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지나가는 차량 색상만 봐도 기아차인 줄 알도록 할 겁니다. 기아차 고유의 색상을 개발하면 가능합니다. "

서울 양재동 기아자동차 사옥에서 만난 정일희 기아컬러팀장(42 · 사진)의 얘기다. 그는 1992년 입사 후 기아차의 내외관 색상 및 재질만 연구해 왔다.

"자동차회사의 컬러팀에서 일하고 있으니,차 색깔만 연구한다고 생각하기 쉬울 겁니다. 하지만 저희 팀에서 외관 색과 관련된 일은 10%에 불과하죠.인테리어 색상과 질감 등에 대한 일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

정 팀장이 맡고 있는 컬러팀은 16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돼 있다. 플라스틱과 원목,가죽,크롬과 같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대시보드(운전석과 조수석 정면 패널) 등의 느낌을 색다르게 표현하는 데 전문가들이다.

또 미래 컬러 트렌드를 분석하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별도의 그룹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컬러팀 인원 중 4명의 디자이너가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향후 기아차에 적용될 색상을 개발중이다.

신차 컬러의 새로운 흐름이 뭔지 물어봤다. 정 팀장은 "기술 발달과 함께 메탈 소재가 패션의 커다란 축이 되고 있다"며 "기아차에선 첨단 느낌을 강조한 검정 고광택(하이그로시) 분위기를 많이 내려고 노력한다"고 소개했다. 최근 출시된 대형차 오피러스 프리미엄과 쿠페형 스포츠세단 포르테 쿱 인테리어에도 이를 적용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팀장은 예상과 달리 '예쁜 차를 만들려는' 디자인팀과 대중성을 지향하는 마케팅팀간 갈등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멋지고 품질 좋은 차를 내놓아야 하지만,경제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며 "마케팅팀과 협력체제가 잘 구축돼 있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주문이 2~3개월씩 밀려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쏘렌토R엔 9가지 외관 색상을 적용했다. 정 팀장은 이 중 머슬 베이지와 카키 등의 색상을 최초로 시도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아차만의 색상 컨셉트는 뭘까. 정 팀장은 브랜드 방향을 '소비자를 즐겁게 해주는 차'로 잡은 만큼 역동성에 초점을 맞춘다고 전했다. 유채색을 많이 쓰면서도 채도에 신선한 느낌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다. 이런 시도에 가장 부합한 차량이 바로 박스카인 쏘울이다. 다른 신차와 달리 금속 입자를 잘게 부순 후 페인트에 섞어 활동적이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신차 개발과정에서 정 팀장이 이끄는 컬러팀이 투입되는 시기는 상품기획 단계다. 특히 글로벌 전략차 프로젝트를 맡을 때면 더욱 바빠진다. 각국의 독특한 문화와 민족성까지 반영해야 해서다.

예컨대 미국 캘리포니아나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 등에선 검은색 인테리어 색상을 써선 안 된다. 소비자들이 밝은색을 선호하기 때문이란다. 반면 독일과 북유럽 등에선 어두운 색을 선호한다. 흰색과 검은색을 주로 선택하는 한국 소비자와 다르다.

정 팀장은 "미국 유럽 등 각 지역별로 디자인센터가 있어 이들의 의견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라며 "신차 개발기간이 점차 단축되고 있기 때문에 시험차가 나온 후 6개월 내에 최종 컬러를 결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 팀장이 요즘 관여하는 프로젝트는 연말 출시 예정인 준대형 신차 VG(프로젝트명)다. 총 8개 색상을 적용하기로 했다.

고급 차량인 만큼 흰색 바탕에 진주 느낌이 나는 입자를 넣은 새로운 컬러를 적용할 계획이다. "자동차가 교통수단에서 표현수단으로 바뀌면서 차량의 색상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색다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게 컬러 말고 또 있나요?"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