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이 낫다"…사장서 부사장 변신, 현장 누벼
길어진 수명으로 인해 ‘환갑’을 넘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회사의 사장을 8년간이나 맡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동종 업계에서 부사장으로 직위를 낮춰 영업본부장으로 새 출발 하는 것은 흔치 않다. 박동훈 르노삼성자동차 부사장 얘기다.

1952년생으로 61세인 박 부사장은 지난 9월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에서 르노삼성 부사장으로 깜짝 이직했다. 그는 폭스바겐이 한국에 진출한 2005년부터 사장을 맡아 수입차 최강 브랜드 중 하나로 키운 주인공이다. 수입차 업계를 이끌어온 1세대 최고경영자(CEO)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수입자동차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조카로 조양호 회장과 사촌간이다.

박 부사장은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정말 후회는 없다”며 “다시 어려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또 “그동안 직원들에게 편한 길과 어려운 길이 있다면 어려운 길을 가는 게 낫다고 했는데 스스로 편한 길만 찾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박 부사장의 이런 전격 변신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아우디폭스바겐 본사에서 한국법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입지가 좁아진 데다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삼성 사장과의 오랜 친분이 그가 결심하는 데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새롭게 도전한 이유야 어떻든, 지금 박 부사장 앞에 놓인 길은 결코 평탄치 않다. 르노삼성은 얼마 전까지 완성차 판매 부문에서 쌍용자동차에 밀려 꼴찌로 주저앉았을 만큼 위기였다. 그는 르노삼성으로 옮긴 뒤 영업상황을 진단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박 부사장은 “먼저 눈에 띈 게 르노삼성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12년 연속 고객만족도 1위에 올랐다는 점이었다”며 “품질이 뒷받침되는 만큼 도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기더라”고 했다. 그는 곧바로 파격적인 조건의 판촉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SM5와 SM7 신차를 구입한 뒤 한 달간 타보고 만족하지 못하면, 사고가 없고 주행거리가 2000㎞ 이내인 경우 구입비 전액(등록비는 제외)을 돌려준다는 ‘자신만만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그가 영업을 맡은 첫 달인 9월에 르노삼성은 쌍용차를 제치고 다시 4위로 올라섰다. 그동안 부진하던 SM7 판매가 증가세로 돌아선 게 무엇보다 반갑다고 했다.

박 부사장 앞에는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르노삼성의 완전한 부활을 위해선 최근 내놓은 순수 전기차 ‘SM3 Z.E.’와 이달 말 출시하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3’ 판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을 빌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며 “서두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자동차 업계가 박 부사장의 새로운 도전을 주목하고 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