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삼성 재판, 누워서 침뱉기 되지 말아야
정치권 뇌물 수수는 건국 이래의 적폐다. 대통령 및 측근이 주역이다가 근래에는 국무총리도 가세했다. 노무현 정부 한명숙 전 총리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고 박근혜 정부 이완구 전 총리는 성완종 사건에 연루돼 1심 유죄, 2심 무죄로 판결이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불법 비자금을 몰래 넘긴 뇌물 중 극히 일부만 검찰 수사로 드러난다. 주고받는 현장이 몰래 촬영되거나 돈다발을 넣은 쇼핑백을 들고 있는 장면이 폐쇄회로TV(CCTV)에 찍히면 끝이다. 뇌물을 기록한 비밀장부 때문에 들통나는 드라마 장면은 현실에서는 드물고 대부분 뇌물 재판은 현장을 목격한 ‘증인의 입’에 의존한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승마선수 훈련비와 주무관청에 등록된 공익재단 출연금을 뇌물로 기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은 기존 프레임과는 완전 딴판이다. 회계부서에서 증빙을 일일이 챙겼고 구입한 말(馬)에 대한 소유권도 등록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공익재단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배분한 금액을 출연해 세법상 지정기부금으로 처리했고 돈은 은행계좌로 이체했다. 1000명이 넘는 삼성전자 재무부서 임직원이 함께 작성한 결산서는 감사위원회가 확인했고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의 적정의견 감사보고서와 함께 한국거래소뿐만 아니라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제출됐다. 완전히 투명한 회계기록은 뇌물죄를 인지하고 숨기려는 범의(犯意)가 없음을 웅변한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은 공익재단 내부자의 언론 제보로 알려졌다. 삼성의 경우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찬성을 얻어내려는 뇌물 성격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한국의 출자 규제는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만큼 복잡하다. 기업 합병 절차와 비율 산정에는 상법과 자본시장법뿐만 아니라 세법까지 끼어든다. 복잡한 규제를 박근혜 청와대가 뇌물로 연결시켰다는 것이 특검 시각이다. 면세점 특허 기간을 5년으로 줄인 19대 국회의 관세법 개정은 신규 사업자의 진입 통로를 넓히려는 선의였으나 특정 재단에 기업 출연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 ‘규제 단두대’를 들먹이며 호들갑 떨었지만 실은 ‘규제의 단물’을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규제 공화국’임을 자인하는 청와대 문건을 재판정에 계속 내놓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다.

아프리카 최빈국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한국의 투명성지수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회계 부정에 가담한 임직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감사위원회를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 정치권 압력을 차단하고 전문성 기준으로 감사위원을 선임했다면 대우조선 회계 부정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외부감사를 맡은 공인회계사 3인은 1심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지만 감사위원 책임은 은폐됐다. 공사비 추정치 조작을 통한 이익 부풀리기는 적발이 어렵지만 차입금 급증 상황에서의 성과급과 배당금 퍼주기는 기본적 회계 소양만 갖췄다면 막을 수 있었다. 회계 이해도가 낮은 사외이사를 골라 감사위원으로 추천한 효성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모두가 부결되는 난국에 봉착했다. 감사위원회 코마 상태를 4개월 넘게 방치한 가운데 반기실적을 발표했는데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어떤 검토 의견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감사위원회는 내부 통제 효율성과 회계 부정 발생 가능성을 엄중하게 감시해야 한다. 회계법인 선정과 감사인력 투입 시간도 직접 결정해야 한다. 국가권력이 부당하게 남용되면 내부 통제의 정상적 운영이 어렵다. 삼성전자 뇌물 혐의가 유죄로 확정될 경우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에 따른 거액의 벌금과 한국 투명성지수의 추가 하락을 막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과 함께 깨끗한 국가권력 행사를 통해 기업인 사기를 진작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한국에서 6조원의 조세공과를 납부한 재정기여 1등 기업이다. 금년 2분기 영업이익은 14조원으로 글로벌 제조업 중 1등이다. 자사주 매입 소각에 집중하는 방어적 자세를 버리고 청년 채용을 획기적으로 늘리도록 응원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뇌물 수렁’을 속히 극복하고 일자리 창출에서도 글로벌 1등으로 올라서길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