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7월3일 오후 3시40분

[마켓인사이트] "IFRS17 준비 기간 1년 더 달라"… '총대 메고' 요청한 한국 보험업계
국내 보험업계가 2021년 도입 예정인 국제 보험회계기준(IFRS17)의 준비 기간을 1년 연장해달라고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 공식 요청했다. 인력과 시간 등이 부족한 국내 중소형 보험회사가 2021년까지 정상적으로 IFRS17을 도입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3일 회계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국내 보험업계를 대표해 ‘IFRS17 도입 시 2020년 비교공시 회계를 제외해달라’는 서한을 IASB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교공시는 직전과 새로운 기준에 따른 회계처리를 모두 보여주는 것이다. 비교공시를 하지 않으면 2020년 회계자료를 IFRS17 기준에 맞춰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통해 IFRS17 도입 준비 기간을 2019년 말이 아니라 2020년 말까지로 1년 더 늘릴 수 있다.

IFRS17은 부채의 시가 평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국제 보험회계기준이다. 보험계약 건별로 수많은 가정을 전제해 현금흐름을 계산한다. 이를 회계에 반영하기 위해선 막대한 정보량을 처리할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수적이다.

이번 서한은 박정혁 삼성생명 회계정책파트장이 IASB에 건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파트장은 지난해 IASB가 IFRS17의 실무해석을 위해 구성한 15명의 세계 전문가 그룹(TRG: transitional resource group) 위원으로 선정됐다. 그는 한스 후고보스트 위원장 등 IASB 수뇌부와 상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 국내 보험업계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맡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서한은 △IFRS17 해석에 대한 합의 미이행 △국내 IFRS17 전문가 부족 △법과 제도를 정비할 시간 부족 등을 준비 기간 1년 연장이 필요한 이유로 들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IFRS9의 경우 도입 시점에 비교공시 예외를 인정해줬다”며 “서한에서도 이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요구는 IFRS17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먼저 준비에 들어간 대형사들이 인력을 선점해 중소형사가 인력난을 겪는 것과 관련이 깊다. 국내 보험사 중 대형사를 제외한 70%가량이 회계법인 컨설팅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보험업계 측 설명이다.

보험사별로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리는 ‘보험 계약의 경계’ 등 IFRS17 해석을 놓고 해소되지 못한 쟁점도 많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중소형사는 IFRS17 도입을 위한 시스템 도입을 내년 말까지 마무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IASB가 도입 시기에 대해선 원칙론을 고수해 비교공시 제외라는 새로운 카드를 제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보험사들도 총대를 멘 한국 보험업계의 요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네덜란드 등 유럽 보험사는 IFRS17의 2021년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계 보험사들도 도입 시기를 최소한 1년 늦추어야 한다는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보험업계가 이번 한국의 제안을 계기로 IFRS17 도입 시기를 놓고 공동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며 “2021년 도입을 강행하겠다는 IASB가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