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동부전선 군복무 김태진씨 증언
"다른 피해자 많을 것…진상규명 나서야"

"고엽제가 뭔지 보지도 못했고 이름조차 몰랐는데…알고보니 내가 피해자였더라고."

앙상한 다리를 손으로 연방 주무르던 김태진(67)씨는 과거 전방에서의 군생활을 떠올리며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27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고엽제 피해를 국가보훈처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보조금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1968년 2월 입대한 김씨가 훈련소와 공병학교를 거쳐 배치된 곳은 강원도 철원의 6사단이다.

그는 무장한 북한군이 휴전선을 뚫고 수시로 남쪽으로 넘어오던 시기라서 그런지 감시의 눈길이 오가는 최전방 GOP에서는 엄청난 긴장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당시 군은 동부전선인 철원∼인제 군사분계선 인근 지역에서 시야 확보를 위해 숲을 제거하는 작업을 실시하면서 고엽제를 대량 살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지 위에서 내려다보면 철조망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앞뒤로 300∼500m 정도는 계속 풀이 자라지 않더라고. 농사를 지어봐서 알기로는 제초제를 뿌려도 다음해면 풀이 엄청 나는데 군생활 3년동안 풀 한포기 자라는걸 못봤으니 이상하긴 했지."

중장비를 운전하는 직책을 맡았던 김씨는 실제로 고엽제 살포작업에 참여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큰 먼지바람을 일으키는 불도저를 타고 수시로 진지와 휴전선 근처를 오가면서 작업하던 중 고엽제 성분에 노출됐다.

김씨는 "고엽제가 뭔지도 모르고 군에서 매년 표창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어. 이렇게 무서운건줄 알았으면 마스크라도 썼겠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40대에 접어들어 고혈압과 당뇨 등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김씨는 2000년 어느날 등산 도중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협심증이었다.

"병원에 가니까 의사가 진단하는 게 말도 못해. 골다공증도 생겼다고 하지. 나중엔 '나이는 50대인데 몸 상태는 70대다'라고 했다니까."

부부 관계마저 불가능해졌다는 김씨는 2000년대 초 휴전선 인근서 군복무 했던 국내 고엽자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이야기를 TV에서 접하고서야 자신이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군은 '살포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공병대원 김씨에게 보상금을 줄 수 없다'며 인정을 거부했지만 사단장에게 받은 표창장 등을 근거로 간접 피해를 주장하는 등 거의 반년동안 증거를 수집한 끝에 매달 20만∼30만원의 보상금을 받게 됐다.

국내 고엽제 피해자 중에서 국가보훈처의 보훈 대상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김씨를 포함해 919명.

김씨는 "미군 기지에서 고엽제가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다른 피해자가 아직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국가가 적극 나서서 모쪼록 진상을 밝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