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서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가 사뭇 심각하다. '자문형 랩' 얘기다. 일부는 '바이코리아펀드'와 '인사이트펀드'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쏠림현상의 후유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증시는 쏠림의 역사였다. 대표적인 게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펀드다. 이 펀드는 첫선을 보인 1999년 수익률 77%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0년 마이너스 55% 수익률을 기록하며 허무하게 무너졌다.

바이코리아펀드의 추억이 아련하던 2007년 미래에셋의 인사이트펀드가 쏠림현상을 되살려냈다. 그해 10월 말 선보인 인사이트는 보름 만에 4조원 이상을 빨아들이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끝은 역시나 처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수익률이 반토막났다.

이런 기억이 생생한 증권업계가 자문형 랩에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자문형 랩은 불과 1년여 만에 8조원이 넘는 돈을 모으며 증시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최근엔 달라졌다. 자금 유입이 주춤하면서 힘이 빠지는 모습이다. 투자자들이 돈을 한꺼번에 뺄 경우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게 증권업계의 우려다.

합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다. 학습효과와 공정거래 관행의 정착이다. 쏠림현상을 겪으면서 투자자들은 '투자는 자기책임'이라는 교훈을 체득했다. 투명한 자산운용과 운용내역의 공개원칙도 확립됐다. 그런 만큼 자문형 랩이 잘못되더라도 이전처럼 사회적 파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심각한 것은 또다른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파생상품이다. 당장 주식워런트증권(ELW)이 그렇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ELW시장은 불공정거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스캘퍼(초단타매매자)는 전용회선을 부여받는다. 이를 통해 일반투자자보다 3~8배 빠른 속도로 주문을 낸다. 일반 투자자와는 출발부터 다르다. 검찰의 말을 빌리면 "시험지를 미리 보고 시험을 치르는 격"이다.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대책은 제자리 걸음이다. 증권사들은 스캘퍼에게 전용선을 부여하는 건 관행이라고 항변한다. 금융당국이 기본예탁금 1500만원을 부과한 데 대해서도 펄쩍 뛴다.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시장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대면서 말이다. ELW를 거래하도록 판을 깔아준 한국거래소도 꿀먹은 벙어리다. ELW시장이 홍콩에 이어 세계 2위라고만 강조할 뿐,미국과 일본 등에는 이 제도가 없다는 것을 애써 외면한다.

이들이 ELW시장을 고수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돈 때문이다. 2009년 ELW시장에서 증권사는 2134억원을,거래소는 180억원을 각각 벌었다. 스캘퍼는 1043억원을 챙겼다. 일반 투자자만 5186억원의 손실을 봤다. 작년에도 그랬다. 증권사는 1778억원을,거래소는 340억원을 챙겼다. 모두 일반투자자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거래가 급증하고 있는 이종통화거래(FX마진거래)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 참가자의 99%가 일반인이지만 이들의 90%가 원금을 까먹고 있다.

증시에서 쏠림현상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쏠림현상보다 더 나쁜 것은 불공정게임이다. 일반투자자의 돈을 뜯어내는 데 급급해 불공정게임의 룰을 고치지 않으려는 거래소와 증권사들이 더 나쁜 존재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