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 자원을 중심으로 각 계열사가 갖고 있는 핵심 역량을 최대한 모아야 합니다. 이것이 STX의 미래를 좌우할 것입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창립 기념식에서 밝힌 그룹 비전이다. 2001년 출범해 올 상반기 기준으로 매출 94배,자산 규모 75배에 달할 만큼 고속 성장을 거듭한 STX그룹의 새로운 화두(話頭)를 제시한 것이다.

STX그룹은 인수 · 합병(M&A)을 통해 짧은 시간 안에 조선기자재-엔진-선박-해상운송-에너지로 이어지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제부터는 이들 사업을 한데 아울러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데 그룹 역량을 모으겠다는 얘기다. 지주회사인 ㈜STX는 이를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에너지 · 자원 중심의 '토털 솔루션' 추진

작년 말 STX건설이 가나에서 수주한 20만 가구 주택 사업은 STX그룹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00억달러짜리 건설 프로젝트로 한국의 해외 건설사(史)상 최대 규모다. 그러나 STX그룹이 그리고 있는 밑그림은 좀 더 광대하다. '강덕수호(號)'의 방향타는 에너지와 자원에 향해 있다.

가나는 내년부터 원유 생산을 시작하는 아프리카 신흥 자원부국(富國)으로 당분간 매년 경제성장률이 두 자릿수에 달할 전망이다. STX그룹은 가나에 주택 · 도로 · 플랜트 등 각종 인프라가 절실해 질 것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STX건설의 100억달러짜리 주택사업을 통해 가나 정부로부터 신뢰를 쌓으면 ㈜STX로선 자원시장에 보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란 셈법이다.

자원 개발에 발을 담그게 되면 STX조선해양에도 새로운 일감이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원유를 나르기 위한 고부가가치 선박을 가나 정부가 발주할 경우 이를 따낼 수 있다는 것이다. STX중공업은 각종 발전설비와 플랜트 건설사업에 뛰어들 수 있으며,국내 벌크선 분야 1위인 STX팬오션은 주택건설 프로젝트가 본격 착공되면 각종 건설기자재를 운송하는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이것이 ㈜STX를 필두로 그룹이 구상 중인 에너지 · 자원 중심의 '토털 솔루션'이다.

◆미국 · 캐나다 · 영국 · 우즈벡 '광폭(廣幅) 행보'

최근 강 회장의 행보도 대부분 에너지 사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달 26일엔 캐나다 최대 천연가스 생산업체인 엔카나의 랜디 에레스만 사장과 회동,맥사미시 가스 생산광구 지분 100%를 1740억원에 인수했다. 616㎢ 규모에 가채 매장량이 1200억입방피트(석유환산 2083만배럴)에 달하는 광구로 ㈜STX는 향후 30년간 연 평균 4000만캐나다달러(약 45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TX 관계자는 "이전까지 진행했던 해외 자원개발 프로젝트가 단순 지분 투자 수준에 머물렀던데 비해 이번 프로젝트는 STX가 운영을 총괄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2007년 말엔 영국의 쉘과 3개 해상 탐사광구에 대한 지분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고 2008년 2월에는 한국가스공사와 한국 컨소시엄을 구성,우즈베키스탄 국영 석유회사인 우즈벡네프트가즈와 함께 수르길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에 진출했다. 수르길 가스전은 매장량이 액화천연가스(LNG)로 환산할 경우 9600만t으로 한국이 3년 7개월간 소비할 수 있는 양이다.

곡물 자원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STX팬오션과의 연계가 가능해 이 분야 역시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가 장점이다. STX팬오션은 작년 6월 미국 번기,일본 이토추상사와 합작해 미국 서부지역 롱뷰항에 연간 최대 800만t가량의 물량을 처리할 수 있는 곡물터미널 건설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이젠 안정 성장"

STX그룹은 2001년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 인수를 시작으로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2007년 STX유럽을 사들이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성장했다. STX메탈을 세운 것은 2001년이며,㈜STX와 STX중공업은 2004년,STX건설과 STX솔라는 각각 2005년과 2008년에 설립했다.
STX그룹은 각 계열사들을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인 업체로 키웠다. STX조선해양은 2001년 인수 당시 3억6000만달러에 불과했던 연간 수주금액이 2007년 100억달러를 돌파하는 등 세계 4위 조선업체로 도약했다. 2007년 LNG선과 1만24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는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도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STX유럽의 실적 회복세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분기에 매출 2조2000억원,영업이익 110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글로벌 조선 업황의 침체로 2008년과 지난해 영업손실을 냈던 회사가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STX유럽은 올 들어 두 척의 대형 크루즈선을 수주한 것을 비롯해 지난 8월 말까지 27척,약 36억달러의 수주를 따냈다.

STX팬오션도 벌크 부문 시황 호조와 장기 계약 물량 확대로 올 상반기 매출 3조1157억원,영업이익 510억원의 실적을 냈다. STX중공업 역시 올해 초 이라크 정부로부터 62억달러짜리 대규모 플랜트 공사를 따낸 데 이어 지난 7월엔 말레이시아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매스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기로 계약했다.

계열사들의 분전은 ㈜STX로선 호재다. 이들 계열사의 경영 성적이 모두 지분법 평가이익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올 상반기 매출은 1조5785억원,영업이익은 792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780%에 달한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만만치 않다. STX그룹의 '토털 솔루션'은 다른 대기업들도 구상하고 있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종합상사이자 자원 개발 전문업체인 대우인터내셔널 외에 대우조선해양까지 인수하고자 했던 것은 자원 개발과 선박 건조 간 시너지 효과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 역시 삼성물산(종합상사 건설),삼성엔지니어링(플랜트 건설),삼성중공업(선박 및 엔진 건조) 등으로 이어지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STX그룹이 '토털 솔루션' 전략을 통해 2020년 그룹 매출 1000억달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계열사들의 역량 제고와 그룹 차원의 조율이 관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9년이라는 단기간에 외형을 키운 만큼 인수한 회사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프로급 선수로 뛸 수 있어야만 시너지 효과도 제대로 낼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