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상품가격 28년만에 최대 하락
국제 상품가격이 지난달 월간 기준으로 2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고공행진을 보이던 상품가격이 마침내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상품가격이 추세적 하락으로 접어들었다면 한국 미국 유럽 등 인플레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세계 경제에도 청신호다.

31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국제 상품가격 기준인 제프리-로이터CRB지수(19개 상품 선물가격을 대상으로 작성)는 지난달 10.1% 하락했다. 이는 1980년 3월(10.5%) 이후 최대 낙폭이다.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로 원자재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시장에 확산된 덕분이다.

상품가격 하락세는 유가가 주도했다. 지난달 11일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47.27달러까지 치솟았던 서부텍사스원유(WTI) 최근월물 가격은 31일 배럴당 124.08달러(뉴욕상품거래소 종가 기준)까지 내려왔다. 최고가 대비 23달러(15%)나 떨어진 것이다. 천연가스(-31.4%) 옥수수(-19.2%) 구리(-5.2%) 등도 지난 한 달 새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이처럼 상품가격이 급락하면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마르켈 카사드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는 "지난 1년간 유가를 60달러에서 145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렸던 단기적 요인들이 향후 1년은 반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방크는 유가가 연말께 100달러 선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에드 리먼브러더스 상품리서치 책임자도 "경제전망 악화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공급 확대 등으로 그동안 원유시장에서 가격상승세를 이끌었던 근간이 약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대형 증권사인 내셔널뱅크 파이낸셜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제유가 급락은 상품가격의 거품 붕괴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고 주장했다. 이 증권사의 클레망 지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수년간 원유를 비롯한 상품가격의 가파른 상승은 1990년대 후반 기술주들의 '닷컴 거품'과 2006년까지의 미국 '집값 거품'을 방불케 한다"면서 "최근의 국제유가 급락은 불가피한 버블 붕괴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품 트레이더들도 7월 주요 원자재가격 지수가 6월 초보다 낮은 수준에서 마감된 것은 기술적으로 강한 약세장 신호라며,8월에 추가적인 '매도'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더구나 세계경제는 앞으로 상당기간 더 좋지 않을 것으로 보여 상품 수요 정체도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글로벌 경제가 상반기엔 예상보다 덜 나빴지만 하반기에 더 힘들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상품가격 하락세가 지속될 것인지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골드만삭스,메릴린치,바클레이즈캐피털 등 투자은행들은 여전히 원유값이 강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 상품거래팀은 고객들에게 "근본적인 수급상황만 보면 유가가 더 떨어질 공산이 있지만 허리케인 시즌인 데다 지정학적인 긴장상태가 여전해 유가가 다시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