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많이 회복되었다지만 서민들은 아직도 춥다. 수입은 고만고만하고 물가만 오르는 형국이니 서민들의 마음은 겨울도 오기 전에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결국 도달한 종착역이 ‘절약’이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짜자는 것. 하지만 검소와 궁상은 다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살림꾼의 지혜다.

얼마 전 내가 만난 부부는 부부싸움으로 이혼 위기를 겪고 있었다. 신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살림 간섭이 최근 극에 달한 탓이다. 남편은 워낙 '짠돌이'로 유명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각종 할인권에 쿠폰, 카드사에서 제공하는 포인트 카드 등을 적절하게 사용, 물건을 제 값을 주고 산 적이 없는 알뜰맨이었다.

아내도 그런 남편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워 결혼했지만, 결혼 후 남편은 아내의 영역은 인정하지 않고 일일이 ‘영수증을 내놓으라’ ‘가계부 좀 보자’며 아내를 힘들게 했다. 처음에는 살림초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결혼 수 년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남편의 살림 간섭은 점점 심해졌다. 당연히 남편과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제발 남편이 살림에 간섭 안했으면 좋겠어요. 시어머니보다 더 심하다구요."
아내의 하소연에 남편은 "세상에 돈 아낄 데가 얼마나 많은데 그래? 한 사람이 살림하는 것보다 둘이 하면 더 아끼고 더 잘 살 수 있다구."

나는 둘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살림을 잘 한다'고 칭찬하는 말을 자주 들으셨을 겁니다. 여기서 '살림'이란 '사람을 살린다'는 뜻입니다. 즉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은 '사람을 잘 살리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로부터 한글에는 깊은 철학이 있다. 때문에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은 ‘저축을 많이 했다’ ‘돈을 많이 모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얼마나 남을 살리는 일을 많이 했는가, 눈에 보이지 않은 은덕을 잘 저축했는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이 사는데 '살림'이 있다면, 불교에서는 '살림법회'가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법회라 하여 '살림법회'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이 말을 잘 쓰지 않고는 있다. 다만 기본 정신은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내게 찾아온 부부는 '살림'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은 무턱대고 돈을 아끼는 것을 살림으로 착각하고 있었고, 아내는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만을 살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돈 몇 푼 때문에 소중하게 맺은 부부의 인연까지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살림은 여자만 하는 것도, 남자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남을 잘 살리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돈만으로는 남을 살릴 수 없습니다. 우선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하세요."

부부는 내 앞에서 언성을 높인 일이 많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도 들지 못했다. 남편은 아껴 쓰는 데만 혈안이 됐던 자신의 지난 모습을 반성하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아줬다. 아내도 남편의 위로에 환하게 웃어 보였다.

살림은 남을 잘 살리는 일이요, 동시에 내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살림을 잘 해야 가계의 살림꾼을 넘어 인생의 살림꾼이 될 수 있다.

어느 새 한해가 다 저물어간다. 어떠십니까, 독자 여러분들도 올 한해 살림살이는 잘 꾸리셨는지?(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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