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신성인 한국PR기업협회장 "관계·소통의 근본은 진실성…애완동물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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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힐링비법
말 못하는 반려견과 소통하다보면 원하는 것
사려깊게 살피게 돼
홍보맨도 경청 능력 갖춰야 상대방 요청 정확히 파악
말 못하는 반려견과 소통하다보면 원하는 것
사려깊게 살피게 돼
홍보맨도 경청 능력 갖춰야 상대방 요청 정확히 파악
신성인 한국PR기업협회장(KPR 대표·63·사진)은 매주 일요일 아침 애완견과 집 근처 우면산에 오른다. 밤낮없이 반겨주고 조건 없는 사랑을 보이는 몰티즈 두 마리는 그에게 큰 위안이 되곤 한다.
신 회장의 애완견 사랑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아버지가 진도에서 가져온 진돗개는 어린 그에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였다. 신 회장은 “실내에서 함께 지내는 애완견 대접을 받지 못한 ‘마당개’였지만, 나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존재에서 평온을 느꼈다”며 “아버지가 바쁜 일정으로 귀가가 늦을 때가 많았지만 강아지의 애교가 가정의 화목에 큰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신 회장은 애완견과 소통하는 것이 홍보 역량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말 못하는 반려동물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면 애완견이 불편한 곳과 원하는 것에 대해 사려 깊게 살피게 된다”며 “상대방의 요청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경청하는 능력은 기업 홍보맨들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PR전문회사 KPR을 1996년부터 21년째 이끌고 있다. 국내 주요 PR회사들로 구성된 한국PR기업협회 회장직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임하고 있다. 신 대표는 건설맨 출신이다.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해 해외에서 근무했다. 말레이시아의 ‘아세안 빈툴루 비료공장’ 설립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대관업무와 입찰, 하도급 계약 등을 맡아 현지인 엔지니어 채용부터 미디어 응대, 국내 근로자 투입 관련 인허가를 따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그가 PR 분야로 직업을 옮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딸이 뱃속에 있을 때 해외 부임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며 “귀국하고 다시금 해외로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자 PR업계로 발을 돌렸다”고 말했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는 “1999년 정보기술(IT) 벤처 붐이 일면서 당시 20여명의 직원 가운데 8명이 스톡옵션 제의를 받고 비슷한 시기에 빠져나갔다”며 “인재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 당시 처음으로 포상휴가 제도를 마련하고 직원복지 제도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기업 홍보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공헌할 때 의미가 있다”며 “회사가 창사 이래 담배·도박·고리대금업의 홍보를 하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지난해 뉴스컴 사태 등으로 PR업계가 홍역을 치렀지만, PR산업 자체는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며 “KPR은 작년에도 두 자릿수 성장을 했다”고 밝혔다.
홍보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노력을 다하고 있다. 신 회장은 “홍보산업이 지속해서 발전하려면 젊은 인재들을 발굴하고 키워내야 한다”며 “2004년 시작한 ‘KPR 대학생 PR 공모전’을 14년 연속 여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신 회장의 애완견 사랑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아버지가 진도에서 가져온 진돗개는 어린 그에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였다. 신 회장은 “실내에서 함께 지내는 애완견 대접을 받지 못한 ‘마당개’였지만, 나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존재에서 평온을 느꼈다”며 “아버지가 바쁜 일정으로 귀가가 늦을 때가 많았지만 강아지의 애교가 가정의 화목에 큰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신 회장은 애완견과 소통하는 것이 홍보 역량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말 못하는 반려동물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면 애완견이 불편한 곳과 원하는 것에 대해 사려 깊게 살피게 된다”며 “상대방의 요청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경청하는 능력은 기업 홍보맨들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PR전문회사 KPR을 1996년부터 21년째 이끌고 있다. 국내 주요 PR회사들로 구성된 한국PR기업협회 회장직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임하고 있다. 신 대표는 건설맨 출신이다.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해 해외에서 근무했다. 말레이시아의 ‘아세안 빈툴루 비료공장’ 설립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대관업무와 입찰, 하도급 계약 등을 맡아 현지인 엔지니어 채용부터 미디어 응대, 국내 근로자 투입 관련 인허가를 따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그가 PR 분야로 직업을 옮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딸이 뱃속에 있을 때 해외 부임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며 “귀국하고 다시금 해외로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자 PR업계로 발을 돌렸다”고 말했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는 “1999년 정보기술(IT) 벤처 붐이 일면서 당시 20여명의 직원 가운데 8명이 스톡옵션 제의를 받고 비슷한 시기에 빠져나갔다”며 “인재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 당시 처음으로 포상휴가 제도를 마련하고 직원복지 제도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기업 홍보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공헌할 때 의미가 있다”며 “회사가 창사 이래 담배·도박·고리대금업의 홍보를 하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지난해 뉴스컴 사태 등으로 PR업계가 홍역을 치렀지만, PR산업 자체는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며 “KPR은 작년에도 두 자릿수 성장을 했다”고 밝혔다.
홍보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노력을 다하고 있다. 신 회장은 “홍보산업이 지속해서 발전하려면 젊은 인재들을 발굴하고 키워내야 한다”며 “2004년 시작한 ‘KPR 대학생 PR 공모전’을 14년 연속 여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