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에서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자산가들로만 구성된 한 사모펀드는 코스피지수가 1860선이던 지난달 27일 편입했던 주식을 모두 정리했다. 운용을 담당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박스권 상단이라고 생각한 1850선을 넘자 고객들과 상의해 36%의 수익률을 내고 주식을 팔았다"며 "이후 지수가 더 오르긴 했지만 당시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고객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자산가들은 무거웠다. 지난 6일 코스피지수가 34개월 만에 1900선을 뚫고 올라가 증시가 달아올랐지만 섣불리 추격 매수에 나서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올 들어 주가가 오를 때마다 차익을 실현하며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있다.

◆지금은 공격보다 방어할 때

서울 강남권에서 거액 자산가들을 상대하는 은행과 증권사 PB들은 코스피지수가 본격 상승하기 시작한 지난달부터 신규 투자가 뚝 끊겼다고 입을 모았다.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단지의 외국계은행 지점장은 "주식에 관심 있는 고객은 상반기에 이미 투자를 마쳤다"며 "주식을 추가로 매수하거나 새로 펀드에 가입한 자산가는 지난달부터 한 명도 없다"고 전했다. 김대현 우리투자증권 압구정지점 PB도 "9월 이후로는 랩어카운트에 추가로 돈을 맡긴 고객이 거의 없다"며 "외국인이 이탈하면 주가가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반면 주가 상승을 차익 실현 기회로 삼고 안전한 자산으로 갈아타며 주가 하락에 대비하는 움직임은 활발했다. 임민영 한국투자증권 방배PB센터 PB는 "주가가 떨어져도 배당수익으로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배당주와 배당주펀드에 대한 관심이 전례 없이 높다"고 전했다.

양준석 미래에셋증권 대치지점 차장도 "수익이 난 주식형 랩어카운트를 해지하고 채권이나 공모주펀드 중심 '세이프 랩'으로 갈아타는 고객이 늘었다"며 "주식에 계속 투자하더라도 주가연계증권(ELS) 등의 비중을 늘려 위험을 분산시키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안은 중소형주와 중국 본토펀드

주식 비중을 낮춘 자산가들은 중소형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형주에 몰리는 외국계 자금이 곧 저평가된 중소형주로 이동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IBK투자증권은 연예인과 스포츠스타 특화점포인 '스타플라자' 고객을 대상으로 중소형주에 특화된 사모펀드를 조성했다. 이 펀드는 1500선 때보다 주가가 낮아 부담이 작은 우량 가치주가 투자 대상이다. 펀드 운용을 맡은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본부장은 "최근 중소형 가치주만으로 구성된 사모펀드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3~4군데에서 받았다"며 "유동성 장세에서 5~6개월 후에 빛을 볼 종목을 미리 선점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중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에 투자하는 중국 본토펀드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진영 동양종금증권 골드센터강남점 PB는 "올 들어 중국 증시가 부진하다보니 이제 저평가됐다고 느끼는 고객이 많다"며 "외국계 자금이 중국 증시로 조만간 유입될 거라는 예상도 중국 본토펀드를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