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암보험에 가입한 암환자에게 요양병원 입원비를 지급하라고 보험회사에 권고하면서 보험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암보험 관련 보험금 청구 요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모습. /한경DB
금융감독원이 암보험에 가입한 암환자에게 요양병원 입원비를 지급하라고 보험회사에 권고하면서 보험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암보험 관련 보험금 청구 요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모습. /한경DB
금융감독원이 암환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경우에도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권고함으로써 보험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암보험 약관상 청구 대상이 아닌 암환자도 대거 보험금 청구에 나설 가능성이 있어서다. 금감원이 특히 계약인 ‘약관’보다 ‘금융 소비자 보호’를 우선시하면 다른 보험에서도 무리한 청구 및 분쟁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보험업계가 암보험이 ‘제2의 자살보험’이 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이유다. 금감원은 2년 전 소멸시효가 지나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보험회사를 압박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암 치료 직접적 목적’ 해석 논란

금감원 "암환자 요양병원 입원비도 줘라" vs 보험사 "판례에 어긋나"
현재 대부분의 암보험 약관은 ‘암의 치료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수술·입원·요양한 경우 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목적’을 놓고 가입자와 보험사가 다르게 해석해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요양병원에 입원한 뒤 다른 병원에서 항암 치료, 면역력 강화 치료 등을 받은 환자의 경우 ‘직접적인 암 치료’라고 보기 어렵다며 보험사가 입원비 지급을 거절하는 사례가 많았다.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보암모)은 “약관을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해석해야 하지만 보험사들이 그때그때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사는 요양병원 입원치료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금감원에 대한 국민검사를 청구했다.

금감원이 이번에 보험금 지급을 권고한 유형은 △말기암 환자의 입원 △항암 치료 기간 중 입원 △악성종양 절제 직후 입원 등 세 가지다. 금감원 관계자는 “암 입원 보험금과 관련한 민원 가운데 그동안의 판례와 자문위원들의 의견 등을 참고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되는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는 “금융 소비자 보호가 강화되는 추세여서 보험사는 좀 더 전향적으로 약관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면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민원 건을 처리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열리는 분쟁조정위에 해당 안건이 올라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국회 등에서 계속 시위하고 있는 ‘보암모’가 요구하는 안건을 우선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판례에 어긋나기도

보험업계는 말기암 환자 입원비는 지금도 대부분 지급하고 있지만 악성종양 절제 후나 항암 치료 중 입원비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세 가지 유형 가운데 일부는 법원 판례에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2006년 대법원은 자궁경부암 수술 직후 수술한 병원에선 퇴원하고 요양병원에 입원했지만 요양병원에서 별다른 직접적인 암 치료가 없었던 점 등을 이유로 들어 입원비 지급 요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2013년 유방암 환자가 수술한 병원에서 입원실이 없어 요양병원으로 옮긴 뒤 기존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은 건에 대해서도 요양병원 입원비를 지급할 사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런 판례에도 보험사들은 금감원 권고의 수용 여부를 놓고 내부 검토 중이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이들 유형에 속하는 민원을 추려 구체적으로 살펴본 뒤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지급하기로 하면 현재 보험금 지급 규정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특히 금감원의 ‘권고’가 사실상 ‘지침’이기 때문에 무시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한 보험사 임원은 “약관과 달리 금감원의 권고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면 보험사별로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을 더 지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정환/강경민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