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7월30일 당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세일즈맨이던 윤석금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긴급 뉴스를 들었다. 대입 본고사가 폐지되고 졸업정원제가 시행되며 당장 다음날인 7월31일부터 과외가 전면 금지된다는 소위 ‘7·30조치’였다. 그는 다음날부터 교육청마다 전화를 돌렸다. “과외가 금지되면 과외 선생들 목소리도 금지입니까?” 어느 교육청도 확답은 못 했지만, 결국 ‘금지는 아닐 것’이란 유권해석을 얻었다. 밥벌이가 없어진 전국의 유명강사들을 모아 강의 테이프를 제작했다. 웅진출판(현 웅진씽크빅)과 고교생을 위한 학습지 ‘헤임인터내셔널’은 그렇게 탄생했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거치며 그룹 규모가 줄어든 웅진이 윤석금 회장의 혁신적 아이디어로 출판사업에서 재기의 나래를 펴고 있다는 한경 보도(2월3일자 A1, 4면)는 정말 반갑다. 태블릿PC로 보고싶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동화책과 전집, 백과사전 등 7000여권의 책을 전자책 형태로 제작했다. 학부모 부담을 줄이기 위해 렌털(대여) 방식도 도입했다. 한 달에 5만~10만원 정도 회비를 내는 북클럽 회원이 작년 말로 10만명을 넘었다.

윤 회장이 재기하는 데는 그가 불구속 재판을 받았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수사과정에서 개인비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재판부는 윤 회장이 사업으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윤 회장도 “감옥에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고 사업을 다시 일으켜 명예를 되찾겠다는 의지는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자신의 핵심역량에서 재기의 활로를 찾았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늘 “나는 책장수”라고 외치던 그다. 여기다 웅진코웨이 성공신화의 바탕이 된 ‘렌털’ 방식을 다시 채용한 것도 적중했다. 전문 분야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 1945년 충남 공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윤 회장이야말로 ‘흙수저’다. 30대 그룹을 일궜다가 쓰러졌지만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해보지도 않고 자포자기하는 세태에 그의 재기는 우리 모두에게 잔잔한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