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종업원 15명을 두고 상점을 운영하는 드미트리는 종업원 월급 지급을 늦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4월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해오던 보건 공무원이 "아내에게 새 자동차를 사주려 하는데 필요하다"며 추가로 1만5천달러를 달라고 해 마지못해 뇌물을 주고 나선 월급 줄 돈이 없어 지급을 한달 이상 미뤘다고 한다.

그는 추가 뇌물 요구를 거부했다가는 "위생상 문제"로 상점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처럼 상점이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뇌물관행이 타격을 받게 되길 조심스레 희망하고 있다고 러시아 일간 모스크바 타임스가 2일 전했다.

공무원들이 경기가 어려운데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뇌물을 뜯다가 상점이나 기업이 문을 닫게 되면 자신들의 '소득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드미트리처럼 성씨를 밝히길 거부한 중소기업인 아르티옴도 "정기적으로 경찰과 소방.보건 공무원에게 수천달러씩 뇌물을 상납하고 있는데 이들은 수시로 찾아와 별도 뇌물을 요구하는 게 이젠 습관이 됐다"며 "금융위기 여파를 계기로 뇌물액수만이라도 줄어 들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아르티옴은 이어 "금융위기가 러시아 경제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길 바란다"며 "차제에 기업인들이 돈을 얼마나 어렵게 벌어들이는지를 부패 공무원들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드미트리의 판단이 옳았는지 금융위기 여파가 러시아에 파급되던 지난달부터 경찰이나 소방 또는 보건 공무원들이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인들에 뇌물을 요구하는 현상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고 모스크바 타임스와 인터뷰한 소수의 상업 주인이나 중소기업인들은 밝혔다.

이에 이들 상점 주인이나 중소기업인들은 1998년 금융위기 당시 부패 공무원들이 뇌물금액을 30% 이상 인하했는데, 이번에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길 바라는 것.
그러나 뇌물 관행 근절까지 나아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선 지금까지 부패와의 전쟁에 성공한 적이 없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게 되면 부패 공무원들은 위험부담이 커져 자주 뇌물을 요구하지 못하는 대신 한꺼번에 더 많은 뇌물을 챙기려 들기 때문이다.

조직범죄 소탕업무를 맡은 모스크바의 한 고위 경찰 공무원은 "부패 공무원들은 부패와의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러시아에서 이미 여러 차례 부패척결 운동이 벌어졌으나 성공사례가 없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뇌물관행이 일상에 깊숙히 스며들어 있는 러시아에선 근년 들어 뇌물규모가 매년 3천190억달러씩 급증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이는 러시아 전체 인구 1억4천200만명이 1인당 2천250달러의 뇌물을 건네는 셈이다.

(알마티연합뉴스) 유창엽 특파원 yct94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