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언론, 러-중남미 전략적 동맹관계 구축 노력 평가절하

러시아의 중남미 지역에 대한 전략적 접근 노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국제금융위기와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이 될 것이라고 브라질 일간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가 30일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 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페루, 브라질, 베네수엘라, 쿠바 순방을 러시아-중남미 재접근 시도로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일부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략적 동맹 관계' 구축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데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특히 국제금융위기가 러시아의 대외투자 능력을 크게 감소시켰으며, 중남미 지역 정상들이 오바마 당선인의 등장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 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는 점이 러시아의 '중남미 플랜'을 좌절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중남미 4개국 순방에서 실용적 협력을 내세워 통상, 국방, 석유 및 천연가스, 우주항공, 민간 핵에너지 등 분야에서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중남미 지역에 대해 정치적.이념적 영향력 확산을 도모하지 않을 것이며,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방문 목적은 전략적 협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페루와 러시아제 헬기 유지ㆍ보수를 위한 공장 건설을 포함한 9개항의 협정을 체결했다.

브라질과는 관광비자 면제와 군사기술 교류, 헬기 판매, 통상 확대 등에 합의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카리브해 합동군사훈련과 핵에너지 개발 협력 등 7개항의 협정을 체결했고, 쿠바와는 카리브해 유전 공동개발과 우주항공센터 설치 추진 등에 합의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을 마친 뒤 "첫 중남미 순방 결과에 만족한다"면서 "러시아-중남미 관계 강화를 위해 매우 유용한 방문이었다"고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어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막대한 자원을 보유한 중남미는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지역"이라면서 지난 수년간 소원했던 중남미와의 관계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성과는 러시아가 처한 불리한 여건으로 인해 실행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이 세계 금융시스템 붕괴에 따른 충격이다.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배럴당 150달러에 달했던 국제유가는 현재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러시아 경제의 성장세를 이끌어온 것이 1차 산품이고, 그 중에서도 석유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유가 하락은 직접적인 타격 요인이 되고 있다.

러시아 경제는 국제유가 상승세 등에 힘입어 2007년 8.1%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이는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외교적 비중을 높이는 요소로도 작용했다.

그러나 국제유가 하락세는 러시아 경제의 성장 속도에 급제동을 걸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러시아의 성장률을 2.3%까지 낮췄다.

이는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 등 브릭스(BRICs) 4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여기에 가즈프롬을 포함해 러시아 주요 기업들에 신용경색 위기가 겹치면서 중남미 지역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모스크바 소재 컨설팅 회사인 러스에너지(RusEnergy)의 미하일 크루치킨 연구원은 "러시아 기업들은 유동성 부족으로 국내 투자에도 여력이 없는 상태"라면서 "정부에 금융지원을 요청하고 있고, 기존 투자계획을 취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기업들이 중남미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중남미 구상에 대한 또 다른 장애물은 정치적 요인이다.

러시아 문제 전문가들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중남미 접근 강화 노력이 동유럽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팽창과 그루지야 사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소재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장-자크 쿠를리안스키 연구원은 "러시아의 중남미 귀환은 그루지야 사태와 폴란드 및 체코에 대한 미사일 배치 등을 통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유럽 확대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권교체로 오바마 당선인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정부 인사들을 중용할 것이라는 점은 러시아 정부의 고민을 배가시키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클린턴 정부가 옛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경제가 취약해진 틈을 타 1990년대 러시아의 힘을 더욱 약화시키는데 주력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클린턴 사단'의 재등장이 결코 반가울리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파리 소재 러시아 정보연구센터의 아르노 두비엥 소장은 "NATO의 동유럽 확대로 러시아의 영향력 위축을 추진했던 클린턴 정부 인사들의 복귀는 러시아에 달갑지 않은 소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오바마 당선인이 중남미를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제외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이는 점도 러시아의 중남미 접근 노력을 어렵게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옛 동지'인 쿠바와 '새 동지'인 베네수엘라는 이미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신호를 보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미-쿠바 간의 문제 해결을 위해 오바마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을 밝혔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역시 오바마와의 회동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중남미 플랜'을 가동하려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실망감을 안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