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넘는데 5년…김인경 '긍정의 힘'으로 다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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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으로 생애 첫 '메이저 퀸' 등극
메이저 우승 놓친 후 입스·우울증…명상과 봉사활동으로 마음 다스려
올 3승으로 데뷔 10년 만에 '전성기'
ESPN, 비틀스팬 김인경 우승에 "부러진 날개가 나는 법을 배웠다"
메이저 우승 놓친 후 입스·우울증…명상과 봉사활동으로 마음 다스려
올 3승으로 데뷔 10년 만에 '전성기'
ESPN, 비틀스팬 김인경 우승에 "부러진 날개가 나는 법을 배웠다"
“20년 넘게 해온 골프가 요즘처럼 쉽게 느껴진 적이 없어요.”
7일(한국시간)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오픈(총상금 325만달러·약 36억6000만원) 최종라운드에서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거머쥔 김인경(29·한화)의 말이다. 대회 기간 내내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는 “누가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편하게 먹고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불운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그가 올 시즌 가장 먼저 3승 고지를 밟으며 투어 생활 10년 만에 뒤늦게 전성기를 열었다.
훌훌 털어버린 ‘30㎝의 악몽’
브리티시여자오픈 최종라운드가 열린 이날 영국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킹스반스골프링크스(파72·6697야드) 1번홀(파3)에서 김인경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티샷을 했다. 공은 177야드를 날아가 컵 바로 옆에 멈춰섰다. 1m도 안 되는 짧은 거리 퍼팅이었다. 김인경은 망설임 없이 버디에 성공하며 5년 전의 악몽을 떨쳐냈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인경의 첫 홀 버디는 이날 ‘버디 침묵’ 속에 단비와 같았다. 이날 1타를 줄인 김인경은 2타 차로 우승할 수 있었다.
김인경의 짧은 퍼팅이 눈길을 끈 이유는 2012년 열린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 때문이다. 그는 당시 마지막 홀에서 30㎝ 거리 퍼트를 놓쳐 연장에 나갔다가 결국 우승을 날렸다. 이후 김인경은 지독한 퍼트 입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골프 채널에서 반복해 방영하는 그 장면은 말 그대로 악몽이었다.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김인경의 우승 소식은 6년 동안 없었다.
그는 불교에 귀의했고, 한동안 채식주의자로 살기도 했다. 명상과 봉사활동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골프채도 놓지 않았다. 김인경은 이날 우승 직후 “실수 뒤 짧은 퍼트 연습을 많이 해 이젠 거의 놓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승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좋은 코스에서 즐겁게 대회를 치르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이번 우승은 마치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4년 만에 세계랭킹 톱10 진입
김인경은 지난해 10월 레인우드클래식에서 6년 만에 우승하며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올 시즌 숍라이트클래식, 마라톤클래식에 이어 브리티시오픈에서도 우승하며 5년 전 메이저대회 악몽까지 말끔히 씻었다. 그는 키 160㎝로 체구가 작고 비거리도 짧은 편이다. 대신 샷은 매우 정교하다. 탄도와 구질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여기에 흔들림 없는 ‘긍정 멘탈’을 장착하자 김인경의 독주 무대가 펼쳐졌다. 그는 올 시즌 가장 먼저 3승을 수확하며 ‘제2의 전성기’ 꽃을 피웠다. 통산 7승째다.
김인경은 이번 우승으로 시즌 상금 총액이 108만5893달러(약 12억2270만원)로 불어나 상금 랭킹도 4위로 올랐다. 시즌 상금이 100만달러를 넘긴 건 2013년 이후 4년 만이다. 세계랭킹도 수직 상승해 4년 만에 톱10에 진입했다. 이날 발표된 여자골프 세계랭킹에서 김인경은 12계단 뛰어오른 9위를 기록했다.
비틀스를 사랑하는 기부천사
김인경은 17세이던 2005년 강압적인 선후배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런 당찬 성격은 남을 도울 때도 같았다. 2006년 말 LPGA 퀄리파잉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한 뒤 우승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을 때도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지난 6월에는 숍라이트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상금 중 10만달러를 쾌척했다.
김인경은 골프 외에 다른 재주도 많다. 그림을 잘 그린다.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 그는 비틀스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혼자 배운 기타를 대회장에 들고 다니며 비틀스 노래를 연주한다. 모자에는 비틀스 로고가 새겨진 볼 마커가 꽂혀 있다. 그는 1968년 앨범 수록곡 ‘블랙버드’를 가장 좋아한다. 미국 스포츠전문 채널 ESPN은 이날 우승 소식을 전하며 이 노래 가사를 인용해 “김인경의 부러진 날개가 나는 법을 배웠다”며 “이제는 그가 자유로워질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LPGA 공식 홈페이지는 김인경이 우승한 대회장이 비틀스의 고향인 리버풀에서 차로 4시간 떨어진 곳이라며 “우승 없던 6년간 비틀스 노래 가사가 김인경에게 울림을 줬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7일(한국시간)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오픈(총상금 325만달러·약 36억6000만원) 최종라운드에서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거머쥔 김인경(29·한화)의 말이다. 대회 기간 내내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는 “누가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편하게 먹고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불운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그가 올 시즌 가장 먼저 3승 고지를 밟으며 투어 생활 10년 만에 뒤늦게 전성기를 열었다.
훌훌 털어버린 ‘30㎝의 악몽’
브리티시여자오픈 최종라운드가 열린 이날 영국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킹스반스골프링크스(파72·6697야드) 1번홀(파3)에서 김인경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티샷을 했다. 공은 177야드를 날아가 컵 바로 옆에 멈춰섰다. 1m도 안 되는 짧은 거리 퍼팅이었다. 김인경은 망설임 없이 버디에 성공하며 5년 전의 악몽을 떨쳐냈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인경의 첫 홀 버디는 이날 ‘버디 침묵’ 속에 단비와 같았다. 이날 1타를 줄인 김인경은 2타 차로 우승할 수 있었다.
김인경의 짧은 퍼팅이 눈길을 끈 이유는 2012년 열린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 때문이다. 그는 당시 마지막 홀에서 30㎝ 거리 퍼트를 놓쳐 연장에 나갔다가 결국 우승을 날렸다. 이후 김인경은 지독한 퍼트 입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골프 채널에서 반복해 방영하는 그 장면은 말 그대로 악몽이었다.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김인경의 우승 소식은 6년 동안 없었다.
그는 불교에 귀의했고, 한동안 채식주의자로 살기도 했다. 명상과 봉사활동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골프채도 놓지 않았다. 김인경은 이날 우승 직후 “실수 뒤 짧은 퍼트 연습을 많이 해 이젠 거의 놓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승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좋은 코스에서 즐겁게 대회를 치르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이번 우승은 마치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4년 만에 세계랭킹 톱10 진입
김인경은 지난해 10월 레인우드클래식에서 6년 만에 우승하며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올 시즌 숍라이트클래식, 마라톤클래식에 이어 브리티시오픈에서도 우승하며 5년 전 메이저대회 악몽까지 말끔히 씻었다. 그는 키 160㎝로 체구가 작고 비거리도 짧은 편이다. 대신 샷은 매우 정교하다. 탄도와 구질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여기에 흔들림 없는 ‘긍정 멘탈’을 장착하자 김인경의 독주 무대가 펼쳐졌다. 그는 올 시즌 가장 먼저 3승을 수확하며 ‘제2의 전성기’ 꽃을 피웠다. 통산 7승째다.
김인경은 이번 우승으로 시즌 상금 총액이 108만5893달러(약 12억2270만원)로 불어나 상금 랭킹도 4위로 올랐다. 시즌 상금이 100만달러를 넘긴 건 2013년 이후 4년 만이다. 세계랭킹도 수직 상승해 4년 만에 톱10에 진입했다. 이날 발표된 여자골프 세계랭킹에서 김인경은 12계단 뛰어오른 9위를 기록했다.
비틀스를 사랑하는 기부천사
김인경은 17세이던 2005년 강압적인 선후배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런 당찬 성격은 남을 도울 때도 같았다. 2006년 말 LPGA 퀄리파잉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한 뒤 우승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을 때도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지난 6월에는 숍라이트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상금 중 10만달러를 쾌척했다.
김인경은 골프 외에 다른 재주도 많다. 그림을 잘 그린다.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 그는 비틀스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혼자 배운 기타를 대회장에 들고 다니며 비틀스 노래를 연주한다. 모자에는 비틀스 로고가 새겨진 볼 마커가 꽂혀 있다. 그는 1968년 앨범 수록곡 ‘블랙버드’를 가장 좋아한다. 미국 스포츠전문 채널 ESPN은 이날 우승 소식을 전하며 이 노래 가사를 인용해 “김인경의 부러진 날개가 나는 법을 배웠다”며 “이제는 그가 자유로워질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LPGA 공식 홈페이지는 김인경이 우승한 대회장이 비틀스의 고향인 리버풀에서 차로 4시간 떨어진 곳이라며 “우승 없던 6년간 비틀스 노래 가사가 김인경에게 울림을 줬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