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달 초부터 나타난 주가급락을 '헤드라인 공포'라는 말로 설명했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의 영향으로 실체없는 악재들이 시장을 흔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번주부터는 해석이 달라졌다. 경기침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지표들이 등장하면서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 공포'가 시장을 난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모건스탠리는 18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이 경기침체에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며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2%에서 3.9%로 내린 게 대표적이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당초 4.5%에서 3.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더블딥'을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잠시 잊혀졌던 인플레이션 공포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

◆잇따르는 더블딥 징조들

일단 제조업부터 문제다. 18일 발표된 필라델피아 연방은행 8월 제조업지수는 -30.7을 기록했다. 2009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난 15일 발표된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제조업지수도 -7.7을 기록,최근 8개월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국에 걸쳐 산업생산이 둔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크레디트스위스는 필라델피아지수를 미 전역에 적용하면 이미 8월부터 경기침체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제조업이 둔화되면 자연히 고용 사정도 나빠진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이번주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는 전주 대비 9000건 늘어난 40만8000건을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40만건)를 웃돌았다. 크리스 러프키 미쓰비시UFJ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주가하락의 속도는 경기침체가 심각해질 것을 예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종업원을 해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주택 시장도 여전히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가 18일 발표한 7월 기존 주택판매는 전달에 비해 3.5% 하락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오름세를 보이다 다시 하향세로 돌아섰다. 계약에 나섰던 실수요자들이 이어지는 경기침체 우려로 계약을 포기한 탓이다.

유럽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의 2분기 경제 성장률은 0.1%로 전 분기(1.3%)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반면 7월 실업률은 전월보다 소폭 상승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2분기 각각 0.2%와 0%의 성장률을 기록,전 분기에 비해 각각 0.3%포인트와 1.0%포인트 하락했다.

유럽은행의 건전성도 도마에 올랐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한 은행이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5억달러를 긴급 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정위기 국가들의 채권을 대거 보유한 유럽계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벤 버냉키 의장의 딜레마

더 심각한 문제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0.5%로 지난 3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시장 예측치인 0.2%에 비해 0.3%포인트나 높았다.

특히 연간 기준으로는 3.6%나 상승해 미 중앙은행(Fed)의 목표치인 2.0%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나마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은 0.2%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이마저도 최근 3개월치를 계산하면 연율 기준 3.1%나 올랐다.

여기에 지난 17일 발표된 7월 생산자물가도 전월보다 0.2% 상승했다. 지난 6월의 0.4% 하락에서 다시 상승세로로 전환한 것이다.

유럽도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영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대비 4.4% 상승해 6월(4.2%)을 웃돌았다. 영국 중앙은행의 목표치는 2%지만 올 들어 7개월째 4%대로 고공행진 중이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정상회담에서 유로본드 발행하기에 실패하는 등 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유로존 공조체제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