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 잉럭 친나왓(44)이 이끄는 제1야당인 푸어타이당이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이에 따라 잉럭은 태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에 오르게 됐다.

3일 CNN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푸어타이당은 전체 500석(선출직 375,비례직 125)중 과반수가 넘는 255석을 차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은 16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쳐 정권을 내주게 됐다. 이 밖에 군소정당인 붐자이타이당과 찻타이파타나당,찻파나타푸아판딘당이 각각 35석,21석,10석을 얻었다. 이 같은 잠정 집계 결과가 확정되면 푸어타이당의 총리 후보인 잉럭은 첫 여성 총리가 된다. 잉럭은 선거승리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선거 유세 기간 약속한 모든 공약을 실행하겠다"며 "군소정당들과 연정 구성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피싯 총리는 "민주당은 야당이 될 준비가 돼 있다"며 총선패배를 시인한 뒤 "태국의 통합과 국민 화합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선심성 공약 후유증 클 듯

미국 켄터키주립대 행정학 석사 출신으로 성공한 부동산 개발업체(에스시에셋) 경영자였던 잉럭은 지난 5월 푸어타이당 대표를 맡으며 정계에 정식으로 입문했다. 불과 한 달 반 만에 총리에 오르게 됐다. 이에 따라 2006년 군부 쿠데타로 해외로 도피한 탁신 전 총리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민주당은 잉럭이 총리가 될 경우 탁신의 '수렴청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점을 공격해왔다"고 전했다. 푸어타이당의 총선 구호도 '탁신이 생각하고 푸어타이가 행동한다'였다.

잉럭이 내놓은 선심성 정책을 두고 로이터통신은 "포퓰리즘 논란을 빚었던 탁신의 재정확대 정책의 개정판"이라고 꼬집었다. 잉럭은 △최저임금 40%인상 △30%인 법인세를 20%로 인하 등의 공약으로 지지를 얻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푸어타이당이 선거기간 동안 내건 모든 공약을 지키려면 2640억바트(9조1000억원)가 들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같은 공약이 시행되면 태국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등 후유증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태국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지난 4월 3.2%에서 5월 4.2%로 크게 올랐다. 태국 중앙은행 관계자는 "겨우 회복단계에 들어선 태국 경제에 임금인상은 되레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치불안 심화될 전망

태국의 정치 불안도 심화될 전망이다. 잉럭은 탁신 전 총리를 포함한 모든 정치 사범을 사면하겠다고 공약을 했기 때문에 반탁신을 내건 민주당과 일부 군부의 반발이 예상된다. 태국 정국은 노동자 농민 빈민계층 등으로 이뤄진 친탁신파(일명 레드셔츠)와 중산층 왕실 옹호주의자 군부 등으로 구성된 반탁신파(일명 옐로셔츠)로 갈려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다.

2008년 반탁신파 시위대가 주요 국제공항을 점령해 공항 기능을 마비시켰고, 2009년에는 친탁신파들의 반정부 시위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 · 중 · 일) 정상회의가 무산되기도 했다. 작년에는 친탁신파의 반정부 시위과정에서 정부군과 유혈 충돌이 발생, 92명이 사망했다.

WSJ는 "이번 총선은 탁신 전 총리를 축출한 군부 쿠데타에 대한 심판 성격이 짙어 군부가 쿠데타로 잉럭의 집권을 막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태국에서 군부는 1932년 무혈쿠데타로 입헌군주제를 시행한 이후 18번의 쿠데타를 일으켰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