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혐의로 이란 수감시설에 억류됐던 이란계 미국인 여기자가 석 달여 만에 석방돼 미국-이란 관계에 훈풍이 계속될 전망이다.

라디오 NPR과 BBC, 폭스뉴스 등의 언론매체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한 사베리는 지난 1월 31일 테헤란에서 원인도 모른 채 이란 당국에 체포됐다.

이란 당국이 발급해준 취재 허가증 유효기간이 2006년 만료됐음에도 취재행위를 빙자해 간첩행위를 벌였다는 것이 그녀의 혐의였다.

곧 석방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수감 기간은 계속 늘어났고 결국 지난달 18일 1심 재판에서 간첩 혐의가 인정돼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이란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여 왔던 미국은 1심 판결에서 사베리에게 중형이 선고되자 극도의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란에 직접 대화를 제안한 데 이어 이란 설에는 이란 국민에게 보내는 화상 메시지까지 보내는 성의를 보였던 오바마 대통령도 "몹시 실망했다"는 말로 심경을 표현했다.

이슬람혁명 이후 30년만에 맞이한 미-이란 관계개선의 조짐이 결국 수포가 되는 듯 했다.

일각에서는 1심 판결이 이란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는 강경 보수파의 대미관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미-이란 관계 개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란 강경파가 여기자 간첩사건을 양국의 최근 화해 무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호재로 받아들였다는 설명이다.

영국 BBC는 이란 정부 내 강경파가 1심 판결에 영향을 줬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며 오바마 행정부와 이란 정부 사이 관계 개선에 첫 번째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미-이란 관계 개선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이란이 이번 사건을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 `중형 선고 뒤 감형'이라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서서히 힘을 얻어갔다.

스코트랜드 앤드루스대학의 알리 안사리 교수는 1심판결 당시 로이터통신을 통해 "1심 판결 결과가 예상보다 가혹하게 나왔다 하더라도 이를 놓고 이란이 오바마의 화해 제안을 거부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란에서도 사베리에게 감형 판결이 내려질 것이라는 암시는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아야톨라 하셰미 샤루디 이란 사법부 수장은 지난달 20일 "서로 다른 측면에서 이번 사안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 항소심에서는 특히 주의 깊고, 신속하면서 공정한 방식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재판부에 공정한 접근을 당부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검찰에 서한을 보내 이번 재판에 대한 공정한 처리와 사베리에 대한 법적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결국 사베리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고,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높은 테헤란의 에빈교도소에서 11일 석방됐다.

사베리에 대한 감형은 미-이란 관계 개선에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미국의 직접 대화 제의에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한 상태다.

서방국가들의 핵 협상 참여 요구도 일단 수용해 놓은 상황이어서 협상결과가 주목된다.

이번 감형 선고는 이란 사법부의 독자적인 판단일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해석을 부여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오는 6월 대선을 앞둔 아마디네자드 행정부가 강경 일변도의 대미정책과 대서방 정책으로 인해 보수파 내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은 주목해볼 만 하다.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