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 뉴욕지점이 자금세탁 방지(AML) 등 준법감시(컴플라이언스) 시스템 미비로 미국 뉴욕 금융청(DFS)으로부터 과태료 1100만달러(약 119억원)를 부과받았다. 국내 은행이 미국 금융당국에서 대규모 벌금을 받은 건 처음이다.

농협은행은 21일 이사회를 열고 뉴욕지점이 뉴욕 DFS로부터 AML 시스템 미비로 부과받은 제재·개선조치에 대해 이행합의서를 내기로 했다. 농협은행이 뉴욕 DFS와 합의한 과태료는 약 1100만달러로 알려졌다. 이는 뉴욕지점의 지난 2년치 수익과 맞먹는다.

농협 측은 또 AML 전문인력 추가 채용 및 AML 시스템 구축 등에 나서기로 했다. 농협은행은 조만간 이를 발표하고 뉴욕 DFS도 관련 조치를 공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농협 뉴욕지점은 2013년 개설됐지만 지금까지 DFS가 요구하는 수준의 준법감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뉴욕 금융당국은 2015년과 2016년 연속해 감사를 벌였고 농협은행은 올해 초 AML 시스템을 갖추기로 뉴욕연방은행과 서면합의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해 이번에 거액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뉴욕 금융당국은 ‘9·11 테러 사태’ 이후 테러 및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뉴욕에 있는 각국 은행에 거래 때마다 고객 정보를 확인하고 정보기술(IT) 시스템 등을 통해 모든 거래를 분석해 수상한 거래가 있으면 신고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2014년 프랑스 BNP파리바가 이란·수단·쿠바 등과 거래했다가 적발돼 89억달러 벌금을 부과받는 등 관련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유럽, 일본, 중국 은행들은 2009년 이후 줄줄이 벌금을 맞아왔다. 지난 8월 파키스탄 하비브은행은 2억25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뒤 뉴욕지점 철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한국계 은행들은 2015년부터 집중 감사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는 다른 국내 은행이나 한국계 은행도 비슷한 이유로 뉴욕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신한아메리카는 AML법 위반 등으로 올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감사를 받았으며, 2012년 이란 자금 거래가 적발된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아직도 미국 법무부 조사를 받고 있다.

이현일 기자/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