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정보원, 권역 통합 빅데이터 제공…개인정보 침해 우려 여전

한국신용정보원이 15일 신용정보 빅데이터를 토대로 업무 권역의 장벽을 허문 다양한 융합 분석 정보를 발표한 것은 금융 빅데이터 산업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용정보원이 축적한 막대한 신용정보 자료는 금융회사가 신용평가모형을 정교하게 짜거나 소비자 입맛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짜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누구의 정보인지 알아볼 수 없게 처리한 비식별화 정보도 처리 방법이나 수준에 따라 누구의 정보인지를 다시 알아낼 수 있어 개인정보 침해 우려는 여전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

◇ 빅데이터, 4차 산업혁명 이끌 '원유' 기대

'21세기의 원유(原油)'라고도 불리는 빅데이터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 신산업으로 거론된다.

그동안 관련 업계에서는 개인신용정보의 정의가 모호하고, 비식별 조치에 관한 기준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아 개인신용정보에 기반을 둔 빅데이터 활용에 어려움이 많다고 불만을 제기해왔다.

당사자가 일일이 개인정보 분석과 제3자 제공에 대해 동의를 해줘야 해서 절차가 복잡하고 관련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국, 영국 등 빅데이터 선진국에서는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가공한 정보를 각각 비식별 정보나 익명 정보로 정의해 자유로운 활용을 보장하는데, 한국은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빅데이터 분야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정부는 지난 7월 개인정보를 비식별화한 뒤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과 '개인정보보호법령 통합해설서'를 발표했다.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처리한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판정해 활용할 수 있도록 유권해석을 명확히 내린 것이다.

빅데이터 활성화의 혜택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업종으로는 금융업이 최우선으로 꼽혀왔다.

신용정보 빅데이터는 신용평가모델을 정교화하는 데 쓰여 금융중개 기능의 효율성을 높이고,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해 금융산업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 신용정보원, 융합 빅데이터로 첫 연구결과 산출

금융당국과 금융권에서는 비식별 가이드라인 제정을 전후해 신용정보 빅데이터 관리를 총괄할 기구를 준비해왔다.

개인신용정보를 집중해 관리하고 비식별화 작업을 진행할 신용정보집중기관으로 한국신용정보원이 올해 초 출범했다.

신용정보원은 은행연합회·여신금융협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금융투자협회·보험개발원 등 여섯 개 기관에 흩어져 보관되던 신용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비식별화 조치와 같은 민감한 작업을 개별 금융사에 맡기는 것에는 위험 부담과 신뢰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신용정보원은 지난 2월 금융업계와 연 간담회에서 빅데이터 활성화 1단계 방안으로 현재 보유한 신용정보를 금융사들이 활용할 수 있게 표준화해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용정보원이 보유한 일반 신용정보 3억9천만 건과 보험신용정보 3억6천만 건의 빅데이터를 표준화하면 각종 신용정보 변수가 연체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통계분석을 통해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이번에 신용정보원이 발표한 각종 연구분석 자료는 이런 통계분석에 기반을 둔 결과다.

특히 이번 분석에 포함된 보험가입 건수와 대출 연체율의 상관관계 등의 분석은 가이드라인 제정에 따른 비식별 정보 빅데이터 분석에 따라 가능했다.

◇ 카드사, 빅데이터 마케팅 활용에 최우선 관심

신용정보원의 분석 자료 발표로 빅데이터의 금융권 활용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별 기업이 보유한 비식별 빅데이터 정보 가공·활용은 현재도 가능하지만, 은행·카드·보험 등 업권별로 분리된 정보가 아닌 업권 간에 결합한 정보가 있어야만 실효성 있는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례로 A씨와 관련해 카드사가 보유한 결제 정보와 은행이 보유한 소득·대출 정보를 신용정보원이 묶은 뒤 A씨의 정보임을 알아볼 수 없게 재가공해 금융회사에 빅데이터로 활용토록 하는 방안이다.

금융사들은 빅데이터 관련 조직을 신설해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는 카드업계다.

일부 카드사는 빅데이터를 마케팅에 활용하고자 금융업계를 넘어 이동통신사와의 제휴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사들도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 제정 이후 많은 관심을 가지는 모습"이라며 "다만 빅데이터를 실제 사업에 적용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개인정보침해 논란은 여전…인권위 "활용요건 제한해야"

비식별화한 빅데이터 활용이 본격화할수록 개인정보 침해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안전장치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빗장을 섣불리 풀면 개인정보 침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개인정보는 개인의 권리가 아닌 것으로 판정하기 때문에 당사자 의사와는 관계없이 활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내 데이터를 수익화에 쓴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다.

아무리 철저하게 비식별화 조치를 하더라도 업무 권역 간 정보가 상호결합되다보면 정보이용자가 누구의 정보인지를 다시 구분해내는 것(재식별화)을 완전히 막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7일 "비식별 조처를 해도 그 방법이나 수준에 따라 특정 개인을 재식별할 위험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 정보 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제거되기는 어렵다"며 금융위원장에게 비식별 정보를 목적 외로 이용하거나 제공할 수 있는 요건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익명화한 정보라도 다른 정보와의 결합을 통해 누구의 정보인지를 다시 가려낼 가능성이 여전히 남으므로 정보 이용 허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의 목적이 재식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데 있는 만큼 이런 논란이 불식됐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빅데이터 분석결과 발표회 모두발언에서 "빅데이터 분석과 활용의 시작부터 마지막단계까지, 개인신용정보의 안전한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며 "빅데이터 분석 때 관련 법령과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