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수출로 큰다…FTA는 기업 성장 '과외 선생님'
한국은 지난해 수출 5565억달러로 세계 7위의 수출 대국이 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도 50%를 넘는다. 이런 수치는 한국 경제가 전형적인 수출주도형 구조라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수출기업들이 한국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해 왔음을 짐작케 한다.

일반적으로 수출기업은 비(非)수출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이 상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의 정보를 수집하고 유통망을 구축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수출기업의 사례를 관찰해 보면 경쟁력 있는 기업이 수출을 하는 게 아니라, 수출을 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해주는 개념이 ‘수출을 통한 학습(learning by exporting)’이다. 수출을 통한 학습은 기업이 국제 경쟁에 노출되면서 선진 기술과 지식을 습득,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최근 연구에서는 기업이 수출을 시도할 때 직면하는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한국 수출기업의 평균 총요소생산성은 2000년대 초반 비수출기업보다 낮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는 비수출기업을 앞질렀다. 2009년 비수출기업의 총요소생산성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수출기업의 총요소생산성은 114에 달했다.

수출을 통한 학습의 효과는 기업이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개별 기업의 흡수 능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개별 기업의 흡수 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연구·개발(R&D) 투자다.

한국신용평가정보가 제공하는 9166개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매출 대비 R&D 투자비가 높은 상위 25% 기업들은 수출을 통해 총요소생산성이 25.3% 증가했다.

반면 R&D 투자 비중이 낮은 하위 25% 기업들은 수출을 통한 생산성 증대 효과가 거의 없었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R&D 투자를 통해 지식을 흡수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기업의 R&D 투자를 장려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이 세계 각국과 전방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도 수출을 통한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그중에서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의 FTA는 한국의 수출기업에 좋은 학습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선진국 시장은 주요 글로벌 기업의 근거지일 뿐만 아니라 품질 표준, 안전 표준 등에서 개발도상국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이런 어려운 조건을 뚫고 수출에 성공한 기업은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캐나다의 사례도 FTA가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대니얼 트레플러 토론토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NAFTA 발효 직후에는 생산성이 낮은 캐나다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고전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캐나다 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됐다. FTA를 선진국 수출시장을 확대하는 동시에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는 능동적인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영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h74.kang@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