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병 주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여의도 국회의원 일하는척 시늉내기

황소일꾼 사라지고 '세금축내기' 촌극만


대본으로 읽는 연극은 감흥이 떨어진다. 배우들이 연기로 생기를 불어넣어야 관객이 감동한다. 무대 위에서는 대사 못지않게 몸짓과 표정이 중요하다. 대사가 아예 없는 팬터마임에는 제스처가 전부다. 제스처도 진실성이 담겨야 호소력이 강하다. 성의 없이 남에게 잘 보이려 시늉하는 몸동작은 저급한 제스처다. 이런 유형의 제스처가 버젓이 보상받고 있는 게 한국사회다.

먼저 노동시장을 보자.일하지 않고 공짜로 먹고 사는 족속이 많다. 선진국의 노조는 가입자 회비로 생존하지만,한국 노조의 전임자들은 회사 돈으로 월급을 챙긴다. 그 숫자가 만만치 않다. 한국의 대표적 자동차회사의 경우 크게 잡아 4만2000명 종업원 가운데 전임 210여명과 대의원 430여명 등 600여명이 놀고먹는다고 한다. 전체 평균 보수 수준이 선진국 뺨친다. 이 같은 부담을 안고서야 동업계가 세계경쟁에서 앞으로 몇 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민단체들을 흔히 비정부단체(NGO)라고 부르는 까닭은 정부와 독립적이라는 뜻인데,우리네 NGO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정부예산지원을 받고 있어 사실상 정부지원단체(GSO)인 셈이다. 예산집행의 투명성도 없어 돈의 용처가 대부분 불분명하다. "환경운동도 먹고 살아야 할 수 있다"는 모 인사의 궤변이 저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지난 10여년간 사회운동합네 하는 무슨 단체,무슨 연대들이 우후죽순한 것은 뱃속계산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이들에게 흘러간 세금이 아깝다.

세금 얘기로 말하면,소비세 등 간접세를 제외하면 세금 내는 인구가 소수에 불과하다. 2006년 기준 취업인구의 50.4%만 근로소득세를 내고 나머지는 면세된다. 납세자,특히 상위계층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고 납세에 반비례적으로 국민권리가 증대한다는 게 좌파정권이 부추긴 국민정서다.

민간기업의 경우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보다 잦은 야근,주말특근,공치사,입발림으로 상사의 눈에 드는 사람이 출세가 빠른 경향이 있다.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 야전침대 놓고 몸으로 때우며 민간인이나 부하를 들볶는 공무원치고 머리 좋고 일 잘하는 사례가 드물지만 그가 주변을 밟고 올라서는 데 성공한다. 시늉만의 제스처가 출세가도의 통행증이다.

여의도 국회는 제스처 천국이다. 등원하지 않고도 세비는 챙긴다. 요즘 같은 국정감사철에는 일하는 시늉내기가 한창이다. TV 카메라에 발언장면이 찍히려 노력한다. 청문회(hearing)는 출석인의 답변을 듣는 장소가 아니라 호통치는 의원의 발언(speaking) 모임이 되고 있다. 금융위기대책에 몸바쁜 행장들을 불러놓고 자기네 공직보수를 가늠해 영업하는 CEO 보수 삭감을 요구하는 시샘을 부리기도 한다. 선진국 어느 나라 국회의 촌극이 이러한가?

능력 있는 무대 배우는 객석등급 구분 없이 모든 관객을 배려해 무대를 넓게 쓴다. 엉덩이에 뿔난 배우는 박수갈채를 유인하려 오버액션하고 특히 로열박스의 시선에 신경쓴다.

1929년 대공황과 유사한 상황이 전 세계를 패닉으로 몰고 있다. 공직사회의 제스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위기상황에서 몸을 낮춰 시장고통을 살피고 대책수립에 전력하는 황소일꾼은 어디가고,제스처 경쟁하는 주요보직들만 부각되고 있나?

일류극단이 아니더라도 예행연습 없이 무대에 오르지 않고,무대 뒤 다툼이 있어도 알려질까 조심한다. 정책 당국 간에 사전 막후조율 없이 때로는 분파적으로 비치는 언동이 누구를 의식함인가?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안을 진정시켜 나라경제를 살리는 것보다 급선무가 있는가? 사회 각 분야에서 제스처 선수들을 도태시키지 않고서는 위기탈출도,선진화도 공염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