있다. 남북한 경협이 본격화될 경우 대한민국이 부담해야 할 인프라 지원 등 비용이 간단치 않다는 사실도 분명히 해야 한다. 4·27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나온 ‘판문점 선언’에는 철도·도로 연결 등 ‘2007년 10·4 선언 합의 사업의 적극 추진’이 들어 있다. 통일부는 10·4 선언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이행에만 14조3000억원이 든다고 추산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북한 인프라 투자 비용이 153조원, 미래에셋대우는 112조원이 소요된다고 추정했다.

막대한 자금 투입이 예상됨에도 정부와 여당은 국회 비준 동의를 강력 추진하고 있는 판문점 선언 이행비용에 대해 소요 재정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 경협은 대박” 식의 일방적 주장만 앞세워서는 곤란하다. 대북 투자에 나서는 기업들의 불안감을 말끔하게 씻어줄 필요도 있다. 김정은이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 전제조건이 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어려움에 놓여 있는 한국 경제’에 대한 원인 진단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들은 한결같이 호황을 누리는데 한국만 어려움에 빠진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해 냉철하고 겸손하며 솔직한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 기업들의 기를 꺾고 의욕을 잃게 하는 투자와 노동, 세제 등의 잘못된 정책으로 우리 경제만 나홀로 침체의 늪에 빠져든 것이라면 그 정책을 바로잡는 게 급선무다.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남북한 경협을 통해 활로를 찾겠다고 하는 구상은 이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