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위기·조기상환법에 헝가리 `정크' 위험

중·동유럽 국가들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금융 위기의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은행산업에서 서유럽계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가운데 자본확충을 요구받은 서유럽계은행들이 동유럽 자회사들에 대한 자금줄을 조이면 신용경색 악화를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다.

또 지난 2분기부터 시작된 유로존의 경기 둔화가 유로존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구조를 지닌 중·동유럽의 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헝가리는 이런 요인에다가 외화대출 조기상환법이 가세해 대외 신인도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3년 만기 헝가리 국채 금리는 지난 15일(현지시간) 8.35%를 기록, 지난 2009년 8월 이래 최고치로 올라섰다.

헝가리 포린트화 가치는 지난 14일 유로화에 대해 317포린트까지 치솟았다.

이는 헝가리가 세계 금융위기 와중인 2008년 초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직전 수준이다.

금리, 환율 급등은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헝가리 국가신용등급을 `정크본드(투기등급)'로 강등할 가능성을 시사한 게 직접적 배경이 됐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피치 등은 지난 11일 "예측 불가한 정책들"을 이유로 헝가리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려놓았다.

현재 헝가리 신용등급은 투기등급의 맨 마지막인 `BBB-'다.

신평사들은 헝가리 정부가 도입한 외화대출 조기상환이 투자환경을 저해하고 대외신인도를 해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헝가리 정부는 스위스 프랑화, 유로화 등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에 고정환율로 조기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 지난달 중순 시행했다.

이 법에 따르면 스위스 프랑화 대출은 1스위스프랑당 180포린트, 유로화 대출은 1유로당 250포린트 등의 고정환율로 대출잔액을 올 연말까지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법 시행 직전일 포린트-스위스 프랑, 포린트-유로 환율은 각각 242포린트, 291포린트였다.

실제 환율과 고정 환율 차이는 고스란히 은행 손실이 된다.

이 때문에 헝가리 은행권이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한 초법적 정책"이라며 강력 항의했으나 정부는 원안대로 강행했다.

유로존 재정 위기가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에 은행권에서 "외국계 은행을 적대시하는" 정책이라고 비난한 정부의 입법이 가세한 양상이다.

물론 헝가리 뿐만이 아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최근 중·동유럽 국가 중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등이 유로존의 혼란에 가장 취약하다고 판단했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폴란드 등도 유로존 위기의 영향권에 있다고 EBRD는 덧붙였다.

서유럽 등 유로존 주요국의 경기 침체가 중·동유럽의 실물경기, 재정 적자 감축, 신용경색 등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EBRD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EBRD는 중·동유럽에 자회사를 둔 서유럽 은행들과 전이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EBRD는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인 2008년 서유럽 은행들과 이른바 `빈 이니셔티브'에 합의한 바 있다.

이는 서유럽 모은행들이 신용경색에 빠진 동유럽 자회사들에 대한 자금을 회수하지 않고 유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EBRD는 이번 논의는 `빈 이니셔티브'와는 다른 형태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ju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