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향후 사업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향후 사업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신시컴퍼니는 ‘기념 공연 전문 제작사’로 불릴 만큼 ‘기념 연극’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올해 연출 데뷔 60주년을 맞은 임영웅 선생님을 통해 연극정신을 깨우쳤습니다. 올해 51주년을 맞은 손숙 배우의 60주년 기념 무대도 제가 마련해 드려야겠죠. 하하.”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연극 ‘가을 소나타’ 기자간담회 현장.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51)의 제작 소감에서 은근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에게 따라붙는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프로듀서’가 아닌 ‘좋은 연극’을 많이 내놓은 제작자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박 대표는 1982년 극단 동인극장에 입단하면서 무대와 인연을 맺었다. 1999년 극단 신시 대표를 맡아 이름을 신시뮤지컬컴퍼니로 바꾸고 법인화한 뒤 뮤지컬에 주력해 ‘맘마미아’ ‘시카고’ ‘아이다’ 등으로 잇단 ‘흥행 신화’를 만들어냈다.

박명성 대표, '맘마미아' '아이다'로 대박 났지만 제 몸 속엔 연극인의 피가 흐르죠
“전 ‘뼛속까지 연극인’이에요. 뮤지컬을 해서 성공하고 돈을 벌어도 가슴 한쪽으로 뭔가 허망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었어요. 연극계에 뭔가 해야 하고 보탬이 될 일이 있는데 안 하고 있는 것 같은 죄짓는 느낌도 들어 연극을 다시 시작했죠.”

2008년 6월 고 차범석 선생 추모 2주기 기념 공연 ‘침향’을 제작한 것을 계기로 연극에 다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9년 사명을 신시컴퍼니로 바꾼 이후부터 뮤지컬과 연극을 거의 동수로 제작하고 있다. 올해는 ‘레드’ ‘푸르른 날에’ ‘엄마를 부탁해’ ‘가을 소나타’ 등 연극 4편, ‘고스트’ ‘시카고’ ‘원스’ 등 뮤지컬 3편으로 연극이 한 편 더 많다.

‘한국 연극계 대부’ 임영웅의 연출 60주년 기념 무대로 올리는 연극 ‘가을 소나타’는 박 대표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2009년 12월 손숙, 추상미 주연으로 초연한 ‘가을 소나타’는 그가 연극을 다시 제작한 이후 처음으로 얼마되지 않지만 수익을 안겨준 공연이다.

“그 이전 작품들도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흥행에선 재미를 보지 못했어요. ‘가을 소나타’ 이후 연극들은 흥행에도 거의 성공했죠. 연극계와 관객에게 ‘신시 연극’은 믿고 봐도 된다는 신뢰가 정착된 전환점이 된 게 이 작품입니다.”

스웨덴 거장 잉마르 베리만이 대본을 쓰고, 영화로도 만든 ‘가을 소나타’는 박 대표가 추구하는 연극 세계와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극장이 아닌 중·대극장에서 무대 메커니즘을 살린 격조 있고 감동적인 고급 연극으로 중장년층 이상, 중산층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여 연극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이자 목표입니다. 대형 뮤지컬을 만들어온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순수 기초 예술인 연극과 상업 예술인 뮤지컬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건강한 공연 문화와 환경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

박 대표는 제작자로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신뢰’를 든다. 오는 12월 초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할 뮤지컬 ‘원스’의 국내 라이선스 판권이 신시컴퍼니에 돌아온 것도 그가 그동안 쌓아올린 신뢰 덕분이다. 아일랜드 동명 영화를 무대화한 이 작품은 2012년 토니상 8개 부문을 휩쓴 화제작이다. 국내 많은 제작자들이 달라붙어 판권 경쟁을 벌였다.

“경쟁해봐야 로열티만 올라갈 것 같아 저는 뛰어들지 않았는데 ‘원스’ 저작권사 쪽에서 먼저 ‘신시는 관심이 없느냐’는 메일이 왔어요. ‘원스’는 연극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인데 신시가 연극도 제작하고, ‘맘마미아’ ‘시카고’ ‘아이다’ 등을 잘 만들어 지속적으로 올린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나봐요. 당연히 ‘관심 있다’고 했고 1주일 만에 합의가 이뤄졌죠.”

‘원스’는 배우 14명이 노래와 춤·연기뿐 아니라 악기 연주까지 직접 하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다. 오케스트라가 따로 없다. 한국 배우들이 잘 해낼 수 있을까.

“막이 오르면 아마 ‘한국 배우들이 이렇게 재주가 많은가’하는 감탄이 쏟아질 거예요. 내년 하반기에 ‘원스’ 투어 공연을 국내에 들여와 관객에게 한국어 공연과 영어 공연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해요. 그만큼 우리 배우들의 이번 한국어 공연이 오리지널 못지않은 작품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내년은 박 대표에게 ‘새로운 도전’의 해다. 조정래의 대하 소설 ‘아리랑’을 대형 창작 뮤지컬로 만들어 내년 7월 국립극장에서 공연하고, 신경숙의 소설 ‘리진’을 대극장 연극으로 제작해 내년 하반기 상연할 예정이다. 내년 7월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폐회식 총감독도 맡는다. 공연계 초미의 관심작인 ‘아리랑’은 연극 ‘푸르른 날에’에서 함께 작업한 연출가 고선웅이 대본·연출을 맡는다.

“대형 창작 뮤지컬과 대극장 연극을 한 해에 동시에 올리는 것은 제작자로서 큰 모험입니다. 2~3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왔어요. 제 무대 인생 30여년의 모든 노하우를 쏟아부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정점을 찍을 작품을 선보인다는 각오입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